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끌림', '내 옆에 있는 사람' 그리고 '혼자가 혼자에게'까지, 내게는 시집보다 산문집으로 더 친근한 이병률 작가의 시집을 만났다.
'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
어딘가 마음에 서늘한 바람이 부는 듯한 제목, '이별'을 언급하기에는 너무 밝은 것 아닌가 고개가 갸웃해지는 노란색 표지의 시집에는 아직은 내게 어려운 시어들이 가득 담겨있었다. 시인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걸까, 무슨 비밀이라도 찾듯 골몰하다가 이내 머리를 비우고 그저 시집에 적힌 언어들을 마음에 담는다. 그렇게 마음에 담긴 시 한편을 적어본다.
눈물이 핑 도는 아주 조용한 박자
아침 일곱시 십사분을 가리키는 시계를 보는데, 라디오
진행자가 막 시간을 알려줄 때
강가에서의 내 기억과 당신이 기억하는 장면이 일치할 때
떠나고 싶은 날과 헤어지고 싶은 날이 같을 때
오 분 동안 한 사람의 전부를 안다는 게 가능해, 라고 내
가 물었을 때
아침에 일어나면서 머리로 떠올린 단어 하나를 막 펼쳐든
신문에서 마주칠 때
담장의 꽃나무를 만져보려 손을 뻗는데 가로막으며 당신
이 나타날 때
소나기 내리는 소리와 저 먼 곳에서 눈이 온다는 소식이
겹칠 때
영 세상에 자신이 없을 때와 그래도 연필로 선을 그어서
라도 연결하고 싶을 때
원고지에 조용히 손가락을 베는 순간과 눈을 감고 있던 당
신이 눈 뜨는 순간이 같을 때
당신을 보려는데 당신이 보이지 않을 때
시집 목차 중 세번째 단락인 3부 '당신은 나에게 아무것도 아니리라'에 실린 글이다. 어찌 당신이 아무것도 아닐 수 있을까, 그 무게가 무겁기에 오히려 역설적인 제목을 정한 것이리라. 당신을 보려는데 당신이 보이지 않을 때, 아마 시인은 눈을 질끈 감아 당신을 보려하지 않았다, 그러기에 당신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자신을 속이지 않았을까.
*그 어느 시보다 더 마음을 울리던 시인의 말
*덧붙이는글
시의 행과 연에는 까닭이 있을거라는 생각에 시집에 적힌 단락을 그대로 옮겨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