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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방스에서 죽다 1

[도서] 프로방스에서 죽다 1

조용준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5점

   거의 비슷한 시기에 리비에라 해안으로 모여들어 니스를 중심으로 그 주변에 모여 살던 마티스, 샤갈, 피카소 3인의 거장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강한 라이벌 의식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승화시켜 나갔다. 새걀의 생폴 드 방스나 피카소의 무쟁은 모두 니스에서 자동차로 30~40분이면 닿을 수 있다. 니스, 아니 프로방스가 이들의 거대한 아틀리에였던 셈이다. p.11

 

몇 해 전 남프랑스를 여행하며 앙티브에 위치한 피카소 미술관을 시작으로, 액상 프로방스의 세잔 아틀리에, 니스 샤걀 미술관 그리고 생 레미드 프로방스와 아를에서 고흐의 흔적을 만나며 마음 설레고 감탄하는 시간을 만났었다. 이 책을 읽으니 그 곳의 태양과 풍경이 떠오르면서도 책을 먼저 읽었더라면 더 많은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겠다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182212월 프랑스 운송회사 CIWL은 영국의 귀족과 상류층, 부유한 상공인 등을 겨냥해 프랑스 북서부의 항구도시 칼레에서 코트다쥐르까지 운행하는 최고급 럭셔리 열차 푸른 열차 Le Train Bleu를 운행하기 시작했다..(중략)..이 열차의 정식 명칭은 칼레-지중해 특급이었지만, 침실이 딸린 일등칸의 색깔이 짙은 청색이었기 때문에 푸른 열차라는 애칭이 더 널리 사용되었다..(중략)..열차는 파리와 리옹을 거쳐 마르세이유와 칸, 니스, 모나코의 몬테카를로, 이탈리아로 넘어가기 직전의 망통을 지나 이탈리아 벤티미글리아까지 운행했다. p.17

 

책에서 소개한 (아쉽게도 지금은 운행하지 않는) 푸른 열차(Le Train Bleu)를 타고 그들의 작품을, 프로방스의 풍경을 만나는 기대를 하며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마티스 (1869~1954)  

 


 

이야기의 처음을 시작하는 인물은 맏형 앙리 마티스이다(피카소는 1881, 샤갈은 1887년에 출생했다). 이어지는 두 예술가에 비하면 왠지 안정적인 모범생 느낌이 있는데(이 역시 예술가에 대한 나의 편견이겠지만), 재미있는 것은 그가 변호사였다는 것이다.

 

   21살이 될 때까지 붓조차 들어보지 않았던 이 젊은이는 어머니에게 수채화물감을 선물받은 때부터 몇 년 후, 1905년 여름을 보낸 프랑스 남서부의 콜리우르에서 친구 앙드레 드랭과 함께 예술을 뒤집었다. p.50

 

이런 성향 탓인지 예술에 대한 그의 태도 역시 즉흥적이라기 보다는 계획과 꾸준함을 보여주고 있어 다시한번 나의 편견을 깨준다.

 

   “오십 년 동안 나는 잠시도 작업을 중단해본 적이 없다. 나의 첫 일과시간은 9시에서 12시까지다. 그 다음에 점심에 잠깐 낮잠을 자고 2시에 다시 붓을 들어 저녁 때까지 작업을 한다. 나는 당신이 이 말을 곧이들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p.70

 

내가 알고 있는 마티스의 작품이라고는 눈에 익은 <댄스 1(마티스 그림 중 가장 유명하다는 설명이 적혀 있다)><이카루스> 그리고 <푸른 누드> 정도인데 그나마도 뒤의 두 작품이 컷아웃, 소위 종이 자르기 작품이라는 것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1941년 일흔두살 때 대장암으로 인한 대수술을 받고 휠체어에 갇힌 상태에서 붓을 들기 힘들어졌다. 수술 후 그는 시미에 집에서 거의 누운 채로 스케치와 삽화 작업을 했다..(중략)..수술은 그를 쇠약하게 만들었고 기본적으로 의자와 침대에 묶어두었다. p.71

