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이란?
도시학의 창시자로 알려진 패트릭 게데스(Patrick Geddes, 1854~1932, 이하 ‘게데스’)는 도시를 생성, 성장, 쇠퇴의 과정을 거치는 하나의 유기체라고 생각했다. 그의 지역도시론을 이은 루이스 멈포드(Lewis Mumford, 1895~1990, 이하 ‘멈포드’)는 도시의 성장 단계를 에코폴리스(ecopolis, 작은 마을)→폴리스(polis, 마을의 군집)→메트로폴리스(Metropolis, 자본주의 도시의 출현)→메갈로폴리스(Megalopolis, 자본주의 도시의 쇠퇴 시작)→티라노폴리스(Tyrannopolis, 경제적 도시시스템의 과대 팽창)→넥트로폴리스(Nektropolis, 전쟁과 기근으로 버려진 도시)로 설정하고, 이를 통해 도시의 성장과 쇠퇴의 양상을 설명했다.
산업혁명 이후 등장한 메트로폴리스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팽창을 통해 급속한 도시화를 이루었다. 이러한 도시의 양적인 성장은 2차 대전 이후 산업, 인구, 자본의 재편을 가져왔다. 그 과정에서 일부 산업도시는 물리적, 공간적으로 쇠퇴했고, 이에 따라 사회적, 경제적 침체가 발생했다. 앞에서 언급한 게데스와 멈포드의 주장처럼 도시의 성장과 쇠퇴가 필연적인 과정이라면, 이를 해결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도시재생’은 바로 쇠퇴해 가는 도시의 문제를 치유하는 방법 또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도시재생’이란 무엇일까?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 2조를 보면, ‘도시재생’을 “인구의 감소, 산업구조의 변화, 도시의 무분별한 확장, 주거환경의 노후화 등으로 쇠퇴하는 도시를 지역역량의 강화, 새로운 기능의 도입·창출 및 지역자원의 활용을 통하여 경제적·사회적·물리적·환경적으로 활성화시키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서울 시립대의 김창석 교수도 ‘도시재생’을 “산업구조의 변화, 신도시/신시가지 위주의 도시 확장 등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쇠퇴하고 있는 기성시가지에 새로운 기능을 도입 또는 창출함으로써 도시를 물리/환경적, 경제적, 생활/문화적으로 재활성화 또는 부흥시키는 창조적 작업으로서 도시재개발, 도시재활성화 등을 포함하는 광의의 개념1)”이라고 말한다.
즉, 쇠퇴하는 도시에 새로운 기능을 도입하거나 창출하여 활성화시키는 것이 도시재생인 셈이다.
그렇다면 왜 저자는 ‘런던’을 도시재생의 사례로 우리에게 제시했을까?
“런던은 도시재생의 출발지다. 18세기에 산업혁명이 시작된 이래로 런던은 발전을 거듭해 20세기에 번영의 정점에 도달했으나, 20세기 후반에 산업구조의 변화로 곳곳에서 쇠퇴가 발생했다. 화려한 도시의 이면에는 살 수도, 머무를 수도, 걸을 수도 없는 황폐한 장소들이 빠르게 늘어났다. 바로 이즈음에 쇠퇴한 도시 환경의 반전을 모색하기 위해 도시재생이 등장했다.
일반적으로 런던이 도시재생에 크게 성공한 것처럼 언급되지만 필자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런던은 20세기 후반부터 도시재생을 본격적으로 시행하면서 많은 실패를 겪었고, 그 과정에서 일부 성공적인 결과를 낳았을 뿐이다.” [p. 6]
한국의 도시재생
재건축, 재개발로 대표되는 한국의 도시재생사업에 문제점이 있다는 것은 여러 매체들이 지적한 바 있다. 각자 문제점을 나열했지만, 여기서는 김창석 교수가 “우리나라 도시재생정책의 현황과 과제”에서 제시한 7가지 문제점을 말해보고자 한다.
