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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유통기한이 있다면 만년 뒤 쯤으로 하고 싶다.

 통조림을 까먹던 남자가, 하룻밤 사이 만난 여자의 전화를 받고 하는 말이다. 그는 실연 당했다. 오랫동안 만났던 여자를 같은 장소에서 기다렸지만 오지 않았다. 그리고 몇 시간 뒤, 운명처럼 한 여자를 만나게 된다. 실연의 아픔은 길지만, 새롭게 사랑에 빠지게 되는 시간은 무섭도록 짧다. 우리는 언제나 사랑을 하고, 실연을 당하고, 또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

 통조림은 유통기한이 길다. 언제든지 간편하게 꺼내 먹을 수 있고 보존이 용이하며 가볍게 사기도 좋다. 남자는 통조림을 먹으며 여자를 기다린다. 한 달 뒤, 자신의 생일 날짜가 적힌 통조림을 먹을 때까지 그녀가 돌아오지 않으면 잊겠다고 다짐하면서. 하지만 사랑은 그렇게 간편하지 않다. 돌아올 날짜도 정해져있지 않고, 오랫동안 보존되지도 않는다. 결국 통조림은 돌아오지 않을 그녀를 계속 붙잡고 있는 남자의 헛된 마음일 뿐인 것이다.

 우리는 영원한 사랑을 꿈꾸면서도 쉽게 사랑에 빠진다. 어떻게 보면 사람은 끊임없이 영원한 사랑과 새로운 사랑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 그것은 사람에게 있어서 '과거를 쉽게 잊어버리는 죄'일 수도 있겠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쉽게 까먹어버리면서도, 타인과 나의 관계에서만은 영원을 꿈꾼다.

 마지막 침대에 홀로 남겨진 남자는 마지막 그녀의 생일 축하 메시지를 받고는 미소를 짓는다. 사랑을 한다는 것은 나를 가까이에서 알아주는 누군가가 필요한 것이다. 가장 가까이에서 내 존재를 확인 시켜주고, 의미를 찾아주는 상대가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진정 영원한 사랑을 꿈꾼다면 그는 파인애플 통조림을 삼십개 정도 먹는 짓 따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사랑에도 실연에도 서툰 남자일 뿐이다.

 그는 이 실연을 통해, 그리고 마지막 전화를 통해 사랑에 대해 알아간다. 그리고 사랑하는 것이 비단 누군가를 오래 만나는 것, 느끼는 것 만지는 것에 국한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내 자신을 사랑하게 하는 사람은 하루를 만나도 사랑할 수 있으며, 영원한 사랑이라는 것은 살아있는 물고기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면서도 갈 방향을 끊임없이 맞춰나갈 때 가능한 것이다. 헤어진 사람을 생각하기보다, 내 새로운 사랑을 향해 달려가는 것. 그것이 바로 삶이다.

 

 왕가위의 영화는 독특한 색채와 미장센이 그 분위기를 더한다. 환상적인 왕가위의 연출을 보고나면 그 영화에 빨려들지 않을 수 없다. 아직까지도 귀에 캘리포니아 드림이 울려퍼진다. 이번에도 실연을 당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똑같은 실연과 사랑의 이야기일뿐이지만 그 매력은 확실히 다르다. 무엇보다도 양조위의 짙은 눈빛이 마음을 사로잡았고 발랄한 숏헤어의 왕정문의 귀여운 행동에 웃음이 났다. 새로운 사랑을 찾는 과정은 누구나 비슷하다. 설레이는 감정을 가지고, 그를(혹은 그녀를) 시시때때로 쫒는다. 왕정문의 캐릭터가 멋있었던 이유는, 그에게 걸맞는 여자가 되기 위해서 훌쩍 떠났다는 것이다. 사랑은 그렇게 오랜 기간을 두고 찾아오기도 한다. 왕정문은 그의 집에 멋대로 잠입하기도 하고, 편지를 숨기기도 했지만 멋있는 여자다.

 

 실연은 누구에게나 아픔으로 다가온다. 조깅을 하고, 통조림을 먹고, 집에 있는 모든 물건들에게 대화를 해봐도 쉽게 나아지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통조림 같은 사랑을 꿈꾸지만, 어려운 일이다. 너와 내가 만나 영원을 꿈 꿀 수는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꿈을 꾸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서로가 언제나 같은 꿈을 꾸고 성숙한 사랑을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성숙하지 않아도 좋다. 우리는 언제나 사랑하고 꿈꾼다. 캘리포니아 드림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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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콤살벌

    중경삼림... 옛날에 봤던 것 같은데 기억이 안나네요. 다시 한번 보고 싶네요.~ ^^

    2014.09.29 19:24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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