 

   그의 해결책은, 그런 것을 인식하기도 전에, 거의 어린애처럼 단순했다. 그는 좀더 다루기 쉬운 재료와 도구들을 집어 들었다. 보조원들이 색칠한 종이, 튼튼한 가위 그리고 평범한 맞춤 핀. 그가 만든 것은 색채의 탁월함과 입체적인 복잡성의 혼합체였다. pp.71-72

 

대장암으로 인해 활동이 어려워진 마티스가 찾아낸 해결책이었던 '컷아웃'. 종이에 색을 입히고 가위로 잘라 핀으로 꽂아가며 원하는 모양을 만들어 내는 것, 어찌보면 이 단순해보이는 행위의 결과물에 우리가 감탄하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건 창작을 멈추지 않은 마티스의 고뇌와 강인함이 작품에서 베어나오기 때문이 아닐까?

 


 

   마티스는 단순히 색종이가 아니라 우주를 자르고 있었다. 그는 가위질 그 자체가 비행의 감각과 같은 선형의 그래픽이라고 말했다. 그런 감각이 작품에서 드러나면서 관객에게 그에 상응하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p.94

 

그리고 컷아웃 만큼 나의 눈길을 끈 작품은 바로 로사리오 예배당이다.

 

   마티스는 로사리오 예배당을 자신의 가장 중요한 후기 작품으로 간주하고 3년 이상 그 일에 매달렸다. p.130

 

   이야말로 마티스가 평생 추구한 지중해 그 햇빛의 정수를 반영한다. 이로 인해 방스의 이 예배당은 자연 광선이 살아 숨쉬는 초기 그리스도교의 피난처인 카타콤을 연상하게 한다. 푸른색, 녹색, 노란색의 스테인드글라스가 빛에 의해 시시각각으로 변하면서 엄숙한 명상과 쾌활한 생명력을 동시에 나타내준다. p.133

 


 

언젠가 방스에 위치한 이 예배당을 직접 찾아가 마티스의 색채를 느껴보고 싶다.

 

   “이 예배당에서 나의 중요 과제는 빛과 색채로 채워진 한쪽 면과 흰 바탕에 검은색의 선묘만으로 남겨진 벽의 균형을 만들어내는 일이었다. 내게 있어서 이 예배당은 창작에 바쳐진 나의 전 생애의 완성을 의미했다. 그것은 힘들고 어렵지만 정직한 노동의 개화 開花 였다.” p.134

 

  피카소 (1881-1973)  

 


 

마티스가 모범생의 느낌을 풍긴다면, 피카소는 말 그대로 내가 알던 예술가의 모습을 한껏 드러낸다. 자유롭고 즉흥적이며, 새로움에 눈을 반짝이고 자신을 던져 그 새로움을 체득하고 표현한다.

 

   피카소가 평소 행동은 모든 성공의 토대다라고 강조한 것처럼, 그는 행위에 온몸을 던지는 데 과감했다. 그는 움직임과 변화, 새로운 영역에의 도전, 예술가로서의 자신을 표현하는 새로운 방식의 시도를 사랑했다. p.192

 

스페인 출신의 피카소는 마티스와는 달리 어린 시절부터 드로잉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 일곱 살 때 부터 아버지로부터 드로잉과 유화를 배우며 예술가의 길에 들어선다(그의 아버지는 화가이자 공예학교 교사 그리고 박물관 큐레이터로도 일했다고 한다). 그리고 한 달 동안 그려도되는 입학시험용 그림을 하루 만에 그려 바르셀로나 미술학교에 입학하는 등 천재적인 면모를 드러낸다. 학교 교육이 그와는 영 맞지 않았는지 번번이 학교를 그만두곤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19세가 되던 해에 그는 스페인을 떠나 프랑스로 옮겨간다.

