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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영, 내 것을 버려 모두를 구하다

[도서] 이회영, 내 것을 버려 모두를 구하다

김은식 글/김호민 그림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삼한갑족(三韓甲族)’의 자제, 기득권을 포기하다.

 

우당(友堂) 이회영(李會榮, 1867~1932)은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의 후손으로 조선시대에 그만큼 많은 재상을 배출한 집안은 다시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1)의 양반 가문에서 자랐다.

그렇기 때문에 이회영은못 먹고 못 배운 밑바닥 백성의 삶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다. 물론 그들의 삶에 대해 깊이 헤아려 본 적도 별로 없었고, 그들을 위해 어떤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적도 거의 없었다. 2)

 

하지만 친구인 이상설(李相卨, 1870~1917)의 권유로 양반 사대부들만 상대하는 서양 선교사와는 달리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주로 만나고 다니는3)전덕기(全德基, 1875~1914)를 만나고, 그를 통해 백성들의 비참한 삶을 알게 되면서 지금까지의 삶에 대해 반성하게 된다.

대대로 높은 벼슬을 지낸 조상들을 지금껏 자랑스럽게 여겨 왔다. 그리고 자신도 곧 과거에 합격해 가문을 빛내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보살펴야 할 백성이 얼마나 어렵게 사는지 알지 못했고, 사실 관심조차 없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게다가 나라에 힘이 없고, 백성이 가난한 데에는 수대에 걸쳐 높은 벼슬을 한 조상들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늘 빛나 보이던 가문이 문득 무거운 마음의 빚으로 다가왔다.4)고 느끼게 된 것이다.

 

을사늑약(乙巳勒約)이 체결되자, 이회영은 헤이그 밀사 사건을 기획하고 추진했지만 냉혹한 국제관계라는 두터운 벽에 막혀 실패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회영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처럼 무력감을 느끼면서도 좌절하지 않고, 미래를 위해 해외에 독립운동 기지를 마련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를 위한 장소를 물색하던 중에 경술국치(庚戌國恥)를 당하자, 이회영 일가는 가족회의를 통해 가산을 정리하고 삼원보(三源堡)로 향했다.

해외 독립운동의 근거지로 예정된 그곳을 향해 건영(健榮), 석영(石榮), 철영(哲榮), 회영(會榮), 시영(始榮), 호영(頀榮) 6형제와 그들의 가족, 그리고 대대로 함께 살아 온 노비를 포함하여 60여 명이 갖은 고생을 하면서 도착했지만, 그들을 맞이한 것은 만주족과 한족(漢族)의 차가운 시선이었다.

 

마적(馬賊)의 습격으로 총상을 입어도총 맞은 상처에 바를 약이 없어서 대신 치약을 썼을 만큼 형편없었던 것이 당시 이회영과 가족들의 삶이었다. 만주에 정착한 지 3년째 되던 해에 태어난 아들 규창이 채 돌도 지나기 전에 마적이 지른 불에 얼굴을 데어 평생 상처를 안고 살아야 했던 것도 그 숱한 고생들의 한 단면이었다.5)

이런 고난을 겪으면서도 그들은 우리가 국사교과서에서 보는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항일투쟁의 싹을 틔웠다.

 

그러나 105인 사건으로 신민회가 붕괴되어 자금줄이 봉쇄되자, 어쩔 수 없이 이회영 일가가 망명하기 전, 일가의 재산을 모두 처분하여 만든 40만원(오늘날 600억 원에 해당)을 우선 투입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막대한 재산도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고, 무장독립투쟁의 지속을 위해 추가적인 자금의 수혈이 필요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무너질 것 같은 위기감에 이회영은 호랑이 입에 자신의 머리를 집어넣고라도 꺼져가는 독립운동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서울로 향했다.

하지만 인심은 야박했다. 이회영은 서울로 돌아오기만 하면 옛 친구와 동지들이 반겨 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멀리 만주 벌판에서 나라를 되찾기 위해 일하고 있는 동지들을 위해 아낌없이 자금을 모아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사정은 달랐다. 자금을 지원하겠다는 이는 거의 없었고, 오히려 대부분 이회영과 친분이 있다는 게 알려질까 봐 부담스러워하는 기색이 뚜렷했다.6)

 

 

나쁜 가장, 훌륭한 지도자

 

이회영의 아들 이규창은 아버지가 엄청난 부자였고, 또 집안이 조선에서 제일가는 명문가였다는 것은 어머니와 형님들에게 들어서 알고 있는 한낱 이야기일 뿐이다. 그 어마어마했다는 재산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우겠다는 뜻 하나만으로 국경을 건넌 청년들을 위해 모두 쓰여 사라진 지 오래였다. (내가) 자라면서 겪고 보고 배운 것은 지독한 가난과 그 때문에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야 했던 생이별의 고통, 그리고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는 가운데서도 오로지 조국 해방의 길에만 골몰하던 아버지의 야속하고 답답한 모습이었다.7)라고 회고했다.

