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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자

[도서] 순자

순자 저/신동준 역

내용 평점 3점

구성 평점 3점

왜 순자(荀子)인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유가(儒家)의 학통(學統)은 남송(南宋)의 주희(朱熹, 1130~1200, 이하 ‘주자’)에 의해 정립된 것이다. 그에 따르면, 공자(孔子), 안연(顔淵), 증자(曾子), 자사(子思), 맹자(孟子)의 도통(道統)이 자신의 스승격인 주돈이(周敦?, 1017~1073), 정호(程顥, 1032~1085)와 정이(程?, 1033~1107)]를 거쳐 자신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 결과 ‘주자학(朱子學)’이라고 불리는 성리학(性理學)이 번성할수록 이 계통에서 제외된 순자(荀子)의 학문은 이단으로 몰릴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순자>를 옮긴 고(故) 신동준은 들어가는 글에서

흔히 공학(孔學)의 적통(嫡統)을 맹학(孟學)으로 이어진 것으로 알고 있으나 이는 잘못이다. 오히려 한때 이단으로 몰렸던 순학(荀學)이 공학의 적통을 이었다. 순학은 소위 ‘치평학(治平學)’에서 출발한 공학의 이념과 이론을 정치하게 발전시킨 결정판이었다. 맹학은 ‘치평학’에서 출발한 공학의 기본 취지를 망각하고 소위 ‘수제학(修齊學)’으로 함몰된 이단에 해당한다. [p. 8]

 

오랫동안 맹학이 마치 공학의 정통을 이은 것인 양 왜곡되어 왔다. 이는 기본적으로 송대에 성리학이 등장한 이래 근 1천여 년 넘게 맹학을 공학의 적통으로 선전한 데 따른 것이었다. 본서는 ‘군자(君子) 리더십’에 해당하는 ‘치평학’에서 출판한 공학의 적통이 명학이 아니라 순학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다.

원래 공자를 조종으로 하는 소위 원시유학(原始儒學)은 ‘치민(治民)’의 주역인 위정자의 바람직한 통치 리더십인 소위 ‘군자 리더십’을 연구하는 게 기본 목적이었다. 유학은 출발부터 바로 ‘통치엘리트의 리더십’을 연구하는데 그 기본 취지가 있었던 것이다. 이는 실질적 위정자인 군신(君臣)은 말할 것도 없고 예비 위정자인 수많은 사인(士人)들에게 공히 적용되는 리더십이기도 했다. [p. 12]

고 말한 것이다.

 

 

순자(荀子)는 무엇을 말했는가?

 

순자의 사상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사람의 본성은 악하다는 ‘성악설(性惡說)’을 떠올린다. 중국 철학이나 역사에 조금 관심 있는 이라면 여기에 예(禮)를 강조했다는 것까지 기억할 것이다.

 

그렇다면 순자가 얘기한 것은 성악설과 ‘예(禮)’뿐일까? <순자>를 완역한 신동준은 순자의 사상을 크게 4 가지로 얘기한다.

 

첫째는 인도주의(人道主義)로, 천도(天道)의 천명(天命)과 인도(人道)의 인성(人性)을 구분하되, 천도에 대한 존경심을 버리지 않고 있다.

[천론(天論)]에서

하늘의 운행은 일정한 법도가 있어 요(堯)때문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걸(桀)때문에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다스림으로 응하면 길하고, 어지러움으로 응하면 흉하다. [p. 615]

라고 하여 하늘이 성군(聖君)에게 서상(瑞祥)을 보여 격려하거나 폭군(暴君)에게 재이(災異)를 내려 경고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는 성선설(性善說)에 따라 천인합일(天人合一)을 강조하는 맹자의 천인관(天人觀)과 대조를 이룬다.

