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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보다 더욱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신체사이즈로 여성을 소개하고, 수영복을 입고 선 참가자들의 신체를 위, 아래로 클로즈업해서 방송하며 가족오락쇼라 말하는 미스월드 선발대회.
영화는 1970년 런던에서 개최된 미스월드 선발대회 실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 단순히 남녀의 문제인가?
"여성은 물건이 아닙니다. 장식품도 아니고. 누굴 기쁘게 하라고 있지도 않죠."
"우린 마조리나 다른 참가자들을 공격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항의하는 것은 이 대회가 여성 착취를 상징한다는 사실입니다."
"왜 마조리가 외모를 통해서만 자격을 얻어야 하죠? 왜 저도 그렇죠? 왜 어느 여성이든? 댁은 안 그렇잖아요. 저분도 안 그렇고(남성 패널들에게). 왜 우린 그래야 하죠?"
영화는 ‘미스월드’라는 행사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단순히 여성과 남성의 이분법적인 편 가르기를 보여주지 않는다. 샐리와 함께 방송에 함께 참여한 여성은 대체 왜 여성단체가 이 대회에 불만이 많은지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반면 그녀의 동거인인 개리스는 샐리를 이해하고 적극 지지해준다. 너무나 익숙해서 그것이 또다른 형태의 차별이라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그것에 대항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 우리는 선발될 수 없어요
선발대회 참가자라 해도 저마다의 상황이 다르다. 참가자를 대하는 주최측의 태도에 화를 내는 스웨덴 참가자 마조리를 향해 그레나다 참가자 제니퍼는 말한다.
"이 대우가 너무하다 싶으면 참 행운아네요"
인종차별이라는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표 중 한명으로 참가한 펄은 자신과 같은 유색인 참가자인 제니퍼에게 말한다.
"우린 미스 월드...못 돼요."
# 당신은 무엇을 위해 나아가고 있는가?
(샐리) "당신한테 화낸 거 아니예요. 진심으로요."
(제니퍼) "오늘 밤 이 쇼를 본 소녀들이 자신을 달리 보게 될 거예요. 내가 우승함으로 인해 꼭 백인이어야만 세상에 자리를 얻는 게 아니라고."
(샐리) "하지만 외모로 서로 경쟁하게 하면 결국 우리를 위한 세계가 좁아지지 않을까요?"
(제니퍼)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당신처럼 선택을 하며 살고 싶단 거예요."
샐리의 말처럼 그녀는 대회 참가자에게 화가 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제니퍼 역시 샐리와 같은 선택을 하며 살고 싶기에 이 기회를 잡은 것이다. 행사를 방해한 일로 경찰서로 연행되어 가던 샐리가 제니퍼를 마주하고 나누는 짧은 대화에 어쩌면 이 영화에서 하고 싶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엄마는 ‘엄마’처럼 되고 싶었을까?
그리고 영화에는 또 하나의 관계, 샐리와 그녀의 엄마가 있다. 이혼 후 동거를 하며 아이를 키우는 딸(샐리)에게 평범하게 살라 말하고, 미스월드 방송을 보며 그저 예쁘다 말하는 모습이 샐리와 대조를 이룬다. 하지만 그렇게 살아온 삶이 진정 그녀가 원한 것이었을까?
"따분해 보인 게 아니라 갇혀 있어 보였어.
비좁고 구속하는 가정이란 세계에서 포부도 없고 기회도 없이
그러니 당연히 엄마처럼 되기 싫었지. 아무도 엄마처럼 되면 안 된다고."
딸의 말에 마음이 베인 엄마는 한마디를 던진다.
"너나 네 언니들은 어떻게 됐을까? 내가 너처럼 생각하고 너처럼 행동했다면? 비좁은 가정이란 세계를 등한시했다면? 내 결혼생활과 애들을 등한시했다면?"
이 영화가 마음에 남는 이유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등장인물들이 저마다의 서사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아, 물론 이해가 가지 않는 몇몇 인물이 있기는 했지만). 그리고 또 한가지, 영화 속에서 던진 질문들이 과연 1970년에만 해당되는 것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 그녀들이 세상을 향해 외쳤던 그 시간으로부터 50년이 지난, 2020년. 과연 우리 사회는 얼마나 변화했는가? 그녀들의 구호가 여전히 유효한 것은 아닌가?
"난 예쁘지도 추하지도 않고, 화가 났을 뿐이다!"
(I’m not beautiful, I’m not ugly. I’m ang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