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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철도의 밤 (한국어판)

[도서] 은하철도의 밤 (한국어판)

미야자와 겐지 저/김동근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제법 오래전 이 책을 읽은터라 세세한 내용은 가물가물하지만, 어느밤 가득한  들 사이를 여행한 캄파넬라와 조반니의 이야기를 조금은 슬프게 만났던 기억이 있다.

 

   덜컹덜컹, 덜컹덜컹. 그 작고 예쁜 기차는 바람에 나부끼는 하늘억새 속을, 하늘의 강물 속을, 푸르스름한 삼각표의 희미한 빛 속을 끝없이 달려갔습니다. p.42

 

아이들의 밤하늘 여행이라고 하면 반짝이는 들처럼 유쾌한 분위기를 지닐 법도 한데, 그 밤 두 아이의 여행은 아리고 서글프다. 거기에 몽환적인 글이 더해져 이야기를 다 읽을 즈음에는 나 역시 두 아이와 짧은 밤하늘 여행을 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러자 어딘가에서 은하 정거장, 은하 정거장하고 말하는 신비로운 목소리가 들렸다고 생각한 순간, 갑자기 눈앞이 번쩍 하고 환해지더니 마치 억만 마리 불똥꼴뚜기 빛을 단숨에 화석으로 만들어 하늘에 눌러 놓은 것처럼, 또는 다이아몬드 회사에서 값이 떨어지는 것을 막으려고 일부러 나오지 않는 척하며 숨겨 두었던 다이아몬드를 누군가가 갑자기 쏟아 흩뿌린 것처럼 눈앞이 화악 환해져서 조반니는 저도 모르게 몇 번이나 눈을 비볐습니다.

   정신을 차렸더니 덜커덩덜커덩, 덜커덩덜커덩, 조반니가 탄 작은 기차가 달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정말로 조반니는 작고 노란 전등이 늘어선 야간열차의 객실에서 창밖을 내다보며 앉아 있었습니다. 기차 안은 파란 융단을 댄 의자가 텅 빈 채로 있었고, 맞은편 회색 페인트를 칠한 벽에는 놋쇠로 된 커다란 단추 두 개가 빛나고 있었습니다. p.37

 

이 책은 캄파넬라와의 관계, 아이들의 따돌림, 병든 어머니와 오랜 시간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와 같이 조반니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읽을 수도 있지만, 두 아이가 여행한, 이 빼곡이 박힌 그 날 밤하늘에 대한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그 깨끗한 강물은 유리보다도 수소보다도 투명하고, 눈의 착각일까, 때때로 어른어른 보라색 작은 물결을 일으켰다가 무지개처럼 반짝반짝 빛났다가 하면서 소리도 없이 천천히 흘러갔고, 들판 여기저기에는 빛을 내뿜는 삼각표가 아름답게 서 있었습니다. 먼 것은 작게, 가까운 것은 크게, 먼 것은 주황이며 노랑으로 선명하게, 가까운 것은 푸르스름하고 조금 희미하게, 삼각형, 사각형, 또는 번개나 사슬 모양으로 늘어서 들판 가득 빛나고 있었습니다. 조반니는 가슴이 두근거려서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습니다. 그러자 들판 가득한 파랑이며 주황이며 여러 가지 색으로 눈부시게 빛나는 예쁜 삼각표들이 제각각 숨을 쉬듯 반짝반짝 반짝거리며 흔들렸습니다. pp.40-41

 

   갑자기 기차 안이 하얗게 밝아졌습니다. 살펴보니 다이아몬드며 풀잎의 이슬이며 아름다운 것을 전부 모아 놓은 듯 눈부시게 빛나는 하늘의 강물이 소리도 없이 형태도 없이 흐르고 있었고 그 흐름 한가운데에 희미하고 파르스름한 빛을 내뿜는 섬이 보였습니다. 백조섬이었습니다. 평평한 꼭대기에는 눈이 번쩍 뜨일 만큼 멋진 하얀 십자가가 서 있었는데, 얼어붙은 북극의 구름으로 조각했다고 해야 할까, 상쾌한 금빛 띠를 머리에 이고 고요히, 그리고 우직하게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p.44

