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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부 이승만 평전

[도서] 독부 이승만 평전

김삼웅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이승만 평전>

 

이 책은 2012년에 출간된 <‘독부(獨夫)’ 이승만 평전>의 개정판이다일반적으로 한 인물에 대해 연구하다 보면대상에 대해 애정을 가지게 되기 마련인데이 책의 여는 글에 이승만의 국부(國父추대를 위한 수구세력의 재평가 작업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4월 혁명을 욕되게 하고 헌법정신을 짓밟는 일이기에 독재자 이승만’ 평전을 쓴다고 밝히고 있는 점이 독특하다그러면서 이승만은 젊은 시절 한때 대단히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선각자였다” [p. 9]고 밝혀 이승만의 공()까지 일방적으로 폄하(貶下)하지는 않겠다는 의사도 드러내고 있다.

 

 

이승만이라는 인간이 형성되기 까지

 

이승만의 가계는 양녕대군의 다섯째 아들 이흔(李?)의 서계(庶系)로서 오랫동안 벼슬길이 막혀 1)몰락 왕손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가계는 이승만에게 두 가지 상반된 성격으로 나타났다때로는 왕족의 후예라는 자부심과 특권의식으로 표출되지만한편으로는 만민공동회독립협회 참여와 같은 반()왕조적 행동으로 분출되었다.” [p. 19]

왕족의 후예라는 자부심과 특권의식은 미국 유학시절 이승만이 스스로 프린스 리라고 행세하고 다닌 일2)과 임시정부의 국무총리로 뽑히자 제멋대로 대통령을 참칭(僭稱)하고 이에 맞춰 헌법을 고쳐달라고 한 것처럼 대통령이라는 직책에 대한 집착으로도 알 수 있다. “해방 뒤 집권하여 몇 차례나 헌법을 뜯어고치고 무시하면서 멋대로 통치한 것도 따지고 보면 이때부터 헌법 위에 군림해온 오만함에서 발원한다.” [p. 118]

또한 과거에 번번이 낙방한 홍수전(洪秀全, 1814~1864)이 반()정부 활동인 태평천국(太平天國운동을 주도했던 것처럼 이승만의 낙방 경험도 그의 반()왕조 혹은 당시 국왕이었던 고종(高宗)에 대해 반발에 한 몫 했다고 할 수 있다이는 저자가, “이승만은 13살 때부터 11차례나 과거에 응시했다향시를 비롯하여 과거가 실시되면 빠지지 않고 응시했던 것 같다하지만 이 무렵에는 이미 과거제가 부패할 대로 부패하여 합격자를 미리 정해놓은 상태에서 돈이나 권력의 배경이 없는 이승만이 급제할 리 없었다김구도 이 무렵 과거를 보았으나 똑 같은 이유로 낙방하여 서당 공부를 중단하고 동학에 입교했다.

역설이지만 당시 과거제도가 문란하지 않았더라면 대단히 총명했던 이승만과 김구는 대한제국의 촉망받는 관리가 되어 전혀 다른 생애를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p. 20]고 언급한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어쨌든저자에 따르면 인간 이승만을 형성하는데 최초의 전환점이 된 것은 1985년부터 2년 남짓한 배재학당 시절이다왜냐하면, “이승만의 배재학당 입학은 평생 신앙하게 되는 기독교에 접하게 되고 미국()과의 깊은 인연을 맺게 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p. 25]

배재학당의 인연으로 그는

첫째, 1896년 귀국한 서재필(徐載弼, 1864~1951)의 강의를 듣고이완용의 장남이었던 이승구(李升九, 1880~1905), 양홍묵(梁弘默, 1866~?)를 포함하여 13명이 모여 협성회를 설립하고 토론회와 출판활동을 통해 민족의식과 계몽사상 확산에 노력했다. <협성회보>, <매일신문>, <제국신문>으로 이어지는 언론활동을 통해 이승만은 기개 높은 언론인으로 이름을 날렸고, “만민공동회의 급진적인 청년층 지도자로서 후기 독립협회에서 추진한 국권수호 및 민권 신장 운동에 크게 기여” [p. 54]하면서 본격적으로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둘째배재학당 졸업식 때 한국의 독립이라는 제목으로 한국 최초의 영어 연설을 했다이를 통해 내부대신 박정양을 비롯한 정부 고관들미국 공사와 영국 총영사를 비롯한 주한 외국 사절 등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 서울 장안의 주목 받는 청년으로 명성을 얻었다.” [p. 27]

 

민영환과 한규설의 제안으로 조미수호통상조약에 의거미국 대통령에게 탄원하기 위해 도미(渡美)하기로 했으나 고종의 밀담(密談요청은 거절했다다행히 아칸소 주 상원의원 A. 딘스 모어를 통해 국무장관 존 헤이와 면담하면서 긍정적인 의견을 들었고전쟁장관(Secretary of War) W.H.태프트의 소개로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Jr., 1858~1919) 대통령과 면담도 할 수 있었다하지만그의 행운은 거기까지였다.

