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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어느 순간은 영화 같아서

[도서] 삶의 어느 순간은 영화 같아서

이미화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가까운 길도 빙 돌아가거나 길을 찾는 데 꽤 많은 시간과 체력을 낭비할 정도로 방향에 약하다. 삶의 방향도 마찬가지.

   그럴 때마다 내비게이션이 되어준 건 영화였다. 회사를 그만둘 때, 베를린으로 떠날 때, 다시 돌아와 책방 문을 열 때도, 영화는 내게 인생에 여러 갈래가 있다고 알려주었다. 물론 그 길엔 아스팔트 대신 자갈밭이 깔려있는 경우가 많았지만, 그럼에도 계속 걸어갈 수 있었던 건 나처럼 평범하고 지질한, 영화 속 등장인물들 덕분이었다.

  

책 날개에 적힌 글을 읽으며 누군가에게는 영화가 내비게이션이 되어줄 수도 있구나..생각하다가 내게 책 속의 글들이, 내가 좋아하는 누군가의 말 한 마디가 종종 멈칫거리는 내게 방향을 알려주기도 한다는 것을 떠올렸다. 어쩌면 당장 내비게이션이 내게 알려주는 방향이 그리 결정적이라 여겨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 순간에는 단지 내가 걷는 방향을 1도 정도 틀어주는 것일 수도 있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쌓인 1도가 시간이 지나 크게 벌어진다는 생각을 하니, 내게 영향을 미치는 작은 것들이 만드는 나비효과가 새삼 대단하다 싶다.

 

영화책방을 운영하는 저자는 26편의 영화를 소개하며, 영화속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적어내려간다(나는 이 중 9편의 영화를 봤다).

 

   [1] 울면서 다시 일어날 용기

   걷기왕, 안경, 마녀 배달부 키키, 중쇄를 찍자!, 내가 죽기 전에 가장 듣고 싶은 말

   [2]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 그만둔대, 인사이드 아웃, 미니멀리즘

   [3] 인생에도 치트키가 있다면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원펀맨, 레볼루셔너리 로드, 런치 박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4] 거짓말쟁이의 해피엔딩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레이디 버드, 최악의 하루, 포레스트 검프, 우리도 사랑일까, 원더풀 라이프

   [5] 열심만으로는 안 되는 일

   벌새, 태풍이 지나가고, 소공녀, 서칭 포 슈가맨, 찬실이는 복도 많지

   *밑줄친 영화 9편이 내가 본 영화 들

 

저자가 들려주는 영화이야기를 들으며, 어떤 영화는 아, 이 이야기가 저자에게는 이렇게 다가갔구나, 하기도 하고 또 다른 영화에서는 저자의 이야기 위로 나의 시간이 겹쳐지기도 했다. 누군들 그렇지 않을까? 너무 울어 눈이 퉁퉁 부어버려도 그 다음날이면 다시 일어나 하루를 시작할 용기가 필요하고, 무엇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지금 네 모습으로도 되었다 위로를 받고 싶기도, 또 가끔은 내 인생에도 치트키 하나쯤은 있었으면 싶기도 하다.

    

 

   “우리 지현이는 꿈이 뭘까?”

   “공무원이요.”

   “아니~공무원 그런 거 말고. 진짜 꿈! 엄청 막...... 그런 거 있잖아!”

   (중략)

   “지현아, 안 돼. 벌써부터 적당히 하면. 지금 조금 힘들어도 참고 이겨내야......”

   “뭘 자꾸 이겨내요! 그리고 힘들어 죽겠는데 왜 참아야 돼요? 공무원도 존나 열심히 해야 되거든요! 이만복처럼 대회 나간다고 학교 땡땡이 치고 그런 것만 열정이고 꿈이예요?” pp.24-25

 

걷기왕을 보지는 않았으나, 뭘 자꾸 이겨내라 하느냐, 힘들어 죽겠는데 왜 참으라고만 하느냐, 대체 왜 열정이며 꿈을 강요하느냐 항변하는 지현이의 외침에 맞아, 맞아격하게 공감이 가기도 하고,

 

   “사장님, 잊지 마. 우리는 이 세상을 보기 위해서, 세상을 듣기 위해서 태어났어. 그러므로 특별한 무언가가 되지 못해도 우리는, 우리 각자는 살아갈 의미가 있는 존재야.” p.69

 

특별한 무언가가 아니어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살아갈 의미가 있다는, 영화 의 키키 키린의 대사에 위로를 받기도 한다.