 

조반니와 캄파넬라는 열차 차장(왠지 은하철도 999의 눈만 반짝이던 차장 아저씨가 떠오르던), 들 사이에서 새를 잡는 새잡이, 기울어져 가는 배에서 구조되지 못한 남매와 그 아이들을 데리고 온 청년을 만나기도 또 안녕을 고하기도 하며 짧은 여행을 계속한다.

갑작스런 여행이지만, 그래서 조금은 당황스러운 상황이지만 조반니는 캄파넬라와는 계속 함께라면 괜찮으리라 생각한다. 언제 끝날지 모를 이 여행을 마칠 때까지 말이다.

 

   “캄파넬라, 또 우리 둘만 남았어. 끝까지 함께 가자. 나는 이제 저 전갈처럼 다른 사람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서라면 내 몸 같은 건 백 번 불에 타도 상관없어.”

   “. 나도 그래.” 캄파넬라의 눈에는 맑은 눈물이 맺혀 있었습니다. p.121

 

하지만 끝까지 함께 하자던 조반니와 캄파넬라의 한여름 밤 은하여행은 안녕이라는 인사를 나눌 틈도 없이 긴 이별을 고하고 만다.

 

   “캄파넬라, 우리 함께 가자.”

   조반니가 이렇게 말하면서 뒤돌아보았더니 지금까지 캄파넬라가 앉아 있던 자리에는 검은 융단만 빛나고 있을 뿐, 캄파넬라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습니다. 조반니는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도록 창밖으로 몸을 내밀어 큰 소리로 외치며 힘껏 가슴을 쳤습니다. 조반니는 목 놓아 울기 시작했습니다. 하늘이 갑자기 시커멓게 보였습니다. pp.122-123

 

조반니는 그저 잠시 꿈을 꾸었던 걸까? 캄파넬라와 함께 그 빛나는 들 사이를 여행한 것일까? 아니, 그것이 꿈이든 실제든 그것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조반니의 마음 속에는 캄파넬라와의 여행이 그리고 반짝이던 은하여행이 계속 남아있을 테니 말이다.

 

   조반니는 눈을 떴습니다. 언덕 수풀 속에, 조반니는 지쳐 잠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가슴은 이상하리만치 뜨거웠고 뺨에는 차가운 눈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p.123

 

다시 한번 만난 은하철도의 밤은 여전히 그 몽환적인 이야기만큼이나 아름답고 슬프게 남을 듯 하다.

 


 


*안드로메다로 가실 승객은 남십자역에서 999호 열차로 환승하여 주십시오 

 

*덧붙이는 말

하나. 이 책에는 은하철도의 밤외에도 고양이 사무소’, ‘바람의 마타사부로그리고 주문이 많은 요리점등 세 편의 이야기가 더 실려 있다.

두울 . 글을 쓰면서 '별'을 로 표현한 것은 센스쟁이 이웃님 '흙속에저바람속에'님께서 얼마전 쓰신 글에서의 표현을 빌어왔습니다.

 

*기억에 남는 문장

공기는 투명하여 마치 물처럼 거리와 상점 안을 흐르고, 가로등은 모두 새파란 전나무나 졸참나무 가지로 장식되고, 전기회사 앞 플라타너스 나무 여섯 그루에는 수없이 많은 꼬마전구가 켜져, 마치 인어의 도시처럼 보였습니다. p.30

 

캄파넬라는 그 깨끗한 모래를 한 줌 집어 손바닥에 펼쳐서, 손가락으로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꿈을 꾸듯 말했습니다.

이 모래는 모두 수정이야. 안에서 작은 불꽃이 타오르고 있어.”