그 내용을 요약해보면,
첫째, 공공의 역할부재와 개발이익의 사유화로 세입자들의 주거 문제와 저소득 계층의 현지 정착률 저하 문제 발생
둘째, 수익성을 담보할 수 없는, 지방 중소도시에서의 도시재생사업 시행 곤란
셋째, 다양한 사업방식의 부재로 전면철거에 의한 공동주택 건설사업 위주로 진행
넷째, 재원조달 방안의 미비로 사업시행이 지연되거나 지나치게 고층 고밀도의 사업성 위주로 도시재생사업이 진행
다섯째, 갈등조정기구의 부재로 인한 참여주체 및 이해관계자 간의 불신과 갈등 증폭
여섯째, 저렴한 서민주택의 일시 소멸로 인한 기존 저소득 계층 및 사회에 갓 진출한 젊은 직장의 주거안정 위협
일곱째, 효율적인 도시재생사업을 위한 추진체계의 부재로 관련 부서간 협조가 원활하지 않아 사업추진에 애로 발생2)
결국 한국의 도시재생사업은 그 공간에 살아가야 할, 그리고 사업의 주체가 되어야 할 주민이 없는 1회성 이벤트와 같은 것으로 변질된 셈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이 책, <런던에서 만난 도시의 미래>를 통해 참고할 수 있는 답안을 던져주고 있다.
영국의 도시재생
저자는 “도시는 필연적으로 쇠퇴하기에 이를 정확히 이해하고, 바른 해법을 찾는 것이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드는 핵심이다. 그런 면에서 런던이 거쳐온 치열한 도시재생의 역사와 노력을 들여다보는 것은 소중하다. 이를 통해 우리 도시의 건강한 발전을 위한 지혜와 영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 [p. 7]이라고 말한다. 앞에서 언급한 한국 도시재생사업의 문제점을 염두에 두고, 이 책에서 설명한 10개의 런던 도시재생사업사례를 살펴보면 더 살기 좋은 도시를 위한 실마리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의 폭격으로 심각하게 파괴되었던 ‘사우스 뱅크’는 1951년 영국 페스티벌 개최지로 선정된 것을 계기로 로얄 페스티벌 홀, 퀸 엘리자베스 홀 등 대규모 콘서트홀과 헤이워드 갤러리 등 미술관이 건립되었다. 하지만 민간투자로 이 지역을 대규모 업무지구로 개발하려던 계획이 지지부진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30여 년이 경과한 시점까지 이 지역은 여전히 런던에서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지역으로 남았다.” [p. 15]
하지만, 1984년 워털루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구성한 공동체가 투자회사와의 경쟁에서 승리하면서 드라마틱한 반전이 시작되었다. “주민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 런던시의 지원, 기업과 투자자들의 이해 등이 포괄적으로 어우러져 사우스 뱅크는 원칙적으로 지역공동체가 주도하지만 기업과 투자자에게 빗장을 걸어 잠그는 보수적인 방식이 아니고, 상생 방안을 모색하는 혁신적인 접근” [p. 17] 즉, ‘공동체 중심 재생’을 시도했다. 도시재생에 사람의 온기를 불어넣으려는 이 노력의 결과, “사우스 뱅크는 모두를 위한 런던의 휴식처이자 아지트” [p. 31]가 되었다.
