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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주의 결혼식

[도서] 옹주의 결혼식

최나미 글/홍선주 그림/전국초등사회교과모임 감수

내용 평점 3점

구성 평점 3점

궁 안의 천덕꾸러기

 

훗날 숙신옹주(淑愼翁主; 세조실록에는 숙순옹주(淑順翁主)으로 기재)가 되는 운휘는 조선 건국의 또 다른 주역이었던 태종(太宗; 李芳遠, 1367~1422) 17번째 딸로 태어났다. 하지만 어머니 덕숙옹주 이씨(德淑翁主 李氏;? ~ 1433)은 아버지에 의해 궁 밖으로 쫓겨났고, 그 아버지 조차도 그녀가 어렸을 때 세상을 떠났기에 사실상 고아로 자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밝고 건강하게 자라났다.

하지만 문제는 그녀는 새장 속의 새가 되어야 하는 왕녀의 신분을 가졌다는 점이었다.

 

염상궁은 잠시 얼굴을 찌푸렸으나 곧 운휘를 엄하게 나무랐다.

아기씨, 아기씨는 온 백성이 우러러 마지않던 선왕[태종(太宗)]의 따님이십니다. 왕녀가 선왕의 이름에 누를 끼치는 일을 하시면 되겠습니까? 지난번에 아기씨를 지키지 못한 죄로 내사복시(內司僕寺) 관원들이 큰 벌을 받았던 사실을 기억해 보세요. 아기씨께서는 별 뜻 없이 가신 거라고 해도 아기씨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본다면 당연히 아기씨가 알아서 조심하셔야지요. 그게 왕녀의 도리입니다.”

~ 중략 ~

, 몰라! 나는 망아지를 키우는 것도 안 되고, 망아지가 죽었다는데 가 보는 것도 안되고,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혼날까봐 내사복시(內司僕寺) 근처에도 가면 안 된다는 거잖아! 그럼 나는 뭘 할 수 있는데!1)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이들처럼 자신의 느낌과 감정에 솔직한 운휘에게 있어서 이런 공주의 삶은 불편하고 재미없는 일상에 불과했다. 그러다 보니 한 나라의 주인이자 배다른 오빠인 세종(世宗; 1397 ~ 1450)에게 있어서 운휘의 행동 하나하나가 철없는 아이의 사고로만 보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친영례(親迎禮)의 도입과 변질

 

흔히 시집살이로 알려진 친영례(親迎禮)의 도입은 이 소설에서 숙안옹주(淑安翁主; ?~1464)시댁의 숙부가 얼마 전에 명()나라 사신을 맞이하는 자리에 있었는데, 사신이 어찌나 거만을 떠는지, 눈뜨고 볼 수가 없더래. 글쎄, 연회 중에 처가에서 사는 우리 혼인풍속이 미개하다면서 빠른 시간 안에 명()나라 혼인 풍속을 받아들이라고 반협박을 하더라는 거야2)하고 말했던 것처럼 중국의 압력에 의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고려 왕조에 뚜렷한 명분없이 역성혁명을 일으켜 조선을 세운 왕을 비롯한 집권층에게 성리학의 사상과 예제의 확산은 매우 중요한 과제였다. 이때 제일 먼저 폐지해야 할 구습으로 지목된 것은 고구려 때부터 지속되어온 남귀여가혼(男歸女嫁婚; 서류부가제(壻留婦家制)라고도 한다.)의 혼인풍속이었다. 이는 고려 말에 정도전(鄭道傳; 1342~1398)에 의해 처음 제기되었는데, 그는 이런 풍습 때문에 여자들이 자기 부모를 믿고 남편을 가볍게 여긴다며 친영례(親迎禮) 실시를 주장3)하였다고 한다. , 조선이 통치이념으로 내세운 성리학을 확립하기 위한 수단으로 친영례(親迎禮)를 도입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신랑의 집에서 신부를 맞이하여 혼례를 올리는 친영(親迎)’이라는 혼인제도는 <주자가례(朱子家禮)>라는 성리학적 당위(當爲)를 등에 업고도 뿌리깊게 박힌 전통적 혼인제도를 쉽게 바꿀 수는 없었다.

세종(世宗)숙신옹주(淑愼翁主)을 결혼시켰을 때, 중종(中宗; 1488~1544)이 문정왕후 윤씨(文定王后 尹氏; 1501~1565)와 결혼할 때, 각각 친영례(親迎禮)에 따름으로써 왕실이 솔선수범했음에도 불구하고 친영례(親迎禮)는 좀처럼 수용되지 않았다.

심지어 지배계층인 사대부조차도 제대로 친영례(親迎禮)를 시행하지 않았다. 이는 시어머니 홍씨가 늙어 가사를 돌볼 수 없게 되자 결혼 후 19년 만에 시댁에 정착, 사임당(師任堂) 신인선(申仁善; 1504~1551)의 경우만 봐도 알 수 있다.