애당초 고종의 밀사도 아닌 개인이 인맥을 통해 일국의 대통령을 만나 국가의 정책을 좌우하려고 했던 것 자체가 무리였다결국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강대국의 선의(善意)에만 기댄 외교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다시 한번 드러났다.

비록 황제[고종]가 아닌 일진회(一進會)’의 대표자라고 했다지만여기까지는 이승만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권력의 화신(化神)이 되다

 

1919년 무렵 이승만은 여러 독립단체의 수장으로 선출되었다하지만 수장이 될 만한 이가 이승만뿐이었을까?

여기에 대해 저자는 그는 대한제국 시기에 고위 관직을 가졌던 사람도 아니었다만민공동회 이후 국내에서 전개되었던 애국계몽운동이나 의병항쟁 그 어느 쪽에서도 기여한 바가 없었다그런데도 이승만이 3개 임시정부[한성임시정부노령 대한국민의회상해임시정부]에서 각각 수반으로 추대된 것은 무엇보다도 그가 미국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비쳤다는 점이 중요하게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여기에는국내에 과장되게 알려졌던 그의 외교활동 성과도 큰 몫을 하였을 것으로 판단된다게다가 왕족의 후손이라는 신화와 35일간에 불과했던 중추원 의관의 경력그의 구속이 사실은 박영효 역모 사건과 관련 때문이었지만 만민공동회 활동의 결과라는 인상도 유리하게 작용했을 것” [pp. 115~116]이라고 해서 그를 둘러싼 신화가 그의 실체를 가렸음을 암시하고 있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이승만은 독선적이고 이기적인 행동으로 독립 운동 세력의 분열을 여러 차례 일으켰다.

첫째미국 한인사회의 독립운동 중심기관이자 임시정부 역할을 하던 대한인국민회의 분열이다.

미국 유학시절 이승만은 장인환/전명운 의사의 스티븐스 처단 사건에 대해 황인종이 대낮에 대로에서 백인을 총살했다는 이유로 미국 사회 주류 여론이 부정적이고스티븐슨이 루즈벨트 대통령의 가까운 친구라는 점 때문에 통역을 거부했다그리고 덴버 회의로 알려진 해외동포대표자회의에서 박용만의 대일무장투쟁을 위한 군사학교 설치를 좌절시켰다. “덴버회의와 스티븐스 사건은 이승만의 향후 노선이 기독교 교육출판 등에 의한 점진적 실력양성운동으로 향할 것이며한국인들의 정서보다는 미국인들의 여론을 중시할 것을 보여주는 지표였다.” [pp. 77~78]

저자에 따르면이러한 이승만의 노선에는 그의 기반이 하와이였다는 점도 한 몫 했다. “이승만은 하와이에서 기독교교육언론계의 지도자로 활동했는데하와이 소수민족 중에서 영향력이 강했던 일본인을 적극적으로 배척하는 것은 스스로의 입지를 허무는 일이었다이승만이 노골적인 반일언론반일운동이나 무력폭력 노선을 취하지 않은 데는 하와이의 특수한 상황이 상당부분 작용했다.” [pp. 91~92]

나아가 이승만은 의형제이자 하와이 정착의 은인인 박용만으로부터 대한인국민회와 하와이 지역의 주도권을 탈취하면서하와이 한인사회는 이승만파와 박용만파로 갈리게 되었다.

 

둘째상하이 임시정부의 분열이다.

먼저 위임통치론을 제기한 이승만이 국무총리 적격성 문제로 비판이 제기되었고의정원에서 끝내 그를 국무총리로 선출하자 이회영신채호박용만 등 무장독립운동 계열이 떠났다.

이어 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1 6개월 만에 상하이로 와서는정부수반으로서 지도력을 발휘하기는커녕 아무런 방안도 내놓지 않고 워싱턴 외교사업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곳을 떠날 수 없고행정결재권도 내줄 수 없으며국정은 현상대로 유지할 것중요한 행정사건은 반드시 워싱턴에 보내서 대통령의 결재를 받아서 처리할 것” [p. 123]을 주장했다이에 이동휘안창호김규식남형우 등도 떠났다.

나아가 그는 구미위원부로 하여금 재미동포의 인구세와 정부 후원금과 공채표 발매금들을 전부 수합하여 자의로 처리하고 정부에 재정보고를 하지 않아” [p. 135] 임시정부의 재정적 궁핍을 가속화했다.