 

   당시 피카소는 프랑스어도 할 줄 몰랐고, 빈곤의 비참함, 질병과 성병이 가득한 세기말적 파리의 실상에 혼란을 겪었다..(중략)..자연스레 우울한 느낌을 주는 청색이 주조를 이루게 되어, 나중 청색시대로 지칭되었다..(중략)..그러나 당시 요절하거나 끝내 알려지지 못한 화가들에 비해 피카소는 단기간에 명성을 얻게 되었다. 20세에 첫 전시회를 열면서 모든 상황이 나아지기 시작했다. 1904년 몽마르트에 정주하면서부터는 연애도 했고, 생활의 윤택함을 반영해 그림 색조도 청색에서 장밋빛으로 바뀌면서 밝아졌다. pp.143-144

 

명성을 얻은 피카소는 회화 뿐 아니라 무대장치를 담당하기도 하고, 도자 작업을 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예술세계를 넓혀나갔다.

 

   1909년에는 분석적 입체파, 1912년부터는 종합적 입체파 시대에 들어갔는데, 이 무렵 그는 이미 20세기 회화의 최대 거장이 되었다. 장 콕토를 만나면서부터는 무대장치를 담당하기도 하는 등 활동 범위가 점점 확대되어 나갔다. p.168

 

   194710월부터 1948년 가을까지 일 년 동안 피카소는 무려 2,000개가 넘는 도자기 작품을 제작했다. p.171

 

이 책은 각기 다른 성향의 예술가들을 만나는 즐거움이 있는데, 저자의 글 역시 이에 영향을 받는 듯 마티스의 챕터가 차분하고 진중한 느낌을 준다면 피카소의 이야기는 반짝이는 열정이 느껴진다. 그리고 또 하나, 피카소와 함께 한 수많은 여인들과의 만남과 이를 통한 예술활동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오죽하면 피카소의 연인들의 목록을 페이지를 할애해 정리해두었을까 싶기도 하다. 그로 인해 피카소의 작품에 대한 시선이 다소 분산되는 아쉬움이 있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에게 여자란 그림을 그리기 위한 오브제에 지나지 않을지도 몰랐다. 그의 그림에는 여인을 주제로 다룬 작품들이 넘쳐난다. 피카소가 23살에 파리의 빈민굴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 그의 첫 번째 여인인 동갑내기 페르낭드 올리비에를 시작으로 피카소의 마지막 여인 자클린 로크까지, 그는 새로운 연인을 만날 때마다 작품 경향이 변했다. p.186

 


     

  샤갈 (1887~1985)  

 


 

러시아에서 태어난 유대인(당시 러시아에서 그들은 2등시민이었다고 한다), 자신의 사랑과 꿈을 이루기 위해 파리로 향했지만, 1차 세계대전 발발로 인해 잠시 머물 예정이었던 러시아에서 9년간 발이 묶이기도 했고, 2차 세계대전 때는 나치에 의해 제거해야 할 예술가로 취급당해 미국으로 향해야 했던 샤갈.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프랑스로 돌아온 이후 미국을 찾으려 했을 때는 비자 발급을 거부받아야 했던 예술가.

저자는 이런 그를 떠돌이이자 방랑자라고 말한다.

 

   샤갈은 떠돌이였다. 그는 방랑자였다. p.239

 

샤갈 챕터에서는 아내 벨라와 딸 이다의 이야기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그만큼 그에게는 사랑이라는 주제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듯 하다.

 

   “우리의 삶에는 오직 한 가지의 색채만 있다. 예술가의 팔레트에 삶과 예술을 부여하는 그것은 사랑의 색채.” p.303

 

첫눈에 반한 사랑, 그리고 6년의 연애와 결혼, 이후 그녀를 향한 사랑. 피카소의 연인들에게 다소 지친 탓인지 벨라를 향한 샤갈의 사랑을 만났을 때는 왠지 감탄마저 느껴졌다. 당시 벨라가 14세였다는 것 그리고 샤갈에게 테아라는 여자친구가 있었다는 것은 잠시 접어두기로 한다.