 

   ‘오늘 오후 기차를 탈 거예요. 어디서 읽었는데 잘못 탄 기차가 목적지에 데려다 준대요. 두고 봐야죠.’ p.116

 

이 대사를 읽으며, 영화 런치박스를 꼭 봐야겠다 생각하기도 했고,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서 일상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떠올리는 저자의 글에, 나 역시 예전에 보았던 영화의 장면들을 떠올리며 내 일상의 평온함을 위해 애써주는 고마운 사람들을 떠올리며 함께 울컥하기도 했다.

 

   코로나19로 평범했던 일상을 빼앗긴 요즘, 나는 종종 지난 일기를 들여다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무료하기 짝이 없던 날들도 기록을. 그리고 재난의 한가운데에서도 세상을 유지하기 위해 자리를 지키는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한다. 구석구석 소독을 마치고 카페 문을 여는 친구의 얼굴을, 줄지어 선 사람들의 원성을 들으며 마스크를 판매하는 약사의 바쁜 손을, 책방문을 살짝 연 채로 박스만 놓아두고 가는 택배기사의 뒤통수를, 고요하고 예민한 출근길을 책임지는 버스 운전기사의 눈을 떠올리며, 나는 자주 울컥한다. p.124

 

저자가 소개한 스물여섯편의 영화를 다 보지는 못했으나, 어딘가 그 느낌이 닮아 있다 느끼는 것은 아마도 저자의 취향이 반영되어서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 속에는 경보에 도전하는 소녀의 것이든(걷기왕),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나는 꼬마 마녀의 것이든(마녀 배달부 키키) 또는 라이프잡지사에 16년째 근무중인 월터의 것이든(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결국 그들 모두 저마다의 시간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한발씩 내딛는 이야기가 담겨 있음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불확실함의 터널 속에서 책방 문을 열고 글을 쓰며 일상의 회복을 기다리고 있다. 도망갈 수도, 멈춰 있을 수도 없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하면서. p.125

 

책의 말미, 저자는 자신과 애인을 비교해 글을 적어 놓았다. 얼핏 보면 참 다른 사람들이구나 싶지만 이내 정답이 없는 삶에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자신만의 장편영화를 찍고 있구나..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리고 나는 어떤 사람일지, 나만의 장편영화를 생각해 보게 된다.

 

   이미화에게 꿈은 연필로 쓰는 것이다 언제든 지우고 다시 쓸 수 있는 것. 나는 지울 수 있을 때에만, 다시 시작할 수 있을 때에만 용기가 생기는 사람이니까. 반면 안다훈에게 꿈은 볼펜으로 꾹꾹 눌러쓰는 것일 테다. 시간이 지나면 잉크는 빛바래 지워질 수 있지만 자국은 남아 사라지지 않는 것. p.196

    

  

*나에게 적용하기

책 속에서 만난 영화 보기(적용기한 : 한 달에 한편)

*보고싶은 영화 : ‘런치박스’ ‘찬실이는 복도 많지

*다시 보고 싶은 영화 : 포레스트 검프

 

*기억에 남는 문장

나는 길을 잘 잃는다..(중략)..특히 방향에 약한 편인데, 동쪽이 나를 기준으로 오른쪽 방향이라고 아무리 말해 줘도 내 몸을 빙글빙글 돌리면 어디든 오른쪽이 되어버리는 걸? p.29

 

내게 쓰는 일이란, 돈이 되진 않지만 거친 물살에도 무너지지 않고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도록 차곡차곡 둑을 쌓아 올리는 일이었다. p.39

 

어쩌면 나도 누마타에 가까운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필사적이지도 않으면서, 된통 깨질 준비도 되어 있지 않으면서, 그저 다른 사람의 재능을 부러워하고 질투하는 누마타의 모습에서 나를 보았기 때문이다 꾸준히 자신의 자리를 넓혀나가는 동료 작가들을 시기하면서 언젠가 내 글을 알아봐 줄 편집자가 나타나겠지, 언젠가 유명해지겠지, 그저 오지 않을 언젠가를 기다리며, 언젠가 언젠가만 되뇌는 내가 거기에 있었다. p.47

*중쇄를 찍자!

