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을 읽고 고백한 대로 이 책은 ‘전혀’ 내 ‘취향’이 아니었기에, 2권을 읽어야 할지에 대해 다소 멈칫거렸었다. 그럼에도 이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장르의 소설이 어찌 마무리될지 궁금했기에(과연 작가가 뿌려놓은 그 많은 떡밥들이 과연 어떻게 정리될지), 그리고 1권에 비해 다소 얇았기에 결국은 2권의 유혹을 떨치지 못했다.
블랑카와 장의 결혼생활이 시작되고, 그들의 집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상상이 혼재하는 대목에서는 아..역시 이 책은 나와 맞지 않아..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블랑카와 페드로 테르세로의 딸 알바가 태어나면서부터 나는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마치 그녀의 이름이 주는 의미, ‘새벽’처럼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모두가 외면하는 외할아버지(에스테반 트루에바)를 거침없이 대하고 모두를 외면하는 외삼촌(히에메)이 마음을 연, 그리고 철부지 같았던 자신의 사랑(미겔)을 놓지 않는 그녀의 시간이 사랑, 혁명 그리고 군사 쿠데타와 독재의 혼란스러움을 관통하는 그 순간들은 점점 무게를 더해가며 다가왔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소설 속의 장면들을 떠올리며 울컥이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써야 했다. 누구를, 그리고 무엇을 위한 혁명이고 쿠데타인가? 그 거스를 수 없는 소용돌이에서 한 개인이 얼마나 힘없이 휩쓸려 버리는지, 하지만 그럼에도 그 시간을 버텨나가는 그 마음에 눈물이 날만큼 경외심을 갖기도 했다.
알바의 용서와 화해의 이야기가 조금은 갑작스러운 느낌을 주기도 했지만, 등장인물들간의 촘촘한 관계가 하나씩 드러나고, 1권에 비해 치밀한 전개로 이루어져 눈을 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책 속의 문장처럼 서로 상관없을 것 같았던 그 많은 관계의 조각들이 제자리를 찾고 나서야 클라라의 삶에서 블랑카에게, 다시 블랑카의 삶에서 알바에게 이어진 삶을, 그 시간을 되돌아 보게된다.
완성하기 전까지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지만 조각들이 다 제자리를 찾고 나면, 각 부분들이 나름대로의 의미를 지니고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게 될 거라 확신했다. 조각 하나하나가 나름대로의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가르시아 대령 역시 나름대로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pp.326-327
기억은 부질없고, 인생은 너무 짧고 순식간에 스쳐 지나가 버려서 우리는 사건들 간의 관계를 제대로 관망하지 못한다고 내가 썼고, 그녀도 그렇게 썼다. 우리는 자신이 저지른 행동의 결과를 예측하지 못하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라는 시간의 환상을 믿고 있다. p.327
*기억에 남는 대목
"거의 집집마다 바보나 미친 사람이 한 명씩은 있단다, 얘야."
(중략)
"하지만 외할머니, 우리 집안에는 그런 사람이 아무도 없잖아요." 알바가 대답했다.
"없지, 우리 집안에서는 사람들이 공평하게 골고루 미쳐있기 때문에 제대로 된 미치광이가 나오기 힘들지." pp.66-67
공평하게 골고루 미친 집안 사람들이라니..이만큼 이 책의 등장인물들을 적절하게 설명한 문장이 있을까?
*여전한 나의 궁금증
1. 가족들이 혼란에 휩싸인 그때, 니콜라스 삼촌은 자신의 추종자들과 함께 즐거운 미국생활을 이어간걸까? (캐나다로 망명한 블랑카와 연락을 했을까?)
2. 이후 가르시아 대령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그 역시 용서를 구했을까?
3. 바라바스는 과연 개(dog)였을까? 그리고 누가 바라바스를 죽인걸까? (김영하 작가님 이야기처럼 작가의 실수였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