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퍼는 직업인가?
직업은 ‘개인이 사회에서 생활을 영위하고 수입을 얻을 목적으로 한 가지 일에 종사하는 지속적인 사회 활동’을 말한다. 따라서 노래라는 수단을 통해 경제적 수익을 얻고, 이를 지속한다면 그가 직업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때 노래를 직접 실연[實演, performance]하면 ‘가수’라고 하고, 그 노래의 곡을 만들거나 가사를 만들면 각각 ‘작곡가’와 ‘작사가’라고 한다.
그래서 ‘가수’, 조금 있어 보이게 표현하면 ‘뮤지션’이 직업이냐는 질문을 한다면 다 그렇다고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래퍼’는 직업일까?
분명히 <쇼미더머니>,< 고등래퍼> 등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지원하는 사람도 많고, 래퍼 단독 혹은 가수와의 콜라보를 통해 내놓은 곡이 음원 차트에서 높은 순위를 차지하는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래퍼를 ‘직업’으로 볼 수 있느냐?”는 질문에 선뜻 긍정적인 대답을 하기는 쉽지 않다.
래퍼는 래퍼를 직업이라고 생각하는가?
래퍼를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창모는 직업이란 기본적으로 돈을 버는 행위지만, 그 이상의 무엇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직업은 장인이 되는 과정 같아요. 장인은 어느 순간부터 돈벌이가 아니라 작품의 퀄리티에 많은 신경을 쓰잖아요. 지금 저한테 직업은 그런 의미로 다가와요. 내가 만족할 때까지 궐리티를 끌어 올려야 하는 거죠.” [p. 23]
반면 엠씨메타는 다소 유보적인 대답을 한다. “직업으로 가는 과정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직업으로서 확실히 자리매김을 했다고 하기에는 아직 이른 것 같아요. 래퍼로 데뷔할 수 있는 구조가 분명하게 짜여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아직은 과도기라고 봐요. 제 보험 설계사가 저의 팬이신데 그분조차도 직업란에 저를 대학교수로 써요. 래퍼로 안 쓰고요. 아직 래퍼를 직업으로 안 보는 거죠.” [p. 48]
아마도 이런 대답이 나온 것은 그가 힙합이 ‘Swag’가 아닌 ‘Real’인 시절에 힙합을 시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에게 “직업이란 힙합을 유지하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일” [p. 41]이었으니까.
래퍼가 되기 위해 필요한 자질은 무엇인가?
래퍼의 자질에 대한 질문에 대한 래퍼들의 답은 조금 예상 밖이었다.
더콰이엇의 경우, 랩스킬[라임, 플로우, 딜리버리], 목소리 톤, 가사 등 래퍼가 되기 위해 필요한 자질이라고 알려진 것들을 아예 기본적인 것으로 취급했다.
“일단 랩을 잘하는 건 기본이겠죠. 그리고 아무래도 힙합은 비주얼에 초점이 상당히 맞춰져 있어서 비주얼 센스가 중요해요. 물론 타고난 외형도 작용하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에요. 스스로 잘 꾸미려고 노력하는 것도 중요해요. 어찌 보면 래퍼의 의무라고 할 수 있죠.
(나아가) 멋진 래퍼로 보이기 위해서 필요한 것으로는 어느 정도의 고집스러움과 유니크한 정신세계가 있어요. 그리고 힙합은 미국 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미국 문화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죠. 사실 이게 가장 어려운 부분이에요. 랩을 하는 사람은 정말 많지만 그냥 랩을 형식적으로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힙합과 랩이 지녀야 하는 정수들, 그러니까 힙합 고유의 멋이나 세부적인 문화 코드를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거든요.” [pp. 92~93]
래퍼들이 강조하는 또 한 가지 자질은 바로 ‘자기 관리’다.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는 제이에이(JA)는 래퍼로서의 삶을 위해 자기 관리가 중요함을 말한다. “직장에 다니면 자유를 어느 정도 박탈당하는 대신 나태해지지 않잖아요. 하지만 프리랜서의 삶은 예술가 대부분이 그렇듯 스스로 시간관리를 해야 하죠. 게을러지지 않게요. 그게 정말 어렵다고 생각해요 ~ 저는 지금까지 랩을 잘하고 능력이 있음에도 잘되지 못한 사람을 숱하게 봐 왔어요. 재능은 있지만 나태하거나 자기 관리가 안 되는 사람들이요. 술을 너무 좋아해서 자기 일을 못 하는 경우도 많이 봤죠. ” [p. 176]
제이제이케이(JJK)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래퍼는 속은 예술가인데 겉으로는 프리랜서이니까 프리랜서의 삶을 살 준비를 해야겠죠. 프리랜서 관련 조언이나 지침들이 래퍼에게도 다 적용이 돼요. 프리랜서는 출퇴근을 안 하잖아요. 24시간을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게 원동력이 돼서 시너지를 낼 수도 있지만 반대로 그 자유에서 오는 불안감도 커요. 바로 그 불안감을 잠재우는 게 결국 셀프 매니지먼트라고 생각해요. 자기 관리를 잘해야죠.” [pp. 215~216]
힙합을 좋아한다고 해서 꼭 ‘래퍼’가 될 필요는 없다.