 

얘는 안오면 서운할 것 같고. 얘랑은 연락이 뜸해졌는데...... 그래도 오겠지?

메신저의 친구목록을 훑으며, 내 부고가 전해질지도 모를 이름들 앞에서 문득 궁금해진다. 이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까? p.51

 

베를린에서의 경험이 나를 도전정신으로 무장한 오지 탐험가나 모험가로 만들어주지는 않았다. 다만 인생에서 맞닥뜨릴 크고 작은 선택의 순간에 누군가의 허락은 불필요하다는 것과 조금 무모해져도 별문제가 없다는 것. 그러니 시도하고 살아도 괜찮다는 것을 배웠다. p.54

 

어쩌면 소유욕이란 더 많이 먹을수록 배가 고픈 감정일지도 몰랐다. p.86

 

일상이란 예측이 가능한, 그래서 위기를 대처할 수 있는 자신만의 매뉴얼이 늘어간다는 의미가 아닐까. 그러므로 일상에서의 탈출이란 위기 속으로 나를 몰아 넣는 일, 패턴이 없는 상황 속에 나를 던져 넣는 일이라고, 나는 자주 생각했다. p.109

 

행복 같은 거, 여기에도 없다면 거기에도 없다는 비관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태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어디에서든 이전과 다를 바 없는 하루하루가 반복될 뿐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p.111

*레볼루셔너리 로드

 

검프가 본인 의지대로 달리기를 멈춘 건, 그 장면밖에 없어.”

검프가 32개월하고 14, 16시간을 달렸음에도 갑자기 모든 것을 중단했던 그 고속도로를 달리고 싶었다고, 그 애는 덧붙였다. 어떤 일을 얼마나 어떻게 해왔든 내가 원할 때 그만둘 수 있다는 건,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말처럼 들렸다고 했다. pp.151-152

*포레스트 검프

 

지금 내게는 함께 있으면 근육이 이완되는 오래된 애인이 있다. 애인은 내 맥박을 뛰게 하진 않지만, 내 발모양에 딱 맞게 닳아버린 운동화를 신고 걷는 편안함을 준다. 익숙해진다는 건 옆사람의 숨소리를 시계 초침처럼 들으며 잠에 드는 것, 한밤중에 옆자리를 더듬어 안정감을 되찾는 것, 2인분의 밥을 짓는 것, 눈에 띄게 치약이 빨리 줄어드는 것, 이 모든 과정을 의식하지 않고 반복하게 되는 것이라는 걸, 이제 나는 안다. p.158

 

사람이 죽고 난 후 잠시 머무는 생 너머의 공간, 림보. 림보에서 사람들은 살아생전 가장 행복했고 소중했던 순간을 선택한다. 그렇게 선택된 순간은 림보의 스태프들에 의해 영상으로 재현되고, 영상을 보고 난 후에야 그 기억을 안고 영원으로 떠날 수 있다. p.181

*원더풀 라이프

 

익숙해질 법도 한데 상처에는 패턴이 없어서 매번 다른 길로 흉이 졌다. p.189

 

물론 언제고 <벌새>와 같은 영화를 본다면 유년의 기억이 깨진 유리 조각처럼 나를 찌르고 마음에 박혀 기어코 또 눈물을 뽑아내겠지만, 돌이킬 수 없는 과거로 부모를 미워하는 일은 그만두기로 했다. 나도, 부모도 그 시기를 무사히 통과했으니까. 그 다리를 어떻게든 무사히 건너왔으니까. p.172

 

로드리게즈는 말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당연히 실패할 수 있다고. 그러니 하루아침에 아티스트에서 육체노동자 신세가 된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다음 삶을 다시 살아가야 한다고. 뮤지션으로서의 삶은 끝났을지 몰라도 뮤지션이 아닌 인생은 이제 막 시작되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p.190

*서칭 포 슈가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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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블로거 부자의우주

    부모도 그 시기를 무사히 건넜으니까.
    의미를 알 것도 같아요.

    영화 속 의미 있는 대사와 맥락을 하이라이트 하고 정리하기.
    기억과 리뷰에 제격이겠네요. 간접 경험은 기본이고요.
    불현듯 <불량소녀 ......> 일본 불량소녀 명문대 입성 성장 영화가 떠오르네요.