 

규창은 단지 지독한 가난이라고 말했지만, 그들의 현실은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비참했다. 1927년 겨울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 1879~1962)은 북경을 가던 길에 이회영의 집에 들려보니, 조선에서 손꼽히던 거부였던 명문대가 자손들이 막내딸 옷가지까지 전당포에 맡긴 채 며칠째 먹지도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온기 한 점 없는 냉방에서 이불을 둘러쓰고 (일주일이나) 오직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8)

 

게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희미해지는 독립의 가능성, 날로 심해지는 배고픔, 가까운 사람들의 배신이 희생되는 동지들, 조그마한 권력이라도 서로 잡기 위해 기호파(畿湖派)9)와 서북파(西北派)10)로 갈려 아귀다툼을 하는 상해임시정부의 지도자들.

 

견디다 못한 이석영(李石榮, 1855~1934)의 아들 이규서(李圭瑞, 1912~1933) 이회영을 체포하기만 하면 강제로라도 서울로 보내 살게 하겠다11)는 일본의 감언이설에 넘어가 만리타향에서 굶어 죽는 것만은 모면하기 위해 숙부인 이회영의 행적을 밀고할 정도로.

 

사실 자녀의 입장에서만 생각하자면 이회영이 좋은 아버지였다고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조차도 모든 재산을, 열정을, 생명을 독립이라는 단 한 가지 명제를 위해 기꺼이 바친 이회영 일가의 삶을 표현하기에 부족하다고 느껴질 만큼 그들이 겨레의 사표(師表)였음은 분명하다.

오늘날 어느 누구도 감히 떠라 하지 못할 만큼.

 

오직 권력만을 위해 편가르기에 정신 없는 지금의 정치가(사회운동가를 포함하여)들을 보면 이회영과 그의 형제들이 더욱 그리워진다.



1) 김은식, <이회영, 내 것을 버려 모두를 구하다>, (봄나무, 2010), p. 34

2) 김은식, 앞의 글

3) 김은식, 앞의 책, p. 27

4) 김은식, 앞의 책, pp. 38~39

5) 김은식, 앞의 책, p. 112

6) 김은식, 앞의 책, p. 129

7) 김은식, 앞의 책, pp. 22~24

8) 김은식, 앞의 책, pp. 183~184

9) 기호파(畿湖派) - 임시정부의 주류, 보수성향, 이승만 등 서울, 경기도 & 충청도 출신이 많다.

10) 서북파(西北派) - 임시정부의 비주류, 개혁성향, 안창호 등 평안도 출신이 많다.

11) 김은식, 앞의 책, p. 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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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벽2시커피

    모든 것을 다 바친 분들이 있어 오늘날의 한국이란 나라에서 제가 우리말을 쓰고 이렇게 사는구나하고 감사하면서도 안타까움때문인지 먹고 살정도는 유지하고 독립운동 하시지 싶어요 독립운동가였던 이들이 제대로 보상받고 살지 못해서요

    2014.09.13 14:42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waterelf

      1.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저렇게 모든 것을 바쳐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의 피와 땀이 그나마 지금의 대한민국을 유지하는 원동력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2. 이회영 일가 뿐 아니라 대한제국의 고관 가운데 유일하게 독립운동을 하다가 순국한 동농 김가진 일가도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또 다른 대표랍니다.
      아들(김의한, 김용한)과 며느리(정정화), 손자(김석동)까지 독립운동에 투신했고 그 업적을 인정받았지만,
      동농 김가진 본인은 일제가 내린 남작 작위를 공식적으로 반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훈장도 받지 못하고 있답니다.^^;;

      2014.09.13 20:53
  • 스타블로거 초보

    이회영이 식민지시절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모든것을 내던졌음에도, 해방후 제대로 활동하지 못한 것은 거꾸로 청산당했기 때문이지요... 오늘날 떵떵거리는 그들과 그들의 조상에 의해서... 쩝~

    2014.09.16 07:17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waterelf

      우리 힘으로 해방을 이루어내지 못했기에 제대로 된 청산을 하지 못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2014.09.16 19:15
  • 만병통치약

    2014년에 저런 분이 또 나타날까요?

    2014.09.17 14:14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waterelf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렇게 모든 것을 다 바쳐 헌신하느라 후손들을 돌보지 못해 자손들이 힘들게 살게 한 선례(先例)가 있으니... ^^;;

      2014.09.17 19:42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