“힙합 씬에는 래퍼뿐 아니라 (래퍼가 아닌) 사람들도 힙합을 통해 살아가고 있음을 알리고 싶었다. 또 래퍼가 되고 싶어 하는 청소년들에게 이런 선택지도 존재함을 알려주고 싶었다. ‘나는 힙합을 좋아하니까 래퍼가 되어야지’라는 막연한 생각 대신 자신의 재능이 무엇인지 그 종류를 정확히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해 주고 싶었다. 어쩌면 당신에게 어울리는 직업은 래퍼가 아니라 힙합 평론가나 힙합 레이블의 A&R일 수도 있음을 일깨워 주고 싶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모두가 래퍼가 될 필요는 없다. 아니, 모두가 래퍼가 되어서는 안 된다. ” [pp. 314~315]
그렇기에 저자에게 있어서 래퍼가 아닌 사람들과의 인터뷰가 중요했다. 그리고 그것은 이 책에도 반영되어 있다. 1장 “뮤지션으로서의 래퍼, 직업인으로서의 래퍼”에 7명의 인터뷰를, 2장 “힙합 씬에도 다양한 직업군이 있다”와 3장 “힙합 씬의 한계를 확장해 나가는 사람들”에 9명의 인터뷰를 배정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래퍼가 아닌 힙합 씬의 다른 직업은 무엇이 있을까?
먼저, 아예 래퍼가 아니었던 사람들을 살펴보면,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힙합 사이트 ‘힙합플레이야(HIPHOPPLAYA)’의 대표 김용준, 흑인음악 플랫폼 ‘힙합엘이(HIPHOPLE)’의 대표 최성웅, 흑인음악 전문 에이전시 스톤쉽 대표 석찬우, 힙합 DJ 겸 힙합 클럽 무드(Mhood)를 운영하는 DJ 켄드릭스, 음악 평론가 혹은 힙합 저널리스트인 김봉현이 있다.
래퍼 출신으로는,
작가 겸 교양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박하재홍[엠씨세이모], 해운회사에 근무하다가 힙합 레이블 ‘일리네어레코즈’의 직원으로 합류한 장한별[플래닛 블랙(Planer Black)], 렙 레슨 클래스를 운영하는 제이제이케이, 프로듀서이면서 <마이크 스웨거> 기획자 겸 제작자인 뉴올(Nuol) 등이 있다.
래퍼가 아닌 힙합 씬의 다른 직업은 의외로 다양한 것 같으면서도 한정적이다.
그래서일까? 일반회사[해운회사]와 힙합 레이블 모두를 경험한 장한별은 “한국에서 힙합 산업은 그 안정성을 논하기 아직 어려운 상황” [p. 271]이기에 “현재 상황에서는 힙합 씬의 직업 중에 래퍼가 아닌 다른 직업을 추천하기에는 좀 애매하다” [p. 271]고 말한다.
이런 불안정성은 한국의 힙합 산업이 새로운 직업을 개척하면서 확장 중이기 때문이 아닐까?
이 책에 소개된 개별 래퍼에 관심이 있든, 래퍼가 되고 싶든, <래퍼가 말하는 래퍼>는 힙합 산업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한 번 읽어야 하는 인터뷰 모음집이라고 생각한다.
* 이 리뷰는 도서출판 부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위 도서를 소개하면서 도서출판 부키로부터 무료로 도서를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