    오늘도 생각꺼리, 감동 가득한 리뷰 감사합니다 Joy님 ^^

    2020.12.26 18:37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Joy

      네, 직접 본 영화는 저자가 말하는 장면이 떠올라서, 또 못 본 영화는 어떤 맥락일지 상상하게 되어 읽는 내내 기억과 상상이 교차하는 시간이었어요.
      '불량소녀'라는 영화가 있나보네요. 성장영화는 항상 많은 생각을 하게 하고, 제 자신도 함께 성장하는 기분이 들더라구요.
      부자의우주님, 주말로 이어지는 크리스마스 연휴 잘 지내고 계시기를 바래요^^

      2020.12.26 21:04
    • 스타블로거 부자의우주

      영화 <불량소녀, 너를 응원해>라는 2015년 작품이 있었습니다.
      괜스레 응원하게 되고, 마지막 즈음에 아빠 등에 업히는 장면이나 여러 장면이 괜스레(?) 눈시울을 적셨던 영화입니다.

      조이님이 밑줄 치신 9편과 런치박스 그리고 '찬실이는 복도 많지'.
      다시보고 싶은 <포레스트 검프>, 3년 2개월 14일 하고 16시간.
      Joy님의 멋지고 생각꺼리 가득한 리뷰를 읽다보니 ......
      지금이 딱 적당한 시간이자 운명적 시간 같네요. 앞으로 3년 더 뛸 힘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

      2020.12.27 09:20
    • 스타블로거 Joy

      항상 제가 남긴 글보다 더 많은 의미를 찾아내주시는 부자의우주님, 감사합니다^^
      앞으로 3년을 뛸 힘이 생기셨다니, 저 역시 기쁜 마음으로 응원드립니다.
      그럼, 그 시작인 2021년부터 기분좋게 시작하시기 바래요!

      2020.12.27 19:47
  • 스타블로거 삶의미소

    전 26편중 2편만 보았네요~~ 벌새는 책으로 보고 영화로 봐야지 하고 아직 못봤는데... 꼭 봐야겠네요.
    처음들어본도 많구요.
    Joy님이 찜해놓은 영화는 여기서 만나는 날이 기다려지네요^^

    2020.12.26 20:27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Joy

      아, '벌새'는 영화소개 프로그램에서 보고 한번 보고싶었는데 아직 못봤어요. 삶의미소님께서는 책으로 먼저 만나셨군요^^
      제가 찜해놓은 영화 중 한편인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오늘 오후에 만났답니다.
      조만간 글 올릴께요^^

      2020.12.26 21:06
  • 스타블로거 흙속에저바람속에

    이번 연휴는 Joy님과 영화와 드라마에 관해 이야기를 계속 나누게 되네요. 저도 어제 영화 에세이 리뷰를 올렸는데 그 책에서도 언급된 두 영화가 이 책에서도 보여서 반갑기도 하고, 두 책의 저자가 이야기할 정도로 좋은 영화일거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번 겨울 동안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와 <원더풀 라이프>는 꼭 봐야겠어요.

    "사람이 죽고 난 후 잠시 머무는 생 너머의 공간, 림보. 림보에서 사람들은 살아생전 가장 행복했고 소중했던 순간을 선택한다."

    "마지막 날, 망자들은 시사실에 앉아 영화가 된, 단 하나의 기억과 마주한다. 삶이 영화가 되고 영화가 삶으로 남겨진 순간, 망자는 사라진다."

    Joy님께서 선택하신 문장과 제가 고른 문장을 이어붙이니 영화 <원더풀 라이프>의 시작과 끝이 된 것 같아 무척 신기합니다.ㅎㅎ

    2020.12.27 01:24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Joy

      그러게요. 이번 연휴에는 드라마 '도깨비'부터 영화'원더풀 라이프' 까지, 흙속에저바람속에님과 공통화제가 생겼네요^^
      흙속에저바람속에님 말씀처럼 '원더풀 라이프'에서 서로 선택한 문장을 이어놓으니 영화의 시작과 끝을 마주한 것 같네요. 저도 보지 못한 영화인데, 이번 겨울 꼭 봐야겠어요.
      저 문장을 읽으며, 저는 어떤 순간을 선택할지 한참 생각하기도 했었어요^^

      2020.12.27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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