동시에 [예론(禮論)]에서

예(禮)에는 3가지 근본이 있다. 천지(天地)는 생지본(生之本: 생의 근본)이고, 선조(先祖)는 유지본(類之本: 종족의 근본)이고, 군사(君師: 군주와 스승)는 치지본(治之本: 다스림의 근본)이다. ‘천지’가 없으면 어떻게 생을 얻고, ‘선조’가 없으면 어디서 나오고, ‘군사’가 없으면 어떻게 다스려지겠는가.

이들 3자편무(三者偏亡: 셋 중 하나가 없음)면 곧 백성을 안정시킬 수 없다. [pp. 665~666]

고 하여 인도(人道)만 강조하는 법가(法家)와는 달리 천도(天道)가 사람의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까닭에 존중한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둘째는 정악주의(情惡主義)로 우리가 얘기하는 성악설(性惡說)이다. 하지만 순자의 성악설(性惡說)은 인간의 본성(本性)이 악(惡)하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욕망으로 인해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라고 한다.

[예론(禮論)]에서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욕망을 가지고 있다. 바라는 것을 얻지 못하면 추구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추구하는 데 도량분계(度量分界: 일정한 기준과 한계)가 없으면 다투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다투면 어지러워지고, 어지러워지면 궁해진다. [p. 662]

라고 하여 일정한 기준과 질서[‘예(禮)’]가 없다면, 인간은 물질에 대한 욕망을 제어하지 못해 타인의 욕망을 침해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를 뒤집어 해석하면, 누구나 성인(聖人)이 만든 기준과 질서인 ‘예(禮)’ 혹은 예법(禮法)’을 지키려고 노력하면 치자(治者)인 군자(君子)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셋째는 예치주의(禮治主義)로 현실에 입각하여 법(法)의 역할을 수긍하면서도 법을 다루는 사람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이는 [군도(君道)]에서

난군(亂君)은 있어도 본래부터의 난국(亂國)은 없다. 치인(治人)은 있어도 본래부터의 치법(治法)은 없다.

~ 중략 ~

그래서 법은 독립할 수 없는 것이고, 유(類: 제도)는 스스로 시행될 수 없는 것이다. 합당한 사람을 얻으면 실행이 되고, 얻지 못하면 사라지는 것이다.

법은 다스림의 단서이다. 군자는 법의 근원이다. 그래서 군자가 있으면 법이 비록 생략될지라도 족히 다스릴 수 있다. 군자가 없으면 비록 법이 갖춰져 있을지라도 선후의 시행순서를 잃고, 응변(應變: 사태의 변화에 대응함)할 수 없어 족히 천하를 어지럽게 만들 수 있다. [p. 513]

라고 한 것에 드러나 있다.

 

결론적으로 순자의 예치주의는

순자가 생각하는 ‘’는 일방적으로 개인의 욕망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일상생활을 유지하면서 통일된 조화 속에 평화롭게 살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순자는 공자가 덕치의 요체를 ‘인’으로 본 데 반해 바로 ‘예’라고 본 셈이다. ‘예’에 의해 그 분수를 한정함으로써 개인간은 물론 개인과 국가 간에도 상호 간의 욕망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다는 것이 순자의 기본적인 생각이었다.

순자가 예치를 통해 궁극적으로 추구한 것은 군신 상하 간에 원만한 질서와 절도가 자율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종의 예치국가 즉 ‘예국(禮國)’이었다. [p.119]

 

넷째는 왕패주의(王覇主義)는 예로 다스리고 어진 이를 등용[隆禮尊賢]하는 왕도(王道)가 최선이지만 법을 중시하고 백성을 사랑[重法愛民]하는 패도(覇道)도 난세를 평정할 수 있다면 차선으로 수용가능하다는 선왕후패(先王後覇)의 입장이다. 다만 이 경우에도 이익을 좋아하고 속임수가 많아 힘과 술수에 의지하는 망도(亡道)는 배제하고 있다.