 

그 결과 서류부가혼(壻留婦家婚)결혼 후 거주지는 여전히 처가에 머무르며 단지 혼례 절차에서만 변화를 가져온 이른바 반친영제(半親迎制)(변경되어) 조선 중기 이후 혼례의 주류4)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성리학적 가치질서를 수호한다고 자부했던 사대부들이 차선책으로 선택한 것이 바로 가관친영례(假館親迎禮)이다. 하지만 가관친영례(假館親迎禮)는 혼인 절차상의 변화일 뿐 주자가례에서 제시하고 있는 전형적인 친영제(親迎制)는 아니었다. 혼인 후 거주 방식이 여전히 친정집이었던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혼인을 치르고도 시부모를 보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노론의 영수였던) 김수항(金壽恒; 1629~1689)가의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는데, 김수항의 딸은 혼인한 후 얼마 되지 않아 죽었고 그 때까지도 시부모를 보지 못해 혼인후 거주지가 여전히 신부 집이었음을 보여준다. (송시열과 함께 당대 예학을 대표하던)5) 이유태(李惟泰; 1607~1684)가의 (경우에도) 사돈인 윤문거(尹文擧; 1606~1672)와 주고받은 서신을 통해 혼인 후 며느리가 친정집에 상당 기간 거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당일 상견례(相見禮), 명일 현구고례(見舅姑禮; 폐백), 그리고 혼인 후 시댁에 거주하는 것을 의미하는 본래의 친영제(親迎制)는 시행되지 않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6)

 

 

성리학적 명분/가치질서의 희생자

 

결혼이란 온전한 내 편을 가지는 것이라고 하지만, 운휘에게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자신의 편이 되어주어야 할 남편 파원군(坡原君) 윤평(尹泙)이 전형적인 마마보이였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윤평(尹泙)의 할머니가 ()이 그 놈은 속이 좁아서 큰일은 못 할 거야. 제 어미가 그렇게 만들었지. 큰 애가 죽은 뒤로 얼마나 치마폭에 싸고 돌았는지, 뭐 하나 제 어미 뜻을 거스르는 걸 못 봤어. 제 어미는 그게 심성 고운 거라고 자랑하지. 내가 보기엔 미더운 아들은 될지 모르지만 훌륭한 남편이 되긴 글렀어.7)라고 평가할 정도의 사내였다.

 

게다가 부마(駙馬)가 되어 받는 불이익보다 적은 유/무형의 혼수는 운휘를 시모(媤母)의 눈 밖에 나게 만들었다.

시작부터 어긋난 고부(姑婦)관계는 형편이 어려워 보이는 아이들에게 음식을 나눠 주려던 운휘에게 시어머니가 옹주 앞으로 나온 봉록은 문중에서 따로 쓰고 있으니까 옹주는 신경 끄세요. 그리고 파원군(坡原君)한테 생모의 제사를 모시자고 했다면서요? 그건 안 될 일입니다. 아들이 있는데, 출가한 딸이 왜 제사를 모십니까?8)라고 쏘아붙이면서 폭발한다.

 

태어나서 아비의 뜻을 좇고, 혼인하면 남편의 뜻을 좇고, 늙어서는 아들의 뜻을 좇는 게 여자가 따라야 할 삼종지도인데, 그건 자기 뜻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말이잖아. 그러다가 잘못이라도 하면 그 집안에서 쫓겨날 수도 있고, 나라를 위해 뜻을 펴는 것도 남자, 가문을 일으키는 것도 남자, 남자가 일을 잘 할 수 있게 도와주고 그 집안의 대를 이을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게 부인의 덕이라면 좋은 혈통의 말을 얻기 위해 종마가 있는 것과 뭐가 다르냐!9)라는 생각을 가진 운휘에게 시댁이란 더없이 답답하고 불편한 곳일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운휘는 구겨진 혼서지(婚書紙)를 팽개치고는 찾으려고 했던 것을 기어이 뒤져 꺼냈다. 혼인하기 전에 중전이 내려 준 배내옷이었다. 운휘는 그것을 안고 무작정 대문을 나섰다.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조차 알 수가 없었다.10)라는 마지막 부분처럼 집을 나선다. <인형의 집>의 노라처럼.



1) 최나미, <옹주의 결혼식>, (푸른숲주니어, 2011), p. 21

2) 최나미, 앞의 책, p. 98

3) 이기담, <조선의 재산상속풍경>, (김영사, 2006), p. 194

4) 이혜순, <조선 중기 예학 사상과 일상 문화>, (이대 출판부, 2008), p. 110

5) 이혜순, 앞의 책, p. 11

6) 이혜순, 앞의 책, p. 113

7) 최나미, 앞의 책, p. 161

8) 최나미, 앞의 책, p . 168

9) 최나미, 앞의 책, p. 120

10) 최나미, 앞의 책, p. 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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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란토끼

    인형의 집 노라.. 딱 와닿는 리뷰예요. 오늘 리뷰는 참 재미있네요^^
    정말 오랜만에 놀러왔어요. 잘 지내셨죠?

    2013.10.30 09:00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waterelf

      1. "오늘 리뷰는 참 재미있네요."라는 노란토끼님의 격려에 감사드립니다. *^_^*
      2. 그런대로 잘 지내고 있답니다.

      2013.10.30 21:48
  • 티라미슈

    성리학... 양란으로 인한 집권세력들의 변질된 몸부림에 희생양이 되어버린 가부장적인 가족화.
    역사공부하는 아이들이 읽어보면 그 시대 사회상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추천하고 싶네요.^^~

    2013.10.30 18:45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waterelf

      1. 아무래도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통해 양반의 권위가 무너졌으니까요.
      잃어버린 권위를 손쉽게 되찾기 위해서는 무리수를 둘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2. 역사동화들이 많이 나와서 아이들이 좀더 역사를 친근감있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은 좋은 데, 전공자들의 꼼꼼한 감수가 없다면 요새 TV에서 "사극"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오는 판타지 드라마를 반복하는 결과가 나올까 다소 우려되기도 합니다.^^

      2013.10.30 21:53
  • 파워블로그 꽃들에게희망을

    내용이 예상밖이네요. 왕실의 혼인이라 낭만적인 내용일 줄 알았는데..^^

    2013.10.31 23:35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waterelf

      1. 왕실의 혼인이지만, 불행히도 최초의 "시집살이"를 다루는 내용이라서 낭만과는 거리가 있답니다.^^;;
      2. 실제 왕실의 혼인도 그다지 낭만적이지 않으리라 생각하지만...

      2013.11.01 06:49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