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전체보기
블로그 전체검색

1. 조선 왕공족(王公族)

    한일병합조약 제3조에 근거하여 순종과 그 직계에 대해서는 왕족으로, 방계는 공족으로 규정.

    일본 황족과 동등한 예우를 받고 '전하'라는 존칭을 사용하도록 규정.

 

작위

수작자

습작자

비고

공족

흥친왕

이희(李熹)

이준용(李埈鎔)-

이우(李鍝)

고종의 . 이재면에서 이희로 개명. 운현궁

1917 의친왕의 차남 이우[이준용의 양자] 작위 습작

의친왕

이강(李堈)

이건(李鍵,)

고종의 다섯째 아들. 사동궁.

상해망명 실패 여행의 자유 박탈당함. 1919 대동단 총재 명의로 독립선언서 공포. 1921 대한민국 대표단 독립청원시 황족대표로 서명.

1930 장남 이건에게 작위 습작.

이건은 1955 일본으로 귀화.

 

2. 조선 귀족

    1910년 일본 황실령 14호  "조선귀족령"이 공포되면서 종친, 문지(門地), 훈공이라는 기준에 따라 선정된 고위급 인물들을 후작, 백작, 자작, 남작에 봉작. [공작(公爵)의 작위는 존재하지 않음]

    일본 화족(華族)과 동등한 예우를 받도록 규정.

작위

수작자

습작자

비고

후작

이재완(李載完)

이달용(李達鎔)

종친. [사도세자의 현손]. 완순군.

이재각(李載覺)

이덕용(李德鎔)

종친. [사도세자의 현손]. 의양군.

이해창(李海昌)

이덕주(李德柱)

종친. 경원군 이하전의 양자.

이해승(李海昇)

종친. 청풍군

윤택영(尹澤榮)

윤의(尹毅燮)

순종의 장인. 일명 부채왕

1928 파산 선고후 작위박탈

1935 차남 윤의섭이 습작.

but 장녀 순정효황후[순종의 , 1894~1966] 오빠인 윤홍섭을 통해 내탕금 10만원을 임정 설립 자금 지원.

장남 윤홍섭 부채에 시달렸으나 일제의 회유를 거부.

박영효(朴泳孝)

박찬범(朴贊汎)

철종의 부마.

백작

이완용(李完用)

이병길(李丙吉)

을사5. 정미7. 경술국적. 1920 후작으로 승작.

but 장남 이승구(李升九, 1880~1905) 애국 계몽 운동에 참여했으나 자손없이 요절.

차남 이항구의 첫째 아들 병길이 이승구의 아들로 입양하여 습작. 

이지용(李址鎔)

이영주(李永柱)

종친. 고종의 5 조카. 을사5.

경술국치후 도박에 빠져 가산 탕진. 작위는 양손자가 습작.

민영린(閔泳璘)

순종의 처남.

1919 아편 흡입으로 징역3, 집행유예 3 선고 받고 작위 박탈.

자작

송병준(宋秉畯)

송종헌(宋鍾憲)

정미 7. 1920 백작으로 승작

고영희(高永喜)

고희경(高羲敬) -

고흥겸(高興謙) -

고중덕(高重德)

정미 7. 경술국적. 1920 백작으로 승작

이완용(李完鎔)

이택주(李宅柱)

종친. 사도세자의 5대손.

이기용(李埼鎔)

종친. 고종의 5 조카.

박제순(朴齊純)

박부양(朴富陽)

을사5. 경미국적

박제순의 손자 박승유(朴勝裕, 1924~1990) 일본군을 탈출, 광복군에 합류하여 대일 선전활동  참여. 독립유공자로 서훈. (애족장)

조중응(趙重應)

조대호(趙大鎬) -

조원흥(趙源興)

정미7. 경술국적.

민병석(閔丙奭)

민홍기(閔弘基)

경술국적.

이용직(李容稙)

한일병합조약(1910) 적극적으로 반대하다가 쫓겨남.