 

   ’갑자기 테아가 아니라 그녀와 함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의 침묵도, 그녀의 눈도 내 것이다. 그녀는 마치 나를 오래전부터 알았고, 내 유년기와 현재, 미래까지 언제나 나를 알고 있었던 것처럼 느꼈다. 벨라와 처음 만났던 순간 그녀는 나의 가장 깊숙한 내면을 꿰뚫는 것처럼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바로 나의 아내가 될 사람임을 알았다. pp.247-249

 

하지만 30년을 함께 한 벨라의 사후, 딸과 동년배인 버지니아와의 관계, 그리고 두 번째 부인 바바로 이어지는 그의 삶을 바라보며 나의 감탄은 다소 사그라들 수 밖에 없었는데 딸 이다 역시 샤갈의 옆에는 여성이 있어야 함을 인정했는데, 이후 두 번째 부인이 되는 바바를 소개한 것 역시 그녀였다. 그리고 샤갈이 미국으로 건너갔을 때 그의 작품을 찾아내 옮기고 오랜 기간 아버지의 비즈니스를 도맡았던 사람 역시 이다였다.

 


 

   그의 모든 생애는 여성에게 의존하는 삶이었다. 처음에는 어머니와 여섯 명의 누이들에게, 다음 30년은 사랑하는 벨라에게, 그녀가 죽은 다음에는 딸과 동년배의 버지니아에게 차례로 의지했다. p.299

 

이렇듯 사랑꾼(좋게 표현해서)이었던 샤갈은 다양한 분야에서 작품활동을 했는데, 대부분 화가들이 꺼리거나 시도하지 않는 분야에서도 거침이 없었다니, 어딘가 유약하고 섬세한 느낌이 드는 것과는 다소 대비되는 부분이다.

 

   샤갈은 어떤 매체에도 낯설어하지 않았다. 그의 창작 영역은 단순한 그림에서 벗어나서 책의 삽화와 일러스트, 무대 세트, 태피스트리 같은 대부분 화가들이 꺼려하거나, 엄두를 내지 못하는 다양한 분야로도 성큼 뛰어들었다. p.324

 



샤갈박물관/니스.photos by Joy

 

 그리고 그들의 만남, 엇갈림 

   그들은 사망한 다음에도 그들 영혼의 정수가 서로 엮여서 지금까지 이웃으로 지내고 있다. 니스 시미에 언덕의 마티스박물관에서 조금 걸어 내려오면 사걀박물관이 있고, 피카소박물관은 이곳에서 약 30분 정도 떨어진 앙티브의 작은 성에 있다. 게다가 방스의 마티스 무덤은 생폴 드 방스의 샤걀 무덤과 지척지간이다. 피카소 무덤은 차로 1시간여 거리로 좀 떨어진 보브나르그에 있지만, 그 역시 20분 거리의 무쟁에서 사망한 것을 옮긴 것이다. p.308

 

   당시 그들은 북극과 남극으로 불렸다. 마티스가 프랑스 맨 위쪽 노르데파르망 태생인 반면, 피카소는 스페인 남단 말라가 출신인 까닭이었고, 성격도 그만큼 달랐던 연유다. p.150

 

   책의 앞부분에서 얘기한 대로 마티스와 피카소의 우정도 끝 무렵에 가서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 역시 상대방 예술성에 대한 칭송은 지속되었다. 마티스는 한 사람만이 나를 비판할 권리가 있다. 피카소다라고 말했다. p.314

 

   피카소는 모든 것을 고려해 볼 때, 오직 마티스만 있다고 끝까지 믿었다. p.314

 

   1954년 마티스가 세상을 떠나자 피카소는 회한에 차서 이렇게 말한다. “이제 누구와 대화를 하지?” 157

 

   “마티스가 죽으면 샤갈이야말로 진짜 색채가 무엇인지 이해하는 유일한 화가다.” 314

 

   오찬장에서의 결별 이후 샤갈은 피카소를 이름 대신 스페인 놈이라고 불렀지만, 피카소에 대해 물으면 피카소가 얼마나 천재적인 사람인가. 그가 그림을 안 그려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314

 

