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전체보기
블로그 전체검색
창경궁 동무

[도서] 창경궁 동무

배유안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소년, 욕망을 가지다.

 

기 한 사람이 있다.

그의 이름은 정후겸(鄭厚謙; 1749~1776). 몰락한 양반가의 자식으로 태어났기에 그저 생계를 위해 고기잡이하는 아비를 따라 어부가 되는 것이 운명인 줄 알았던 아이였다.

 

하지만, 그의 생에 있어서 최초의 행운이 찾아왔다. 그의 나이 여덟 살 때, 영조(英祖)의 딸인 화완옹주(和緩翁主)의 집에 맡겨진 것이다. 이것은 그와 먼 친척 뻘이었던 정치달(鄭致達; ~1757)이 화완옹주의 남편이었기에 가능했던 행운이었다.

그때의 놀람과 기쁨을 그는 나는 이름있는 집에 살게 된다는 기대에 흥분해서 집과 가족을 떠난다는 서운함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굳이 아버지의 당부가 아니더라도 부디 이 집안 어른들 눈에 들어 학문도 익히고 출세도 하고 싶었다. 이 뜻밖의 행운을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았다.1)라고 표현했다.

 

그의 두 번째 행운은 한 사람의 죽음과 함께 찾아왔다. 바로 그에게 출세라는 욕망을 불어넣는 계기를 제공해주었던 정치달(鄭致達)이 죽은 것이었다. 이로 인해 그는 화완옹주의 집에서 쫓겨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여야 했다. 하지만 왕실에서는 옹주나 부마가 아들 없이 홀로 되면 왕이 즉시 양자를 정해주()2)관행이 그를 구해주었다. 뜻밖에도 화완옹주가 그에게 양자를 제의했던 것이다.

 

기에 자식과 남편을 잃은 딸을 안쓰럽게 여긴 영조가 화완옹주를 궁궐에 불러들이면서, 훗날 그와 악연을 맺게 되는 세손[훗날의 정조(正祖)]을 만나게 된다. 또래였기에 세손과 어울렸지만, 어울리면 어울릴수록 그는 핏줄의 차이에서 오는 차별에 상처받아야 했다.

영특하지만 너그러운 성격이 아니었던 그였기에 나는 학문이나 총명함에서 세손에게 전혀 뒤지지 않았고, 말솜씨며 사람 사귐도 그랬다. 궁녀들은 물론이고 어머니를 찾아오고 신료들에게까지 밝은 인사성과 재치로 호감을 받고 있었다. 뒤늦게 시작한 무술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내 생각에는 여러모로 내 쪽이 더 나았다.3)라고 생각을 하니 서러움이 복받칠 수 밖에.

 

 

소년, 무모한 도전을 하다.

 

난한 바닷가 아이에서 부와 권력을 가진 왕실 가족으로 극적인 신분상승을 경험한 정후겸(鄭厚謙)은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비극에 큰 충격을 받는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상황의 전개 속에서 그는 세자는 한 번 폐위되면 영영 세자가 되지 못할까? 그러면 세손[훗날의 정조(正祖)]도 더 이상 세손이 아니게 되나?4)라고까지 생각하게 된다.

그러자 그는 은밀한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나도 더 큰 무언가가 될 수 있다는 것, 되게 할 수 있다는 희망……

울부짖는 세손을 보고 가슴이 아파 눈물을 흘리면서도 한쪽에선 야릇한 기대감이 솟아오르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5)라고 고백하였다.

 

쨌든 사도세자의 죽음으로 세손을 두고 나 혼자 몰래 겨루었던 싸움이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6)

영조가 사도세자의 죽음에 후회하였는지,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세손을 동궁으로 삼았던 것이었다.

 

이렇게 되자 사라진 줄 알았던 세손에 대한 질투는 이제 적개심으로 변했다. 아니, 이제는 그와 그의 양어머니가 살기 위해 세손을 제거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 어쩔 수 없이 그는 돌이킬 수 없는 무모한 도전을 해야만 했다.

어느새 세손을 반대하는 무리의 두뇌역할을 하면서 이십 대에 참판이 될 정도로 승승장구했지만, 결국 그와 그의 무리는 패배하고 세손은 왕이 되었다.

 

 

패자는 말이 없다.

 

는 스스로 중얼거린 것처럼 행운을 불행으로 바꿔 살았던 어리석은 7)였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단지 하늘로부터 거듭된 행운을 받았기에, 더 얻고자 하는 갈망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간 자일뿐이다.

 

약 그 결과가 그를 패배자로 만들지 않았다면 다른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예컨대 그가 열한 살 때, 사도세자가 화완옹주에게 네 아들은 여기 두고 지금 바로 가서 (세자가 온양 온천에 가도록) 허락을 받아 오너라8)라고 윽박지른 일이 있었다. 보통 아이라면 두려워했을 텐데, 그는 도리어 어머니, 다녀오십시오. 저는 여기서 세자 저하와 세손[훗날의 정조(正祖)] 저하를 모시고 있겠습니다.9)라고 하면서 당찬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가 패배해서 몰락한 후, 세자빈이었던 혜경궁 홍씨는 이 모습을 두고, “조금도 겁먹는 뜻이 없고 당돌히 굴던 일을 생각하니 유별한 독물(毒物)이 아니면 어찌 그리하리오10)라고 못쓸 악인처럼 평가했고, 이것이 그의 대한 평가로 내려왔다.

 

국 다툼의 동기가 무엇이건 패배자는 말이 없는 셈이다.



1) 배유안, <창경궁 동무>, (생각과 느낌, 2009), p. 25

2) 신명호, <조선공주실록>, (역사의 아침, 2010), p. 259

3) 배유안, 앞의 책, p. 57

4) 배유안, 앞의 책, p. 161

5) 배유안, 앞의 책, p. 175

6) 배유안, 앞의 책, p. 177

7) 배유안, 앞의 책, p. 194

8) 배유안, 앞의 책, p. 65

9) 배유안, 앞의 책, p. 66

10) 신명호, 앞의 책, p. 259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4

댓글쓰기
  • 노란토끼

    어머나.. ^^ 오늘 리뷰는 다른 날들보다 훨씬~ 재미있었어요!! 좋은 리뷰~

    2013.05.24 08:55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waterelf

      1. 딸아이에게 넘기기 전에 읽어보았는데,
      이 책은 술술 읽히고 (리뷰도) 술술 써지더군요.^^
      2. 노란토끼님! 좋은 리뷰라는 칭찬, 감사합니다.^^*

      2013.05.24 20:38
  • 새벽2시커피

    아니아니 이게 아이들 읽는 책이라고욧+ㅁ+ 읽으면서 깜짝 놀랐어요 저도 읽어야겠어요+.+

    2013.05.24 11:42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waterelf

      1. 요즘은 아이들이 읽은 책들도 진화하나봐요.^^
      2.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느낌을 주는 책들이 많이 있더군요.

      2013.05.24 20:39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