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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먼, 진실한 대통령 진정한 리더십

[도서] 트루먼, 진실한 대통령 진정한 리더십

정숭호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운 없는 사나이, 보상을 받다.

 

미국 33대 대통령인 트루먼(Harry S. Truman)은 미주리 주()의 시골마을 라마의 “농사로 그럭저럭 먹고 살 수는 잇는 집안의 2 1녀 중 장남1)”으로 태어났다. 하지만 아버지가 곡물 선물투자를 시도했다가 크게 실패하여 집안 사정이 갑자기 어려워지면서 대학 진학을 포기해야만 했다

뿐만 아니었다. 아버지 농장에 일손이 모자라 안정된 은행원 생활을 그만두고 11년 동안 전업 농부 생활을 (해야)했다.2)

 

1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제대한 그는 군대 시절 부하와 함께 미주리 주의 대도시인 캔자스시티에 셔츠, 모자, 넥타이 등을 판매하는 남성용품점을 차렸지만 불경기로 3년 만에 큰 빚만 지고 가게 문을 닫아야 했다. 3)

 

이 무렵 고향 친구이자 1차 대전 때의 전우(戰友)였던 짐 팬더개스트(Jim Pendergast)의 권유에 의해 정계에 입문을 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평생 그의 트라우마로 남은 미주리 주의 정상배(政商輩) 토마스 팬더개스트(Thomas J. Pendergast, 1873~1945; 이하 ‘톰 팬더개스트’)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어쨌든 잭슨 카운티 동부지역 판사선거에 출마한 트루먼은 농산물 가격 급락으로 파산 위기에 처한 잭슨 카운티의 농부들과 소상공인들의 지원으로 당선이 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당선이 유력한 돈 많은 은행가보다는 자신들처럼 농사를 지었으며 사업을 하다 실패한 농부의 아들인 트루먼에게 동류의식을 느꼈기 때문이다.4)

 

잭슨 카운티에서 동부지역 판사와 수석 판사로 근무하는 동안 그는 현지 상황을 숙지하여 납세자의 편익을 우선시하는 행정을 펼쳤다. 덕분에 그는 주민들의 높은 지지를 얻을 수 있었지만, 그가 속한 팬더개스트 조직 구성원들의 반발을 감수해야 했다. 다행히 조직의 보스인 톰 팬더개스트가 트루먼의 순수성이 자신의 조직이 100% 썩지는 않았음을 과시하는 간판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해서 용인5)해준 덕분에 트루먼도 버틸 수 있었다.

 

두 번째 수석 판사의 임기가 만료된 후 트루먼에게는 우연을 가장한 또 다른 행운이 찾아왔다. 마땅한 적임자를 찾지 못한 팬더개스트 조직이 그를 미주리 주 상원의원으로 추천한 것이다. 하지만 비록 상원의원은 되었지만 이로 인해 평생 ‘팬더개스트의 심부름꾼’이라는 주홍글씨를 감수해야 했다.

 

그가 부통령 후보가 된 것도 비슷한 사정이었다. 적당히 보수적이면서도 흑인인권에 대해서는 전향적이며, 노동계의 이익 대변에도 앞장섰고 종교문제에서도 시빗거리가 없는 사람6)”으로 평가 받은 덕분에 예상외로 F. 루즈벨트의 러닝메이트가 될 수 있었다.

 

 

무능한 대통령?  No!

 

33대 대통령인 된 트루먼은 “거의 또는 전혀 카리스마가 없고 대부분 관찰자들이 이해했던 것보다 더 부서지기 쉬운 이기심과 투쟁했으며, 다른 사람들을 기술적으로 잘 다룰 필요성에 대해 극도의 혐오감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훌륭한 관리자였으며 중요한 일에 대해 건전한 판단을 하는 사람으로서, 적어도 그는 자신의 약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장점보다는 약점이 더 분명했기 때문에 ‘소인’으로 간혹 동년배들에게 묵살되었지만 실제로 그는 20세기 대통령들 중에서 훨씬 중요하고 성공적인 대통령이었다.7)

 

그는 “여론조사 결과를 보고 결정을 하는 것은 아무런 결정을 하지 않는 것과 같다. 대통령은 여론 조사 결과를 보고 정책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8)”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대통령의 의무를 행사해야 하는 순간에 그 결정을 남에게 미루지 않고 본인이 오롯이 그 책임을 졌다.