 

셋째임시정부의 유엔 창립총회 참가를 무산시켰다.

1945년 국제연합[UN] 창설 당시 미 국무부는 임시정부 대표가 참가하려면 재미한인으로 구성된 연합체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조건을 내세웠다.” [p. 155]

하지만 이승만은 이 통합한인위원회에 공산주의자들이 합류하여 협력한다는 것을 한국을 공산주의에 내주는 것으로 여겼으므로 통합위원회는 이(승만)의 입장을 거부했다이 박사는 미 국무부의 비난과 한인 반대자들의 심한 질타를 받으며 (국제연합 창설 회의가 열리는샌프란시스코를 떠나 워싱턴으로 귀환했다.” [p. 155]

 

해방 이후 이승만의 모습에 대해서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이는 정부 수립 직후 그가 국시(國是)로 제창한 일민주의(一民主義)’로 대표되는 한국형 파시즘이나 외교에는 귀신내정에는 등신이라는 말을 만들어낸 권력의 유지 및 강화에만 몰두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만 떠올려봐도 알 수 있다.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 위대한 독립운동가로 분장된 그의 망명기가 얼마나 위선적이었는지추종자들이 건국 대통령으로 포장하는 해방공간의 행적이 얼마나 사대적반민족적이었는지집권기간의 전체정치가 얼마나 비민주적이었는지를 새삼 절감하게 되었다” [p. 411]고 하면서김구 조차 유일한 국부(國父)’라고 여겼던 이승만의 민낯을 요약해서 보여주고 있다.

 

 

이 리뷰는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위 도서를 소개하면서 도서출판 두레로부터 무료로 도서를 받았습니다.


개정판 <이승만 평전>(두레, 2020)이 검색되지 않아 부득이 개정 이전의 도서정보에 리뷰를 올렸습니다.



1) 이승만은 양평대군의 방계 16세손으로그의 6대조 이징하가 현령을 지낸 것을 끝으로 벼슬길이 끊겼다.

2) 한홍구, “왕정은 왜 왕따당했나”, <한겨레 21> 413호 (02.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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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블로거 추억책방

    제목부터 여느 평론과는 다른 평론이라는 걸 알게 합니다. 저는 박시백 화백의 <35년>을 통해 일제강점기 기간동안 이승만의 권력욕을 느끼게 되었는데 waterelf님의 핵심을 잘 잡아주신 리뷰를 통해 이승만에게 권력욕이 생긴 이유를 어느정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머리는 똑똑한 사람이라 조선이 제대로 된 나라였다면 뜻을 펼칠 수 있었을텐데 우리 근현대사에서 안타까운 사람 중 한 명 같습니다.

    2020.10.22 13:23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waterelf

      1. 추억책방님의 격려에 감사합니다.^^
      2. 요즘 세상에 태어났으면 '아이돌'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답니다. 최고가 되어야 만족하는 근성, 수많은 컬트적 추종자를 만든 카리스마, 최초의 신체시로 볼 수 있는 시에서 엿볼 수 있는 가사 작성 능력 등을 보면 의외로 그쪽이 적성에 맞을지도....

      2020.10.22 21:25
  • 스타블로거 초보

    고등학교 때는 선배라고 해서 좋아했었고, 그 시기가 지나면서는 우리사회의 모순을 잉태한 사람이라고 해서 엄청 싫어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욕망이 나라를 어떻게 만드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음에도 반면교사로 삼지 못하는 사람들을 볼 때 안타까운 마음만 드네요. 이 책 김삼웅씨가 쓴 책이라하여 궁금했는데 잘 읽엇습니다. ㅎ

    2020.10.22 17:25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waterelf

      1. 상해 임시정부의 기호파[이승만]-서북파[안창호]의 대립 등 조선 사회의 모순을 계승한 측면도 있지요. ^^;;
      2. 반면교사로 삼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역사가 반복되는 것이겠죠.^^;;

      2020.10.22 21:30
  • 스타블로거

    리뷰가 엄청 꼼꼼해서 감탄하고 읽었습니다.
    댓글에서 요즘 태어났으면 '아이돌'에 빵 터졌습니다.
    저는 안창호 파에 기우는데 파벌 뒤 늦은 파벌 조성일까요? ㅋㅋ

    2020.10.23 11:46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waterelf

      1. 쉼님의 격려에 감사합니다.^^
      2. 윤치호의 일기에 따르면 기호파와 서북파는 서로 상대방을 일본보다 원수로 여겼다고 합니다. 따지고 보면 지리적(기호파 - 경기, 충청, 호남 / 서북파 - 평안, 함경), 신분적(기호파 - 양반 출신이 주류, 서북파 - 평민 출신이 주류)으로 하나 되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으니... ^^;;

      2020.10.23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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