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주제로 쓴 에세이예요. 시리즈로 나오고 있어요.”
내 관심을 눈치챘는지 주인장이 말을 걸어왔다. 외국어, 하루키, 비건, 요가.... 주제도 참 다양하다. 뭔가를 좋아하는 것만큼은 나도 제법 잘하지 않았던가. 무엇보다 비전문가들이 쓴 에세이라고 하니 불쑥 욕심이 난다.
“<아무튼, 장국영> 써볼까?” p.12
‘아무튼’ 시리즈를 처음 알게된 것은 도서관에서였다. ‘아무튼’을 접두어로 이어지는 피트니스, 스웨터, 잡지, 하루키, 달리기..책장에 꽂힌 책들을 보다가 고개가 갸웃해졌다. 무슨 맥락인거지? 그냥 ‘아무튼’만 붙이면 되는 건가?
‘아무튼’은 나에게 기쁨이자 즐거움이 되는, 생각만 해도 좋은 한 가지를 담은 에세이 시리즈입니다.
아하, 그런거구나. 저마다의 기쁨이나 즐거움이 되는 한 가지를 주제로 쓴 글들로 이루어진 시리즈라는 것을 알고나니 ‘아무튼’에 이어지는 단어들이 달리 보였다. 연필, 발레, 순정만화, 여름, 클래식..일상에서 스쳐 지나던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한 권의 책으로 엮을 만큼, 말 그대로 ‘생각만 해도 좋은’ 것일 수 있겠구나, 책 제목을 하나씩 들여다보며 내게는 어느정도일까 가늠해보기도 했다.
다시 책으로 돌아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 책의 저자에게는 ‘장국영’이라는 이름 석자(책에서는 대부분 ‘꺼거’라는 애칭으로 부르고 있지만)가 그런 의미가 되어준다.
이 ‘열병’은 여전히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 뛰게 하는 10대를 지나 20대, 30대까지 줄곧 의리 있게 이어졌다.
특히 그 시절 나는 꺼거를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 진학을 모두 결정해버렸다. 남들은 갈팡질팡하고 심사숙고한다는 그 중요한 진로를 그렇게 간단하게 결정한 걸 보면 나의 팬심도 어지간하긴 했던 모양이다. p.28
그때쯤 나는 꺼거와 공식적으로 당당하게 만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생각해낸 것은 다름 아닌 통역사였다. 왜 꼭 통역사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외국인과 떳떳하게 만날 수 있는 방법은 통역사가 되는 것뿐인 줄 알았다. p.35
처음 그의 영화를 본 중학교 1학년의 어느 날부터 박사를 졸업하는 지금 이 순간까지, 지난 20여 년의 시간 동안 나는 줄곧 그의 충실한 팬이었다.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나는 중국어를 배울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랬다면 당연히 오늘의 이 영광도 없었을 것이다..(중략)..과장을 아주 조금 보태자면 나를 박사로 만든 건 8할이 꺼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pp.115-116
이렇게 나의 논문 <후(後) 장국영 시대 팬덤의 정체성화 사회문화적 함의>가 시작되었다. 팬심 가득했지만 그래도 연구의 객관성을 유지하며 진지한 분석을 하고자 노력했다. pp.125-126
장국영과 대화를 하고싶어, 그의 옆에서 통역하던 통역사가 부러워 ‘중국어’를 전공하고, 그의 팬덤에 대한 논문을 쓰기까지 했으니, <아무튼, 장국영>이라는 에세이를 쓰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에 감탄마저 일었다.
많고 많은 ‘아무튼’ 시리즈(책표지에 적힌 제목들을 보니 50여 권이 출판된 듯 하다) 중에서 내가 가장 먼저 이 책을 읽은 것은 나 역시 ‘장국영’의 팬이기 때문이다(이 책을 읽은 순간 자신감이 사라져 버리기는 했지만).
저자와 마찬가지로 ‘영웅본색’을 통해 장국영이라는 배우를 알게된 후 ‘천녀유혼’, ‘아비정전’, ‘동사서독’ 그리고 ‘패왕별희’로 이어지는 그의 영화들을 만나고, 책에서도 언급된 앨범 ‘총애 장국영’을 나 역시 반복해서 들었었다.
그 유명한 공중전화 부스 신에서 어찌나 대성통곡을 했던지 같이 비디오를 보던 동생이 깜짝 놀라서 휴지를 건네줄 정도였다. 그날 눈물 콧물을 쏙 뽑은 나는 그 뒤로 하루가 멀다 하고 비디오 가게를 들락날락하며 그의 영화를 섭렵하기 시작했다. 다른 많은 사람이 그랬듯 전혀 특별하지 않은, 나의 장국영 사랑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p.22
당시 가장 최근 발매된 앨범인 <총애 장국영>을 사서 테이프가 늘어지게 들었다. <총애>는 장국영이 부른 영화 OST를 모은 앨범인데 귀가 닳도록 들은 익숙한 노래들을 영화 속에서 다시 만났을 때 정말 행복했다. p.23
2003년 만우절, 세상에 안녕을 고한 그의 소식이 정도를 넘어선 짓궂은 만우절 거짓말이기를 간절히 바라기도 했었고, 20여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4월 1일이면 문득문득 그의 노래를 찾아듣곤 한다.
유난히 검은색이 많이 칠해진 신문의 헤드라인. 검은 바탕에 흰 글씨로 쓴 ‘장국영’ 세 글자가 엄청난 크기로 클로즈업됐다. 그대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울지 않아도 눈물이 저절로 흘렀다.
장국영.
이 이름 하나로 그해 참 많은 사람이 울었다. p.65
장국영의 팬 사인회에 가고, 그의 얼굴을 보기 위해 방청객 자리를 차지하고, 선물과 편지를 전한 저자의 장국영 사랑(내가 감히 범접하지 못할)을 만나고 있으려니, 내 마음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던 기억들이 하나, 하나 떠올라 웃음이 나기도 아쉽기도 또 이제는 더 이상 그의 작품들을 만날 수 없음에 새삼 마음이 헛헛해지기도 한다.
세상에나, 맞아. 나는 이렇게나 장국영을 좋아했었다. 괜히 눈물이 찔끔 났다. 잊고 있던 나를 다시 만난 느낌이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정말로 장국영을 좋아한다..(중략)..글이 적힌 종이 몇 장과 그림을 챙겨서 방으로 돌아왔다. 가슴이 마구 쿵쾅거렸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할 얘기도, 기억하고 싶은 얘기도 너무 많다. 쉬이 잠이 올 것 같지 않다. p.17
*나에게 적용하기
하나. 나만의 ‘아무튼’ 으로 짧은 글 써보기(적용기한 : 여름이 오기전)
"나는 <아무튼, 공항>을 한 번 써보고 싶어"
"오! 재미있을 것 같아요."
"우리도 하나씩 주제 정해서 써봐요!"
얼마 전 함께 책을 읽는 후배들과 자신만의 ‘아무튼’을 써보자며 나눴던 이야기
두울. 까페 ‘레슬리’ 가보기(적용기한 : 봄이 가기전)
나도 틈틈이 경기도 고양시 삼송동에 있는 장국영 테마 카페 ‘카페 레슬리’를 방문했고, ‘샤로수길’에 새로 문을 연 와인바 ‘아비정전’을 찾기도 했다. p.16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