템즈 강변에 오랫동안 방치된 ‘뱅크사이드 화력발전소’를 현대미술관으로 개조한 ‘데이트모던’은 대표적인 산업유산의 재생 혹은 재활용 사례로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 데이트 모던은 미술품을 전시하는 장소로서의 가치를 훌쩍 넘어선다. 문화예술공간이 쇠퇴한 장소, 나아가 지역 전체를 활성화시키는 원동력이 될 수 있음을 입증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데이트 모던은 길게는 수백 년, 짧게는 적어도 수십 년 동안 지속되어온 템스강 남북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불균형을 해소하는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했다.” [p. 34]
흔히 부유한 북부와 가난한 남부의 불편한 동행이라고 하면 ‘이탈리아’를 떠올린다. 하지만 런던도 뿌리깊은 불균형의 도시였다. ‘밀레니엄 브리지’도 바로 이러한 템스강 남북의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기획되었다. 때문에 “밀레니엄 브리지는 최근에 건설된 다른 다리들과 비교해 외형적으로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 대신 세인트 폴 대성당과 테이트 모던을 보행자 전용 거리로 편안하게 연결함으로써 오랫동안 단절된 템스강 남북을 어우르고 런던을 통합하는 출발점을 만들었다.” [p. 82]
‘샤드 템스’와 ‘파터노스터 광장’ 주변 개발은 상당히 대조적이다. 19세기에 건립된 화물 창고를 모델로 삼아 주상복합 단지로 개발된 “샤드 템스는 기존의 산업유산과 주변 공간을 보호하고 재활용하는 것으로, 완전히 새롭게 조성하는 것 이상의 장소를 만들고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다시 말해, 도시재생의 구체적인 대안과 가시적 성과를 낳았다.” [pp.126~127]
반면 역사적 맥락을 완전히 무시하고 당시 유행하던 모더니즘 양식에 따라 재개발한 ‘파터노스터 광장’은 불과 20여 년 만에 다시 재개발 논의에 들어가야 했다. 그 결과 역사를 존중하고 보행자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재개발 계획이 수립되었다. “이들은 앞선 실수를 반복하지 않더라도 현재보다 훨씬 더 상업적이거나 이윤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개발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신에 세인트 폴 대성당을 중심으로 런던의 위용을 드러내기에 충분한 모습으로 재탄생했고, 세인트 폴 대성당 주변에 소중한 공공공간을 제공했다.” [pp. 145~148]
“전 세계적으로 21세기에 추진된 도시재생사업과 관련해 가장 많이 언급된 사례를 하나만 꼽는다면 아마도 ‘킹스 크로스’일 것이다. 왜 그럴까? 킹스 크로스 재생사업은 시민 참여, 민관 협력, 공공공간 조성, 보행 환경 개선, 역세권 활성화, 산업유산 재활용, 복합개발, 주거지 활성화 등 오늘날 도시재생이 추구하는 화두의 대부분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또한 사업 과정은 물론이고, 단계적으로 등장하는 결과들은 충분한 교훈적 메시지를 전한다.” [p. 217]
그런 의미에서 영국의 도시재생이 지향하는 바를 가장 잘 함축하고 있는 것이 ‘킹스 크로스’ 재생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업은 1987년 영국과 유럽대륙을 잇는 해저터널법안(Channel Tunnel Act)을 시발점으로 해서 중앙정부, 지방정부, 개발업자, 커뮤니티 단체간의 긴 논의와 협상을 거쳐 2006년 최종 승인을 받았다. 이는 시행사인 아전트와 관할 구청이 과정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강조했기 때문이었다.
“(시행사인) 아전트는 약 5년 동안 관할 구청, 지역 정치인, 사업 주체 그리고 주민과 350여 차례의 공식적인 미팅을 가졌고, 더욱 놀라운 것은 개발팀이 약 4000회에 걸쳐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자문 회의를 진행했다는 것이다. 물론 횟수보다 중요한 것은 시행사인 아전트와 관할 구청이 킹스 크로스 재생사업을 일방적으로 제시하고 설득하기보다 지역 정치인, 주민, 상인의 입장과 생각을 듣는 데 집중했다는 점이다. 그런 후에 취합된 의견과 요구를 실행안으로 만들었고, 이를 주민들이 이해하고 동의하도록 유도했다. 비록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이해 당사자들의 만족도는 다른 사업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았고, 관심과 참여율도 예상을 뛰어넘었다.” [p. 225]
이런 과정을 거친 덕분에 2022년까지 연간 6천3백만 명의 승객을 수송하게 될 고속철도 역사인 세인트 판크라스 역사의 개발과 킹스 크로스 지역의 재개발은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사람 사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계획이 되었다.
물론 여기에 소개된 10개의 런던 도시재생사례가 모범답안은 아니다. 분명히 도시재생의 방법은 각 도시가 처한 상황과 조건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없고 사업만 있는 한국의 도시재생사업이 이러한 사례에서 본받을 점은 있다. 아마 그래서 저자도 런던의 도시재생에서 우리 도시의 미래를 찾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 이 리뷰는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