이는 [대략(大略)]에서

군주가 융례존현(隆禮尊賢)하면 왕자, 중법애민(重法愛民)하면 패자, 호리다사(好利多詐)하면 위자(危者)가 된다. [p. 809]

라고 말한 것에서 드러나 있다. 이를 보면, “제환공(齊桓公)과 진문공(晉文公)을 나누어 평가함으로써 대의(大義)에 입각한 패업(覇業)만큼은 인정”하는 공자와 결을 같이 하고, 일체의 패도(覇道)를 배척하고 오직 왕도(王道)만 강조하는 맹자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순자는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으로 흐른 맹자와는 달리 현실에 기반을 둔, 실현 가능한 정치를 주장했다고 볼 수 있다. 동시에 현실에 매몰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이는 순자처럼 ‘예(禮)’를 강조한, 자유(子游) 언언(言偃)과 자하(子夏) 복상(卜商)의 후예에 대한 비판에서 엿볼 수 있다.

[비십이자(非十二子)]를 보면,  

그 의관을 바르게 차리고, 안색을 엄숙히 하고, 겸연(慊然: 겸손함)히 종일 말도 하지 않는 무리가 있으니 이는 자하씨(子夏氏)의 ‘천유’이다.

투유탄사(偸懦憚事: 마지못해 하면서 일을 꺼림)로 염치도 없이 음식을 밝히면서 입만 열면 ‘군자는 본래 힘을 쓰는 게 아니다’라고 지껄이는 무리가 있으니 이는 자유씨(子游氏)의 ‘천유’이다. [p. 381]

라고 하여 형식적인 ‘예(禮)’에 매몰되거나 ‘예(禮)’를 밥벌이 수단으로만 쓰는 속유(俗儒) 혹은 천유(賤儒)에 대해 과감하게 비판하고 있다.

 

추가적으로 순자는 법가와 달리 백성을 위해 왕을 존중하는 입장이었다.

이는 [대략(大略)]에서

하늘이 백성을 낳는 것은 군주를 위하려는 것이 아니다. 하늘이 군주를 세운 것은 백성을 위한 것이다. [p. 829]

라고 하고,

[왕제(王制)]에서

군주는 주(舟: 배)이고 서인은 수(水)이다. 수즉재주(水則載舟: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고)하고, 수즉복주(水則覆舟: 물은 배를 뒤엎기도 한다)한다. [p. 426]

라고 한 것은 이를 보여준다. 심지어 순자는 [정론(正論)]에서

폭국(暴國: 포학한 나라의 군주)이 독치(獨侈: 홀로 방종한 사치를 즐김)하면 그를 능히 주살(誅殺)하면서도 반드시 무죄(無罪)한 백성을 상해(傷害)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폭국지군(暴國之君)에 대한 주살은 약주독부(若誅獨夫: 독부를 주살하는 것과 같음)이다. 이는 가히 ‘능용천하(能用天下: 능히 천하를 잘 다스림)’라 칭할 만하다. ‘능용천하’하는 자를 일컬어 ‘왕자(王者)’라고 한다.

탕(湯), 무(武)는 취천하(取天下: 천하를 탈취함)하지 않았다. 도를 닦고, 예의를 시행하고, 천하의 동리(同利: 모두에게 이로운 사업)을 일으키고, 천하의 동해(同害)를 제거했기에 천하인이 귀복(歸服)한 것이다. 걸, 주는 거천하(去天下: 천하를 잃음)하지 않았다. 우(禹), 탕(湯)의 덕업을 배반하고, 예의의 분계(分界)를 어지럽히고, 금수의 행동을 하고, 흉잔(凶殘)을 쌓고, 사악(邪惡)을 가득 채웠기에 천하인이 떠난 것이다. 천하인이 귀복하는 자를 왕자, 천하인이 떠나는 자를 망자(亡者)라고 한다. 그래서 걸, 주는 천하를 옹유한 것이 아니고, 탕, 무는 시군(弑君)한 것이 아니다. [pp. 635~636]

라고 하여 맹자의 일부가주론(一夫可誅論)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약주독부론(若誅獨夫論)을 주장한다.