3.1 운동때 독립청원서 제출로 작위 박탈

김윤식(金允植)

한일병합조약(1910) 소극적으로 반대

3.1 운동때 독립청원서 제출로 작위 박탈, 투옥

권중현(權重顯)

권태환(權泰煥)

을사5.

이하영(李夏榮)

이규원(李圭元)

이근택(李根澤)

이창훈(李昌薰)

을사5

임선준(任善準)

임낙호(任洛鎬) -

임선재(任宣宰)

정미7.

이재곤(李載崑)

이해국(李海菊)

정미7.

이재곤의 셋째 아들 이관용(李灌鎔, 1894~1933) 2 국제사회주의자 회의[=만국사회당 회의] 조소앙(趙素昻, 1887~1958) 함께 참석하여 한국사회당 명의로 한국독립승인결의안 제출, 통과시켰다. 귀국후 신간회 간사로 활동하다가 광주학생사건으로 투옥되었다가 가출옥 상태에서 익사하였다. 독립유공자로 서훈.(애국장)

윤덕영(尹德榮)

윤강로(尹强老)

경술국적.

윤택영의

조민희(趙民熙)

조중수(趙重壽) -

조용호(趙龍鎬)

경술국적.

이병무(李秉武)

이홍묵(李鴻默)

정미7. 경술국적.

이근명(李根命)

이충세(李忠世) -

이종승(李鍾承)

을사조약에는 반대 상소, 후에 친일파로 전향

민영규(閔泳奎)

민병삼(閔丙三)

민영소(閔泳韶)

민충식(閔忠植)

 

민영휘(閔泳徽)

민형식(閔衡植)

본인은 휘문고 설립

양자인 민형식 올사오적 암살단에 거액의 자금 지원, 신민회에 가입.

김성근(金聲根)

김호규(金虎圭)

남작

윤용구(尹用求)

거절

홍순형(洪淳馨)

헌종비 효종왕후의 조카. 거절

김석진(金奭鎭)

거절. 경술국치후 자결.

한창수(韓昌洙)

한상기(韓相琦) -

한상억(韓相億)

이왕직 장관 등을 역임하면서 덕혜옹주 일본 유학과 결혼을 강요.

이근상(李根湘)

이장훈(李長薰)

조희연(趙羲淵)

사망하면서 작위 반납

박제빈(朴齊斌)

박서양(朴敍陽)

박서양의 양자 박승방 습작을 거부하고 항일운동에 자금지원하여 체포됨.

성기운(成岐運)

성주경(成周絅) -

성일용(成一鏞)

김춘희(金春熙)

김교신(金敎莘) -

김정록(金正祿)

조동희(趙同熙)

조중헌(趙重獻) -

조원(趙源世)

1921 작위 박탈.

but 1934 조중헌이 습작

박기양(朴箕陽)

박승원(朴勝遠) -

박정서(朴禎緖)

황무지개척요구(1904) 을사조약에는 반대 상소, 후에 친일파로 전향

김사준(金思濬)

의친왕의 장인. 1915 해외독립조직과의 연계가 발각되어 작위 박탈. 징역 1 선고. 복역 사망.

장석주(張錫周)

장인원(張寅源)

민상호(閔商鎬)

민영욱(閔泳頊)

조동윤(趙東潤)

조중구(趙重九)

최석민(崔錫敏)

최정원(崔正源)

한규설(韓圭卨)

거절

but 혼수상태에 있던 절친 이봉의의 아들이 작위 수령여부를 물었을 , 나라에서 주는 것이니 그냥 받으라고 하고, 자신은 거절했다. 일로 이봉의 집안과 절교하게 되었다고 한다.

유길준(兪吉濬)

거절

남정철(南廷哲)

남장희(南章熙)

이건하(李乾夏)

이범팔(李範八) -

이완종(李完鍾)

이용태(李容泰)

이중환(李重桓)

김병익(金炳翊)

1919 아편 흡입으로 작위 박탈.

