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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능력주의

[도서] 시험능력주의

김동춘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서평단 #도서제공 #창비 #시험능력주의 #김동춘

공정이란 무엇인가. 차별과 혐오의 시대에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도 자기의 생존을 시시때때로 스스로 위협받으며 공정을 외치는 권민우와 같은 존재들이 밉상으로 취급되지만 사실은 아주 흔하디 흔한 요즘. 아마도 작가는 권민우를 통해 요즘 세대의 공정을 미러링하려고 한 것이 아닐까 싶다. 국내 최고의 대학 로스쿨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아도 취업이 되지 않았던 자폐인 우영우의 극적인 부정 취업에 불만을 품은 권민우가 익명 게시판을 통해서 사내 분위기를 선동하는 장면은 여러 의미로 많은 시사점을 주었다. 그렇다면 여기서의 공정은 시험에서 독보적 1등을 놓치지 않은 우영우를 법적으로 차별 금지 조항인 장애로 인해 탈락시킨 로펌에 두어야할까, 혹은 권민우의 말처럼 부정취업을 금지하는 데에 두어야 할까.

솔직히 이 책은 너무 어려웠다. 읽는 내내 생각이 점점 누적되고 가슴이 답답했다. 그것은 아마도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이 저자의 말처럼 우리가 늘 당면해있지만 당장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고 누구도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능력주의’라는 것은 비단 시험뿐 아니라 제한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능력에 관련된 것이라서, ‘문송’해진 요즘은 학력이나 학벌이 힘을 잃고 자격시험 혹은 노골적인 자본주의적 요소가 힘을 얻는다. 예전에는 학생들이 ‘땡땡 대학교 땡땡 학번’ 같은 것을 목표나 닉네임으로 삼고 추앙했다면, 요즘은 한동안 sns 이름의 미들 네임에 ‘한남 더 힐’ 같이 고가의 아파트 이름을 넣는 것을 유행으로 삼는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지향점이나 추앙의 대상이 바뀐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사람들의 ‘욕망’의 지향점이 어디냐에 따라 제한된 재화를 어떻게 재분배하느냐의 문제가 우리 나라에서는 시험 능력주의였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시험은 어느 정도의 합리성을 갖는 합의된 도구이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공정해보이는 시험이라는 것에도 불평등의 요소가 존재한다. 그 시험을 준비하거나 응시할 수 있는 능력치, 환경에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능력주의는 불평등에 도덕성을 부여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꼬우면 공부하든지~ 꼬우면 시험 붙든지. 그러나 조선시대의 과거 시험 응시 자격은 ‘양반’만이 아닌 ‘양인’이었다. 그렇지만 일반적인 양인은 사농공상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나 모두에게 열린기회 같았던 이 시험은 열린 교회의 닫힌 문 같은 존재였다.

교육 일선에서 일하며 보는 ‘교육’과 ‘평가’의 비틀어진 관계는 더 뼈아프게 다가온다. 나는 아직까지는 공교육 기관에서 일하는 것이 훨씬 좋다. 학교는 그래도 아직은 좀 더 인간적인 관계와 교육적인 측면에 집중할 수 있는 곳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좋은 날들도 ‘평가’가 끼면 종종 어그러진다. 평가는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졌는지를 알아보는 도구임에 불구하고 언젠가부터 1등급의 수에 목숨을 걸어야하는 아이들은 초조하게 사교육을 전전하고 소수점 문제를 가지고 상처를 주고 받는다. 가끔은 그 시험의 난이도 때문에 민원이 걸리고 학교가 휘청대기도 한다. 그럴 때면 시험이란 대체 뭘까 하는 생각이 든다. 수능이나 교사 임용 시험이나 공무원 자격 시험도 마찬가지다. 이미 충분한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 많다보니 평가보다는 걸러내기 위한 킬러문항을 집어넣으면서 시험으로서의 한계를 보여준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그 체제에 순응할 수밖에 없고, 그 너머를 바라본다. 그리고 그 시험을 통과해낸 사람은 능력주의의 수혜자가 된다.

시험을 통과한 사람이 그 분야에서 시험을 통과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은 여지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시험을 준비하고 응시할 수 있도록 뒷받침된 것들과 상황은 모두 공정했으며, 간발의 시험의 통과가 그의 자질을 다면적으로 평가하였고 앞으로도 훌륭할 것이라는 것을 보장할 수 있는가? 그런데 그렇지 않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당장에 나이를 조금 먹고 보니, 사실 학벌이 대단히 큰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사람들이 선망하는 자격시험을 통과한 사람들도 막상 그 자리에 올라가서는 자신에게 그 자질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만두는 경우를 많이 보았으며,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를 지나서까지 수능의 영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별다른 재주나 목적도 없이 추억팔이나 하고 있는 30대 이상을 보고 있으면 그렇게 한심할 수가 없다. 분명 문제는 있다. 그런데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야할지는 사실 묘연하다. 대체로 이것을 교육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교육보다 노동, 더 나아가 사회 구조의 문제와 더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에, 교육은 말초에서 이용당하는 도구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력하지 않은가.

더 답답한 것은 한국의 시험 능력주의가 문제라면 미국이나 다른 나라는 답이냐면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부의 세습을 대놓고 공고히 하는 시스템과 대놓고 사회적 차별을 인정하는 문제를 갖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그 체제는 놓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 절대 지킬 것이기 때문에 고민하는 입장에서는 더욱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머지않아 AI가 세상을 지배할지도 모르고, 결국 인간간의 경쟁이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파이 자체가 줄어들어버릴지도 모르는 세상에서 인류가 살아남는 방법은 아이러니하게도 경쟁을 통해 소수의 사람이 다수의 부를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공생해나가면서 인간의 파이를 지켜내는 것이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머리 복잡하고 답 안 나오는 문제라도 함께 고민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저자가 바늘 구멍만한 희망이라도 찾아보려고 이리저리 파헤친 의도는 그게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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