그렇구나.” 대체 어디에서 그런 걸 배웠을까 생각하면서 조반니는 어렴풋이 대답했습니다.

강가의 자갈도 모두 투명한 수정이었습니다. 그중에는 토파즈도 있었는데 쪼글쪼글하게 주름이 진 것도 있고 귀퉁이에서 안개 같이 푸르스름한 빛을 내는 사파이어도 있었습니다. p.50

 

어라, 이거 굉장한데요. 이건 천국까지도 갈 수 있는 표로군요. 천국이 뭡니까, 어디든지 마음대로 갈 수 있는 통행권입니다. 이런 걸 가지고 계시다니, 과연. 이런 불완전한 환상 제4차 은하철도를 타고도 어디든지 갈 수 있을 테니까요. 대단한 분이신가 보군요” p.69

 

강 하류 거너편 기슭에 파랗게 빛나는 무성한 숲이 보이고, 나뭇가지에는 잘 익어 붉게 빛나는 둥그런 열매가 가득 달려 있었습니다. 그 숲 한가운데 높이높이 삼각표가 서 있고 숲 속에서 오케스트라 종소리와 실로폰 소리가 섞인 말할 수 없이 깨끗한 음색이 녹는 듯 스며들 듯 바람을 타고 흘러 나왔습니다..(중략)..조용히 그 음악을 듣고 있으려니, 창밖으로 온통 밝은 노랑과 엷은 녹색 들판이 융단처럼 펼쳐졌습니다. 새하얀 밀랍 같은 이슬이 태양을 어루만지고 지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pp.83-84

 

나는 이제 저런 거대한 어둠 속이라 해도 무섭지 않아. 반드시 진정한 행복을 찾으러 갈 거야. 끝없이 어디까지라도 우리 함께 가자.” p.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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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블로거 ne518


    미야자와 겐지도 일찍 죽었지만 동생이 죽기도 했더군요 그래서 이런 소설을 썼나 하는 생각을 잠깐 하기도 했습니다 조반니는 캄파넬라와 늘 함께 하고 싶었을 텐데... 아니 캄파넬라는 지금도 조반니 마음속에 있을 거예요 이런 말밖에 못하다니...


    희선

    2021.05.23 01:20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Joy

      미야자와 겐지의 동생도 일찍 세상을 떠났군요. 희선님 말씀처럼 조반니와 캄파넬라에 자신과 동생의 이야기를 투명한 것일수도 있겠네요.
      책에서는 조반니와 캄파넬라가 직접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아서(다른 아이들과 함께 있을때), 둘 사이의 이야기를 알기는 어렵지만, 서로에게 의지가 되는 친구였겠구나..싶습니다. 조반니가 끝까지 여행을 함께 하고 싶을 만큼 말이예요.

      2021.05.23 20:13
  • 스타블로거 흙속에저바람속에

    파랑 머리 Joy가 떠오르는 파란 별이 글 군데군데 떠 있네요. 별의 나이에 따라 색상도 다르다는 얘기도 생각납니다. 파랑은 우울과 회복 두 가지 느낌을 모두 갖고 있는 색이라고 하더라구요. 읽으신 은하철도의 밤과도 연결해서 생각해보면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남은 주말도 좋은 시간 보내세요, 엽이님.^^

    2021.05.23 13:22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Joy

      글에도 적었다시피, 파란별은 얼마전 말순님께서 남기신 글 속 별 표현을 따라해본 것이랍니다. 그 글을 읽으며, 역시 센스쟁이 말순님이시구나..했어요. 글이 반짝반짝 더 예쁘게 읽히더라구요(그래서 저도 한번^^).
      네, 말순님 말씀처럼 우울과 회복이 공존하는 파랑은 이 책의 느낌과도 닿아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말순님의 시선으로 저 역시 새로운 느낌을 느끼게 됩니다^^

      2021.05.23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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