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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란

[도서] 활란

오정희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작품 해설에서 소설가 장정일은 이런 짧은 소설을 콩트라고 알려 주고 있다. 그가 지목한 <어떤 자원봉사>보다 <세월은 가도>가 눈길을 잡는다. 서로 싸우다 헤어진 남녀가 몇 년 만에 다시 만났지만 '세월은 가도' 성격은 안 변한다는 것처럼 서로 여전하다. "우리는 지금 서로 응석을 부리고 있는 거야."(p115) 잊어버렸던 습관이 서로 만나면서 불쑥 튀어나온 것이다. 우습다가 안쓰러워진다.

 

작가 오정희의 짧은 소설, 콩트 42편은 마치 단막극 마흔두 편이 지나가듯 많은 이야기가 한꺼번에 들이닥친다. 장편 소설 작품을 피하는 요즘 SNS 세대에 맞을는지 모르겠지만 한편씩 읽어내리는데, 작품마다 긴 여운이 남는다. 작품의 주제가 40대 여성의 위치, 그들의 삶을 돌아보는 작가의 관점이 불편할 수도 있지만, 남성 독자로서 내 엄마, 아내, 자녀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듯하다. 간간이 40대의 남자가 주인공인 콩트도 있다. 그가 40대의 여자와의 아련한 추억을 돌연 탄식하게 하는 이야기는 코웃음 치게 한다. 주위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사람 이야기다. 자기 자신만이 아닌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그리고 제삼자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인생은 실없이 보일 수 있지만 그게 인생이란 생각도 해본다.

 

처음에 책 제목을 보고 왠지 낯선 이름이라 누군가 싶었는데, 이화여대 총장이자 교육자, 사회학자였던 김활란 박사다. 아니 다를까, 콩트 중 하나에도 나온다.
"부모님은 그녀에게 '김활란 박사'를 본받으라는 바람에서 '활란'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셨다."(p176)
여성으로서 당당히 선 선각자의 표상인지라 많은 부모님이 딸 이름으로 지어주었지만 꿈같은 이상은 참 거리가 멀었다. 현실적인 삶의 굴레에 벗어나지 못한 세상에 페미니즘이 일어나고 요즘 갈등으로 치닫고 있다. 서로 생각과 역할을 이해하고 나누면서 좀 더 지혜로운 해결책으로 서로 공존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불구가 된 남편을 수발하다가 늙어버린 그녀가 과수원에 찾아온 신혼부부의 사진을 찍어주는 장면이다. 그 신랑이 복숭아나무 가지를 흔들어 후르륵후르륵 꽃비가 떨어져 내리는데 신부는 밝은 소리로 거침없이 웃음을 터뜨린다.
"그녀는 순간 가슴 속에 뜨거운 것이 치솟으며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까마득한 세월의 저쪽, 그 이윽한 봄밤 온몸으로 피멍들 듯, 아프게 떨어져 내리던 꽃비와 향내가 생생하게 되살아났던 것이다."(p51)
자신의 과거가 그대로 눈앞에서 펼쳐진 것이었다. 그녀의 평생 뭉쳐진 가슴에 한이 흘러내렸다.

 

칠십 대의 작가가 풀어놓은 사십 대 여성 이야기는 감수성과 재능을 마멸시켜 버린 생활이라는 괴물을 고발하고 있다. 아직도 진행 중인 스토리다. 근래 여성계에서 몸부림치는 주제로 이론서가 아닌 실생활의 이야기, 짧은 소설로 가슴 속에 실감나게 와닿는다. 여성들의 '이름 붙일 수 없는 병'을 공감하기 좋은 작품이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활란 #오정희 #시공사 #사십대 #여성 #페미니즘 #단편소설 #한국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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