 

아마도 이러한 순자 사상의 여러 측면이 한때 이단으로 몰려 몰락했지만, 청(淸)나라 이후 재조명되고, 지금 우리가 <순자>를 읽어봐야 할 이유가 아닐까?

 

 

옥의 티

 

이 책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은 번역이다.

 

첫째, 순자 사상에 대한 해설부분과 <순자> 본문이 번역 표기상 차이가 있다.

君人者, 隆禮尊賢而王, 重法愛民而覇, 好利多詐而危. 를

예로 다스리고 어진 이를 등용하는 통치자는 곧 왕자이고, 법을 중시하고 인민을 사랑하는 통치자가 곧 패자이다. 이익을 좋아하고 속임수가 많은 통치자는 위자(危者)이다. [p. 146]

군주가 융례존현(隆禮尊賢)하면 왕자, 중법애민(重法愛民)하면 패자, 호리다사(好利多詐)하면 위자(危者)가 된다. [p. 809]

로 번역했다. 같은 책이니 동일하게 표기하는 것이 좋고, 기왕이면 한 눈에 가독성(可讀性)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전자의 방식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 다른 예로 天地生民, 非爲君也. 天地立君, 以爲民也. 를

하늘이 인민을 낳는 것은 군주를 위한 것이 아니다. 하늘이 군주를 세운 것은 인민을 위한 것이다. [p. 129]

하늘이 백성을 낳는 것은 군주를 위하려는 것이 아니다. 하늘이 군주를 세운 것은 백성을 위한 것이다. [p. 829]

처럼 번역했다. 같은 말을 전자는 ‘인민(人民)’으로, 후자는 ‘백성(百姓)’으로 표기했는데, 당시의 시대 상황을 감안하면 후자인 ‘백성’으로 통일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둘째, 한문을 번역한 것이 아니라 한자의 음(音)을 그냥 옮긴 부분이다.

예를 들면,

君者, 舟也. 庶人者, 水也. 水則載舟, 水則覆舟. 를

군주는 주(舟: 배)이고 서인은 수(水)이다. 수즉재주(水則載舟: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고)하고, 수즉복주(水則覆舟: 물은 배를 뒤엎기도 한다)한다. [p. 426]

로 번역했다. 이 경우에는 한문을 읽을 때 그 뜻을 이해하기 쉽게 하기 위해 한글로 조사, 어미, 접사 따위를 붙인 것[현토(懸吐)]에 가깝다.

 

전체적으로 이런 번역 방식 때문에 일반인이 이 책에 접근하기 어려워서 아쉬웠다.

 

 

* 이 리뷰는 도서출판 인간사랑으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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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블로거 goodchung

    순자는 현실적 시각이 강조된 사상이라고 정리해 보면 되겠습니다.

    2022.01.02 06:52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waterelf

      1. goodchung님 말씀대로 순자의 사상은 현실적 시각이 강조되었다고 생각합니다.
      2. 순자가 '제자백가 사상의 집대성'했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공자의 사상으로의 회귀를 추구하면서도 현실성을 놓지 않으려는 사색의 결과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2022.01.02 14:19
  • 파워블로그 모모

    서평 읽다가 기절 할 뻔 했어요 ^^
    대단하세요. 전 아직 접근 할 수 없는 분야네요.

    2022.01.03 11:56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waterelf

      그나마 해설이 붙어있기에 접근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본문만 있다면... ^^;;

      2022.01.03 19:26
  • 파워블로그 산바람

    읽기 쉽지 않은 책인데 벌써 리뷰를 올리셨네요. 역시 물요정님의 내공이 돋보이는 글 잘 읽고 갑니다.

    2022.01.03 18:07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waterelf

      산바람님의 격려에 감사합니다.^^

      2022.01.03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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