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전체보기
블로그 전체검색
죽은 자에게 걸려 온 전화

[도서] 죽은 자에게 걸려 온 전화

존 르카레 저/최용준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헤세가 뭐라고 썼더라. <기이해라, 안개 속을 헤매노라면! 나무는 다른 나무를 보지 못하네. 모든 것이 홀로 있을 뿐>.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 아무것도. 스마일리가 생각에 잠겼다. 아무리 가깝게 지내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다른 사람의 가장 깊은 곳의 생각을 살펴도,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거야. [p. 56]

 

아무리 뛰어난 엘리트라고 해도 시간이 흐르면, 일선에서 물러나야 한다. 실제 스파이로도 활약했던, 존 르 카레(John Le Carre, 1931~ )의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조지 스마일리(이하 ‘스마일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스마일리에게 새뮤얼 아서 페넌(이하 ‘페넌’)이라는 외무부 직원과의 면담은 인생에 있어서 또 하나의 전기(轉期)가 되었다. 이 면담은 페넌이 옥스퍼드 대학시절 공산당원이었다는 투서 때문이었다. 지금 우리는 웃어넘길지 모르지만, 캠브리지 대학 재학시절에 소련에 포섭된 ‘캠브리지 5인조’의 활약으로 쑥대밭이 된 영국 첩보관련 부서들을 생각하면 보통 일이 아니다. 심지어 저자인 존 르 카레도 캠브리지 5인조의 일원인 킴 필비(Kim Philby, 1912~1988)1)에 의해 정체가 탄로나 스파이로서의 생명이 끝났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 일은 민감하게 다뤄야 할 문제였다.

 

문제는 스마일리와의 면담 다음 날, 페넌이 자기는 결백하며, 누명을 쓰게 되어 억울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는 점이다. 당연히 사실상 페넌에게 혐의가 없음을 인정했던 스마일리는 당혹스러운 마음으로 페넌의 죽음을 조사할 수 밖에.

 

이 작품에서부터 존 르 카레는 등장인물들에 대한 상세한 표현과 주인공의 내면적 갈등과 독백을 통해서 가면을 쓸 수 밖에 없는 스파이의 현실적인 모습을 잘 묘사하고 있다. 이런 보여지는 삶과 실제 삶의 괴리는 사람을 너무 예민하고 민감해서 정신적인 피로로 가득한 황량한 내면을 가지게 한다. 왜냐하면 그 실제가 밝혀지면 자신의 생존뿐만 아니라 자신이 사랑하는 모든 인물들까지 파괴될 수 있는 큰 위험부담을 일상적으로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담은 ‘6일 전쟁(=제3차 중동전쟁)’의 승리를 가져다 준, 이스라엘의 전설적인 스파이 엘리 코헨(Elie Cohen, 1924∼1965)2)조차 실수로 목숨을 잃은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스파이는 영화 007시리즈의 ‘제임스 본드’와 같은 인물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스파이는 존 르 카레의 작품에 나오는 스마일리와 같은 인물이 아닐까? 자신의 주변을 끊임없이 의심하면서, 일상에서 느끼는 사소한 즐거움까지 잃어버린.

 

그 일을 하며 스마일리는 자신이 점차 자연스러운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게 되는 것을 지켜보며 우울해졌다. 스마일리는 고립되었고, 이제 우정과 인간의 성실성을 믿지 않게 되었다. 스마일리는 통제되지 않은 반응을 보이지 않기 위해 신중을 기했다. [p. 12]

 

여기에 하나 더 하자면, 수많은 회사원처럼 그들도 그들이 몸담고 있는 조직에 의해 장기판의 졸(卒)처럼 사용되는 존재라는 것이다.

심지어 소설 속에 세계는 냉전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 속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전체를 위해 희생되어야 했을까? 그런 의미에서 냉전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플랜카드만 다를 뿐인 이란성 쌍둥이의 자기혐오를 표출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상황이기에 진영은 다를지라도 같은 졸(卒)끼리 묘한 공감에서 나오는 배려도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디터가 죽었고, 스마일리가 죽였다. 스마일리의 부러진 오른손 손가락들과 굳은 몸, 지끈거리는 두통, 죄책감에 따른 욕지기, 이 모든 것이 그 사실을 증명했다. 그리고 디터는 스마일리가 그렇게 하도록 그냥 두었다. 디터는 총을 쏘지 않았고, 스마일리가 기억하지 못한 둘 사이의 우정을 기억했다. 둘은 구름처럼 짙은 안개 속에서, 기세등등한 강물 속에서, 무한한 숲 속 공터에서 싸웠다. 둘은 만나, 친구 들이 만나 짐승처럼 싸웠다. 디터는 기억을 했고, 스마일리는 기억하지 못했다. 둘은 밤낮이 다른 반구에서, 사상과 행동이 다른 세계에서 왔다. 빈틈없고, 완벽한 디터는 문명을 세우기 위해 싸웠다. 이성적이고 방어적인 스마일리는 디터를 막기 위해 싸웠다. [p. 210]

 

아마도 그래서 존 르 카레의 소설이 읽다 보면 실감나면서도 씁쓸한 맛을 느끼게 되나 보다.

