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는 크게 다섯 부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생의 종말을 앞둔 신앙인이 남기는 소회(所懷)를 담은 ‘1부 까마귀의 노래’, 어머니에게 보내는 사랑과 그리움이 실린 ‘2부 한 방울의 눈물에서 시작되는 생’, 자라나는 아이의 순수함과 희망을 노래한 ‘3부 푸른 아기집을 위해서’, 딸을 잃은 아버지의 고통과 애절한 그리움을 담은 ‘4부 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 백자나 청자 등의 작품에 헌정하는 시들을 모은 부록으로 엮여 있다.
이 시집의 제목을 듣고 처음 떠오르는 것은 왜 ‘헌팅턴비치’일까 하는 생각이었다. 알고 보니 헌팅턴비치(Huntington Beach)는 저자의 딸이 LA 지역 부장검사(1989~2002) 등을 역임하면서 지낸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도시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4부 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에 실린 시(詩)들에 더 눈길이 갔다.
4부의 시작을 알리는 시는 <살아있는 게 정말 미안하다>였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
네가 혼자 긴 겨울밤을 그리도 아파하는데
나는 코를 골며 잤나보다.
내 살 내 뼈를 나눠준 몸이라 하지만
어떻게 하나 허파에 물이 차 담담하다는데
한 호흡의 입김도 널 위해 나눠줄 수 없으니
~ 중략 ~
민아야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내가 살아서 혼자 밥을 먹고 있는 것이
미안하다 민아야
너무 미안하다 [pp. 145~146]
그리고 마지막에 실린 것은 이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다.
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살던 집이 있을까
네가 돌아와 차고 문을 열던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네가 운전하며 달리던 가로수 길이 거기 있을까
네가 없어도 바다로 내려가던 하얀 언덕길이 거기 있을까
바람처럼 스쳐간 흑인 소년의 자전거 바큇살이
아침 햇살에 빛나고 있을까
헌팅턴 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
아침마다 작은 갯벌에 오던 바닷새들이 거기 있을까 [p. 197]
안타깝게도 영화 <편지>에 나온 황동규의 <즐거운 편지>와 같은 경우를 제외하면 나의 머리 속에서 흘러 다니는 시(詩)의 대부분은 학창시절에 때려 박은 것들이다. 때문에 고인(故人)이 되신 이어령님의 두 번째 시집이자 유고시집인 <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시(詩)들도 다 그런 시(詩)들이다.
그런 시(詩) 가운데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아들이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 그 슬픔을 표현한 정지용(鄭芝溶, 1902~1950)의 <유리창(琉璃窓) 1>이다.
유리(琉璃)에 차고 슬픈 것인 어른거린다.
열없이 붙어 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
물먹은 별이, 반짝, 보석(寶石)처럼 박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 이어니,
고운 폐혈관(肺血管)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산(山)ㅅ새처럼 날아갔구나!
정지용과 더불어 1930년대 모더니즘 시인으로 유명했던 김광균(金光均, 1914~1993)의 <은수저>도 감정을 절제하고 담담하게 표현한 비슷한 분위기의 작품이다.
산이 저문다.
노을이 잠긴다.
저녁 밥상에 애기가 없다.
애기 앉던 방석에 한 쌍의 은수저.
은수저 끝에 눈물이 고인다.
한 밤중에 바람이 분다.
바람 속에서 애기가 웃는다.
애기는 방 속을 들여다 본다.
들창을 열었다 다시 닫는다.
먼 들길을 애기가 간다.
맨발 벗은 애기가 울면서 간다.
불러도 대답이 없다.
그림자마저 아른거린다.
이런 시(詩)들을 볼 때, 어떻게 종이에 옮길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가슴이 펑 뚫린 듯한 허전함과 피눈물이 흐르는 듯한 안타까움이 눈을 가리우고 있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