   거듭 강조하지만 프로방스에서 마티스와 피카소, 샤갈 세 명의 거장이 이웃사촌으로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는 사실은 예술사에서 정말 다시는 볼 수 없는 희귀한 예라 할 수 있다. 더구나 모두 말년에! 이는 위대함이 위대함을 끌어당긴다는 말밖에 설명할 수 없는 운명적 이끌림이었다. pp.307-308

 

 그들에게 프로방스는 

# 마티스에게 프로방스는?

조르주 살레스에게 아침마다 새로운 니스의 광선을 발견합니다. 나는 나의 행운을 도저히 믿을 수 없습니다라고 말할 만큼, 그는 희열에 차 있었다. 57

 

# 피카소에게 프로방스는?

피카소는 결코 한곳에 오랫동안 정착하지 못했다..(중략)..그는 생애의 마지막을 프로방스의 앙티브, , 엑상프로방스, 무쟁으로 이동하며 보냈다. 결과적으로 코트다쥐르는 그의 예술혼으로 가득차게 되었고, 이곳으로의 여행은 그의 삶을 떠올리게 한다. 202

 

앙티브의 피카소박물관보다 아름다운 위치에 있는 아트 갤러리는 찾아보기 힘들다. 가리말디 궁전의 석탑 아래 테라스에서 당신은 해안부터 저 멀리 회색의 페라 곶까지 이르는 빛나는 바라를 볼 수 있다. 햇살은 수면을 두드리고 요트는 그 사이를 게으르게 지나쳐간다. 바다와 잇닿아 있는 성벽의 모퉁이에서는 아이들이 노를 저어 돌아다니고, 중세의 성벽 안에는 화랑의 벽화들이 위대한 예술가의 매우 유희적이고 별로 힘을 들이지 않은 듯한 작품들과 함께 걸려 있다. p.206

 

 

피카소박물관/앙티브.photo by Joy

 

# 샤갈에게 프로방스는?

샤갈 역시 똑같은 찬탄사를 표현했다.

남쪽에서, 내 생애 처음으로, 나는 내 나라에서 본 적이 없는 풍성한 녹색을 보았다.” p.241

 

샤갈은 프로방스의 빛깔과 색깔을 뤼미에르-이베르테자유의 빛이라고 불렀고, 이를 통해 영감을 얻었다. 그는 비텝스크에서보다 훨씬 더 자유로운 영혼으로 프로방스의 창공을 날아다녔다. p.341

 

*기억에 남는 문장

왜곡 없이 사물을 보기 위해서는 용기 같은 것이 필요하다.

이 용기는 모든 사물을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예술가에게 필수적이다. p.38

(마티스)

 

사람들이 만약 마티스의 불면과 높은 긴장감, 매우 불편한 상태에서 나온 작품의 역사, 즉 작품의 핀 pin 자국, 자른 흔적, 겹쳐 쌓은 것, 쥐어뜯은 형태, 수정 작업들을 주의 깊게 볼 수 있다면 마티스의 부드러움은 강인함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p.110

 

마티스는 시인으로 보자면 키이츠나 말라르메와 같다. 늦가을의 나무에서 나뭇잎들이 떨어지듯, 그의 컷아웃에서는 새와 꽃들이 날아오른다. 그것이 그가 추구했던 예술과 삶의 균형이다. p.110

 

마티스는 그의 예배당이 궁극적으로 사람들이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는 장소가 되기를 바랐다. p.134

 

피카소의 이름은 원래 파블로 디에고 호세 프란시스코 데 파울라 후안 네포무세노 마리아 데 로스 레메디오스 치프리아노 데 라 산티시마 트리니다드 루이즈 이 피카소. p.139

*아니, 이렇게 긴 이름의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두 사람은 만나자마자 친해졌지만, 언제나 어깨너머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이미 상대방의 지명도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경쟁심이 점차 커지면서 창작의 속도를 높이며 더 유리한 위치에 있고자 서로 많은 신경을 썼다. p.149

 

현란한 빛으로 가득찬 축제와도 같은 분위기가 그의 작품 속에 분명하게 등장하는 것도 바로 이시기다. 태양은 도처에서 찬란한 얼굴을 드러내고, 여인들은 마치 꽃다발이나 과일더미 속에 파묻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선의 형태보다 색채가 훨씬 더 중요하게 부각된 그림들이다. p.244