 

1) 킴 필비는 영국의 해외정보기관 MI6에서 내근요원으로 근무했고, 한때 미국의 정보기관 CIA와의 연락 업무도 맡은 적이 있었다. 훗날 정체가 발각되어 소련 망명 후에는 KGB에서 대령으로 근무했다. 그와 동료들, 소위 캠브리지 5인조’의 활약으로 MI6는 초토화됐고, CIA조차 피해 복구에 오랜 시간이 걸렸다. 킴 필비에 의해 정체가 탄로난 존 르 카레는 그를 모델로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를 저술했다.

2) 엘리 코헨은 아르헨티나에서 ‘카멜 아민 사베트(Kamel Amin Sa’bet)’라는 가명으로 부유한 사업가로 위장, 바트당의 유력인사를 비롯해 시리아의 상류층과 접촉, 친분을 쌓았다. 훗날 바트당이 쿠데타로 집권하자 친분 있는 군 작전장교를 앞세워 전선을 시찰했고, 6일 전쟁이 일어나자 난공불락을 자랑하는 시리아의 골란 고원을 함락시키는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했다. 뿐만 아니라 막대한 자금을 군과 정계에 풀면서 시리아의 국방차관으로 내정까지 되었다. 하지만 그가 무전기를 은닉한 아파트 근처에 있던 인도 대사관측이 괴(怪)전파로 교신이 곤란하다며 시리아 당국에 항의를 하면서 사태가 반전된다. 이를 접수한 시리아의 방첩당국이 소련군 정보국(GRU) 전파탐지팀의 협조를 얻어 이 전파를 추적, 엘리 코헨의 행적이 발각되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그는 처형되었다. 그의 행적은 넷플릭스에서 <더 스파이(The Spy)>로 영상화되었다.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6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고독한선택

    스마일리하니까 영화 [팅커 페일러 솔저 스파이]에 나온 게리 올드만 생각이 납니다. 소설을 읽고 본 영화였는데 머리속으로 그리던 스마일리의 느낌보다 더 분명한 인상이었습니다.

    2022.08.10 21:01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waterelf

      저도 그 영화를 보았는데, 당시 앞부분만 읽던 이 책의 '땅딸막한 체구', '우비 걸친 황소 개구리'라는 표현때문에 우리 주변의 다소 배가 나온 중년 남성을 연상했었답니다. 하지만 영화 속의 스마일리[게리 올드만]은 그런 모습이 아니라서 다소 당혹스러웠답니다.^^;;

      2022.08.10 21:41
  • 문학소녀

    물의요정님^^

    종종 스파이 활동을 다루는 tv 드라마를 볼 때도
    이런 괴리감이 들었던 것 같아요.~
    좋은 동료처럼 보이기 위해 이중적인 이미지로
    가면을 쓴 채로 살아가야만 하는 이들의 씁쓸한 삶의 이야기들이
    물의요정님이 올려주신 리뷰로 더욱 각인되는 것 같습니다.

    늘 한 편의 리뷰를 논문처럼 자세하게 써주셔서 항상 깊이감 있게
    물의요정님 리뷰를 읽게 되는 것 같아요.~!
    좋은 리뷰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편안하고 행복한 밤 되세요~물의요정님^~^

    2022.08.11 01:52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waterelf

      1. 가면을 쓴 채 살아가야 하는 것과 언제라도 정체가 발각되면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것에서 오는 예민함과 정체성 혼란이 불안한 그들의 삶을 만드는 것 같습니다.^^;;
      2. 문학소녀님, 늘 격려해주셔서 고맙습니다.^^

      2022.08.11 07:45
  • 스타블로거 진짜

    글을 읽는 동안 긴장감과 씁쓸함이 맴돌았습니다.
    저도 그 시리즈 한번 찾아봐야겠네요.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앗! 서평단 선정을 축하드립니다~~

    2022.08.11 10:49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waterelf

      1. 존 르 카레 본인이 스마일리의 모델이라는 얘기도 있답니다.^^
      호불호가 갈리는 스타일이지만, 스마일리가 나오는 [팅커 페일러 솔저 스파이]나 [스마일리의 사람들]도 번역되어 있으니 한번 읽어보시는 것도 괜찮을 듯 합니다.
      2. 진짜님, 축하해주셔서 고맙습니다.^^

      2022.08.11 19:40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