민영달(閔泳達)

거절

민영기(閔泳綺)

민건식(閔健植) -

민병억(閔丙億)

이종건(李鍾健)

이풍한(李豊漢)

이봉의(李鳳儀)

이기원(李起元) -

이강식(李康軾) -

이홍재(李弘宰)

아들 이기원이 대리 수령

윤웅렬(尹雄烈)

윤치호(尹致昊)

아들 윤치호 1913 105 사건 주모자로 체포되어 작위 박탈

이근호(李根澔)

이동훈(李東薰)

이근택과 이근상의

김가진(金嘉鎭)

의친왕 이강을 상하이로 탈출시키려 했던 대동단 사건과 연루되어 있으며, 본인과 아들 부부 모두 상하이로 망명하여 임정에 참여.

but 공식적인 작위 박탈이나 반납이 없어서 독립유공자로 인정 안된 것으로 알려짐.

정낙용(鄭洛鎔)

정주영(鄭周永) -

정두화(鄭斗和)

민종묵(閔種默)

민철훈(閔哲勳) -

민규현(閔奎鉉) -

민태곤(閔泰崑) -

민태윤(閔泰崙)

을사조약에는 반대 상소, 후에 친일파로 전향

습작자 민태곤 1941 도쿄에서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고문후유증으로 사망하였다. 독립유공자로 서훈.(애족장)

이재극(李載克)

이인용(李寅鎔)

종친.

이윤용(李允用)

이병옥(李丙玉)

이완용의 이복형

이정로(李正魯)

이능세(李能世)

김영철(金永哲)

김영수(金英洙) -

김용국(金容國)

이용원(李容元)

이원호(李原鎬) -

이창수(李彰洙)

김종한(金宗漢)

김세현(金世顯)

조정구(趙鼎九)

흥선대원군의 둘째 사위. 거절

김학진(金鶴鎭)

김덕한(金德漢)

을사조약에는 반대 상소, 후에 친일파로 전향

박용대(朴容大)

박경원(朴經遠)

조경호(趙慶鎬)

흥선대원군의 맏사위. 거절

김사철(金思轍)

김석기(金奭基)

정한조(鄭漢朝)

정천모(鄭天謨)

이주영(李胄榮)

이규환(李圭桓) -

이경우(李卿雨)

민형식(閔炯植)

자식이 모두 아편 중독자 또는 전과자라서 습작이 불가능했던 것으로 추정

이항구(李恒九)

이병주(李丙周)

이완용의 차남. 1924년에 유일하게 신규 수작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11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산바람

    일본인들이 우리의 역사를 호도하기 위해 내렸던 작위들 정리를 자세하게 잘했습니다.
    수고하셔서 잘 보고 갑니다.

    2017.09.09 19:56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waterelf

      친일과 항일의 경계를 넘나들며 살던 시절, 많은 이들이 자신의 이익만 쫓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슬픈 성적표라고 생각합니다.
      다행히 처음부터 귀족 작위를 거절하거나 받고도 독립운동에 투신한 이들이 있어서 한 가닥 희망이 남아 있음을 알 수 있었답니다.^^

      2017.09.09 21:28
  • 파워블로그 march

    우와 이렇게 정리를 해 주시니 눈에 쏙 들어오네요.
    거절했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궁금했는데 덕분에 알고 갑니다.

    2017.09.10 01:04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waterelf

      1. march님 포스팅을 보고 댓글을 달려다가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따로 정리해서 올린 것인데, 마음에 드셨나 보군요.^^
      2. 조선 귀족이 되는 것은 거절했지만 독립운동에도 참여하지 않는 경우가 제법 되더군요. 그 시절이 흑과 백으로 확연히 나눌 수 없는 회색의 시대라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

      2017.09.10 11:20
  • 파워블로그 서유당

    생생한 역사 퍼가요^^

    2017.09.10 17:37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waterelf

      이런 정보성 글은 언제든지 퍼가셔도 괜찮습니다.^^

      2017.09.10 19:01
    • 파워블로그 서유당

      역사에 유난히 관심이 많다보니...^^

      2017.09.10 19:09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