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힘, 유행과 소비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는 초기 자본주의의 사상적 토대를 제공했다고 알려져 있다. 왜냐하면 그가 직업을 신으로부터 부여 받은 의무, 즉 하늘에서 부여 받은 소명(召命)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를 그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근대 유럽에서의 자본주의 발생을 프로테스탄티즘의 종교적 금욕주의가 이끌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즉, 금욕과 근로에 힘쓰는 종교적 생활태도가 자신의 일에 헌신하면서 자본을 축적하는 직업윤리로 정착되어 자본주의를 이끌었다고 보았다. 당연히 이런 사고의 흐름에서 ‘소비’는 천박한 물질주의나 무분별한 쾌락과 동일시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더 이상 절약은 미덕이 아니게 되었다. 오히려 이제는 소비가 미덕이 되었다. 이는 단순히 사물이나 서비스를 사용, 향유해서 소모하는 것이 장려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시 말하면, “자본주의가 고도화될수록 소비를 통해 얻고자 하는 욕망은 보다 세분화된다. 사람들은 소비를 통해 삶의 다양한 가치를 획득한다. 현대사회에서 구매 동기는 물건이 주는 기능성과 효용성을 넘어 그 물건에 투영된 가치, 즉 이미지, 기호, 상징으로 확대된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미적 차이를 얻고자 한다.” [p. 99]
즉, 현대사회에서 소비는 사물이나 서비스에 내재되어 있는 의미와 기호를 사용, 향유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소비, 현대사회의 언어가 되다
“소비는 이제 내가 누구인지를 말해주는 단계로까지 발전한다. 현대사회에서는 더 이상 직업에서 정체성을 찾지 않는다. 특히 소비가 고도화된 사회에서 직업을 통한 정체성의 표현은 그것이 무엇이든 낡고 협소해진다. 이제 생산의 현장이 아닌 소비의 현장에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떠올린다. 마침내 소비는 커뮤니케이션의 기능까지 부여 받으며 현대사회의 언어가 됐다. 이제 굳이 내가 누구인지를 말하지 않아도 일상에서 나타나는 나의 소비 양식이 나를 표현한다. 이렇게 언어로서의 지위까지 획득한 소비는 더 나아가 나와 타자를 구별 짓는 기제로 작동한다.” [p. 6]
즉, 현대인은 어떤 물건, 어떤 공간, 어떤 문화를 소비하느냐에 따라 자기의 정체성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유행, 소비의 습관화
“현대 자본주의의 지속적인 발전과 유지를 위해서는 끊임없는 소비가 전제되어야 한다.” [p. 25] 그러나, “이미 충분히 보유하고 있음에도 각종의 재화와 상품을 또 소비하려면 새로 구입해야 할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 이유를 제공하는 것이 바로 유행이다.” [p. 25]
따라서 유행은 현대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엔진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유행은 무엇일까?
독일의 사회학자 게오르그 짐멜(Georg Simmel, 1858~1918, 이하 ‘짐멜’)은 유행을 “사회적 균등화 경향[모방]과 개인적 차별화 경향[개성] 사이에 타협을 이루려고 시도하는 삶의 양식들 중에서 특별한 것” [p. 18]이라고 정의했다.
문제는 “개성을 살리기 위해 유행을 따르면 따를수록 개성이 사라지는 ‘몰개성’의 역설적인 상황이 전개” [p. 35]된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처럼 “유행은 낡은 것을 폐기하고 새로운 것을 소비하게 함으로써 자본주의를 유지함은 물론 소비를 습관화한다. 그리고 이미 포화 상태에 도달한 소비시장을 해체하고 그 자리에 새로운 소비시장을 만들어낸다. 유행은 그렇게 끊임없는 생성과 소멸의 과정을 거듭하면서 우리로 하여금 소비하고 또 소비하게 만든다.” [p. 26]
이런 점으로 볼 때, 자본주의 사회에서 유행의 역할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크다.
소비, 구별짓기를 위한 욕망의 분출구
바이올리니스트 겸 음악칼럼니스트인 최은규는 <베토벤>(2020)에서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까지 빈에서는 상공업으로 돈을 번 신흥 자본가들이 득세하면서 귀족들의 문화를 향유하기 시작했다. 반면에 정치적 경제적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귀족들은 파산 위기에 처해 있었으므로, 자신들이 그토록 중요시하던 음악 후원의 규모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 귀족들이 저택에 오케스트라를 소유해 연주회를 열던 시대는 지나갔다. 빈의 최상류층 귀족들은 소수의 비범한 비르투오소[巨匠] 연주가들을 집중 후원해 중산층 후원자들과 차별화되는 품격을 나타내고자 했다.” [p. 12]라고 말했다.
이는 빈의 최상류층 귀족들이 중류 이하의 귀족 및 신흥 자본가와 구별짓기를 꾀한 것을 보여준다.
이처럼 상류층이 구별짓기를 꾀하는 모습은 형식적으로 계급이 없어진 현대사회에 와서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현대사회의 상류층은 무엇으로 그들과 다른 이들을 구별하는 것일까?
“현대사회에서 재화는 더는 부를 측정하는 기준이 되지 못한다. 소득수준의 전반적인 향상으로 누구나 사치품 한두 개 정도는 어렵지 않게 살 수 있다.
모든 사람이 사치품을 살 수 있을 때 사치품에 대한 소비는 더 이상 상류계급을 표시하는 기호가 되지 못한다. 짐멜이 얘기했듯이 이제 상류계급은 그들을 쫓아오는 중-하류계급과의 구별짓기를 위해 사치품이 아닌 그들만의 또 다른 대안을 찾아 나선다.” [p. 91]
그들이 선택한 것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그리고 오랜 시간 습득 과정이 요구되는 교양이나 매너와 같은 것이었다. 벼락부자나 졸부(猝富)들은 감히 따라 할 수 없는.
“명품은 돈을 주고 살 수 있지만, 고급 예술을 감상할 수 있는 안목이나 취향은 돈으로 살 수 없다. 돈은 단기간에 벌 수 있지만 교양은 마음처럼 그렇게 쉽게 습득되지 않는다" [p. 94]
그러니 상류층이 스스로 자신의 지위를 나타내기 위해 채택하고 이를 통해 다른 계급과의 구별짓기를 끊임없이 시도하기에 적합하지 않은가?
소비,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다
“구별짓기를 위한 소비는 최근에 와서 좀 더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그 중 주목해야 할 것이 바로 소비 대상의 변화와 소유하지 않는 소비다. 물질적 소유보다는 공유와 경험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소비가 확산되고 있다. 특색 있는 자신만의 공간을 찾아 발걸음을 옮기는 공간소비, 재미와 의미를 공유하는 경험소비, 과시보다는 내면의 성장에 초점을 맞춘 문화소비 등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이러한 소비는 과거처럼 물질에 대한 소유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 [p. 9]
이런 소비의 진화는 어떻게 보면 ‘우리가 왜 소비하고, 어떻게 소비하며, 무엇을 소비하는가?’에 대한 대답일 수 있다. 즉, 물질적 소유보다는 공유와 경험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소비가 지속 가능한 소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갈수록 석유 등 자원고갈에 대한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저자가 언급한 것처럼 공유와 경험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소비가 현재 상태를 타개할 대안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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