 

그래서일까?  트루먼은 대통령 재임 중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도 중요한 결정과 결단을 많이 내렸다. 그의 결정 가운데 원자폭탄의 투하, 트루먼 독트린, 한국전 참전 결정 등이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결단이라면, 흑인 민권법 도입, 강성 노조에 대한 강경 대책은 미국 사회를 크게 변화시킨 결단이라고 할 수 있다.9)

 

 

다시 시민으로

 

간이역 유세를 통한 유권자들과의 직접적인 소통은 트루먼이 기적적으로 공화당의 듀이 후보를 이기고 대통령으로 선출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그 여운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가 참전을 결정한 “한국전쟁에서 중공군이 개입하면서 미군이 밀리고 희생자가 크게 늘어나자 미 국민들은 트루먼을 무능하고 무력한 지도자라고 다시 비난하기 시작10)”한 것이었다. 여기에 인천상륙작전의 영웅 맥아더를 파면한 일은 불에 기름을 퍼붓는 격이 되었다.

 

뿐만 아니었다. 빈부격차를 줄이고 인종이나 성에 관계없이 누구나 공정한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11)” ‘페어딜(Fair Deal)’이라는 이름의 사회경제개혁을 추진했으나 무산되었다. 여기에는 메카시 광풍으로 사회주의적 개혁에 공개적으로 지지하기 어려웠다는 점도 작용했다.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난 후 그는 어떠한 공직도 맡지 않고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트루먼은 회고록 집필과 트루먼 도서관 건립에 몰두하였다.

그가 “ “회고록은 이야기(Story)가 아니라 역사(History)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트루먼 회고록은 “역대 대통령들 대다수가 피하려고 했던 일, 즉 대통령 재임 시 있었던 일을 상세하게 남겼다”는 점에서는 찬사를 받았으나 트루먼 본인은 물론 당대 주요 인물에 대해 “생생하고 역동적인 면모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어 공문서 같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12)

 

이러한 역사에 대한 트루먼의 집착은 트루먼 도서관에 진솔하고 방대한 자료를 남길 수 있었다. 덕분에 그의 사후(死後), 이 자료들을 활용하여 그를 재평가하면서 그에 대해 호의적인 결론이 쏟아지게 되었다.

 

 

비록 그가 남긴 “리더는 사람들이 싫어하는 일을 하게 만들 뿐 아니라 그 일을 좋아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다. (A leader is a man who has the ability to get other people to do what they dont want to do, and like it.)라는 말을 그 자신도 온전히 지키지는 못했지만 그의 삶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평생 원칙을 지키고 정직하게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정치인이라면.

 

그러기에 원칙과 소통으로 대표되는 그의 삶과 리더십에 다시 시선이 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에 대한 리뷰입니다.

 


 

1) 정승호, <트루먼, 진실한 대통령 진정한 리더십>, (인간사랑, 2015), p. 15

2) 정승호, 앞의 책, p. 16

3) 정승호, 앞의 책, p. 40

4) 정승호, 앞의 책, p. 42

5) 정승호, 앞의 책, pp. 57~60

6) 정승호, 앞의 책, pp. 153~154

7) 조지프 나이, <미 대통령 리더십과 미국시대의 창조>, 박광철/구용회 옮김, (인간사랑, 2015), p. 171

8) 정승호, 앞의 책, p. 172

9) 정승호, 앞의 책, p. 149

10) 정승호, 앞의 책, p. 250

11) 정승호, 앞의 책, p. 256

12) 정승호, 앞의 책, pp. 269~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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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수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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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ena

    저도 트루먼을 무능한 대통령의 한 사람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를 재평가한 책이군요.

    2016.07.09 13:55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waterelf

      1. 저도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2. 의외로 미국의 역대 대통령 가운데 Best 10에 속하는 것을 보면, 지금은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보아야겠죠.

      2016.07.09 22:24
  • 스타블로거 초보

    원칙과 소통으로 대표되는 삶이기에 후세의 평가가 좋은것 아닌가 싶습니다.
    바꿔말하면 그런 사람들이 점점 없어지고 오만과 아집이 판을 친다는 말일게고요..

    2016.07.12 14:36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waterelf

      初步님의 말씀대로 원칙과 소통으로 대표되는 삶이기에 후세의 평가가 더 좋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2016.07.12 19:02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