 

나는 내가 더 이상 비텝스크에 머문다면 온 몸에 이끼가 껴버릴 것 같았다. 나는 거리를 배회하면서 간구하고 기도했다. 구름 속에도 계시고 구두장이 집 뒤에도 계시는 신이시여, 내 영혼을 밝혀주소서. 이 말을 더듬고 고통받는 영혼에게 길을 안내해주소서. 저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되고 싶지 않나이다. 저는 새 세상을 보고 싶나이다...... 비텝스크여, 나는 그대를 버린다. 그대의 청어와 함께 그 자리에 있으라!’ p.251

 

훗날 샤갈 자신이 밝힌 바에 따르면 그가 진짜 배움을 얻은 것은 루브르박물관과 대규모 공공 전시회, 아방가르드 화상들의 상점을 부지런히 기웃거린 결과였다. p.253

 

샤갈에게 파리란 빛, 색채, 자유, 태양, 삶의 즐거움을 뜻했다. 물리적인 동시에 형이상학적인 그 빛의 영향을 받고, 또 부분적으로 야수파의 영향을 받아 샤갈의 색채는 곧 훨씬 강렬하고 밝아졌다. p.253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도도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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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블로거 Joy

    서평완료 : )
    http://blog.yes24.com/document/15335483

    2021.11.01 20:34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흙속에저바람속에

    예술가들에게 프로방스란 어떤 공간, 어떤 의미인지를 이야기하는 책이군요! 엽이님께서 직접 가보셨던 곳들도 있어 책을 읽으시며 더 와닿고 그립지 않으셨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마티스는 요즘 예스마을의 이웃님들과 주고 받는 마음나눔에서 책을 수호하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어 더 친숙해진 느낌인데, 이 책을 통해 그를 더 알 수 있겠단 생각도 해봅니다.ㅎㅎ 다음 2권에서는 또 어떤 예술가를 만나보게 될 지 궁금해지는데, 그때도 엽이님이 가이드를 맡아주시면 참 좋을 것 같아요!(출판사 관계자님 보고 계시지요.^^;;)

    2021.11.01 21:31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Joy

      프로방스에 이렇게 많은 예술가들의 이야기와 다양한 풍경이 숨어있는줄 모른채 떠났던 여행이었기에 더욱 놀라움이 많았던 여행이었습니다. 그리고 책으로 다시 만난 그곳은 지난 기억을 불러오기도 또 새로운 이야기를 전해주기도 해서 더욱 즐겁기도 했구요^^
      말순님 말씀처럼 마티스는 예스선물포장으로 가장 많이 만나지 않았을까..싶기도 합니다. 예스마을 이장님이 마티스 팬인걸까요? ㅎㅎ
      프로방스 가이드! 음..말순님 조금만 더 큰 목소리로?!ㅎㅎㅎ

      2021.11.05 21:38
  • 스타블로거 사랑님

    프로방스로 떠난 여행 즐거우셨나요? 마티스, 피카소, 샤갈을 만나고 온 조이님의 그림여행..저도 재밌게 봤네요.
    제기억에 맞는지 모르지만.. 첫 해외여행(?) 겸 짧은 연수로 독일에 갔을때 어느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샤갈의 작품이라고 했던걸 봤던 기억이 나네요. 샤갈의 엽서도 사왔는데.. 찾아봐야지.. 예~~~
    좋은 리뷰 감사해요...

    2021.11.01 23:14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Joy

      사랑님의 글을 읽으니, 저도 처음 유럽에 갔을때 성당의 규모나 그 내부의 분위기에 압도당했떤 그 기분이 떠올랐습니다. 아..적다보니 정말 여행가고 싶어요!!!
      함께 프로방스 여행을 해주셔서 감사해요^^
      (사랑님께서 사오신 샤갈의 엽서가 궁금합니다! 찾으시면 꼭 포스팅 해주시는 걸로!!)

      2021.11.05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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