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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마트에서 울다

[eBook] H마트에서 울다

미셸 자우너 저/정혜윤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H마트에 들어서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1년 남짓 미국생활을 하며, 한국음식을 얼마나 그리워할까 싶었는데, 장장 4시간을 넘게 운전해 (아니, 서울에서 부산까지 장을 보러 간다는 거잖아?) 도착한 그 곳은 없던 향수병도 생기게 할 것만 같은 익숙하고 설레는 공간이었다. 아니, 여기는 한국인건가?

 

이런 기억 덕분에 이 책을 읽기 전 저자가 한국인일지도 모르겠다고, 낯선 객지 생활 속에서 만난 익숙한 것들로 인해 감정이 고양된 것은 아닐까, 한국인이라면 누구라도 느낄법한 ‘H마트라는 공간이 주는 익숙함과 반가움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었다.

 

   *H마트아시아 식재료를 전문으로 파는 슈퍼마켓 체인이다. H는 한아름의 줄임말로, 대충 번역하자면 두 팔로 감싸안을 만큼이라는 뜻이다. 한국에서 조기 유학 온 아이들은 고국에서 먹던 갖가지 인스턴트 라면을 사러, 한인 가족들은 설날에 해 먹을 떡국 떡을 사러 이곳에 온다. p.11

 

   엄마가 돌아가신 뒤로 나는 H마트에만 가면 운다. p.11

 

   이제 전화를 걸어, 우리가 사 먹던 김이 어디 거였냐고 물어볼 사람도 없는데, 내가 여전히 한국인이긴 할까? p.11

 

, 이런... 책을 펼치자 마자 눈에 들어오는 문장은 나를 멈칫하게 만들었다. 누구에게나 그런 것들이 있지 않을까? 더 이상 내 옆에 함께 하지 못하는 (그것이 내가 선택한 것이든 또는 누구도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었든)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그 무엇 말이다. 그것은 저자와 같이 특정한 장소일 수도, 노래일 수도, 영화일 수도 또는 음식일 수도 있다. 아니 그저 어느 계절일 수도 바람결에 실려온 낯익은 향기일 수도 있겠다.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란, 한국인 어머니를 통해 한국의 정서를 접한 저자는 경계인으로써의 자신의 삶과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때로는 담백하게 또 때로는 온갖 감정을 다 실어 적어두었다. 엄마와 엇갈렸던 그녀의 감정을, 위암 판정을 받은 엄마를 돌보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이야기를 읽으며, 엄마와 딸들의, 가깝지만 그렇다고 해서 항상 순탄치만은 않은 관계에 대해 생각해본다.

 

   “괜찮아, 괜찮아.” 엄마가 말했다.

   내게 너무도 익숙한 한국말. 내가 평생 들어온 그 다정한 속삭임. 어떤 아픔도 결국은 다 지나갈 거라고 내게 장담하는 말. 엄마는 죽어가면서도 나를 위로했다. p.84

 

문득 오래전 암 판정을 받고 수술 날짜를 기다리시던 엄마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괜찮아, 괜찮아.

아무 말도 못하고 울지 않으려고 감정을 꾹꾹 눌러 담고 있던 순간, 이어진 엄마의 말은 결국 나를 무너뜨렸었다.

딸은 결혼 준비할 때 엄마가 있어야 한다는데, 그게 제일 걱정이네.

 

저자는 엄마를 위해 결혼을 앞당기고 그런 기대할만한 일들로 엄마가 고통을 잊기를, 가족 모두 이 시간을 잊기를 바란다. 저자의 말처럼 얄팍한 속임수라 할지 모르지만, 그 순간을 다 같이 아무 일 없다는 듯 웃을 수 있다면 그 노력을, 그 마음을 어찌 가벼이 여길 수 있을까.

 

   나는 아직도 완강히 현실을 부정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안정제 주사 한 방이면 엄마가 전처럼 괜찮아질 거라 확신했고, 그때그때 적당히 무마하면서 몇 년은 더 이렇게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p.86

 

   아빠는 내파밸리로 다 같이 와인 시음을 하러 갈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여세를 몰아 계속 아무 일도 없는 척 얄팍하게 위장해보려는 속셈이었다. 뭔가 계속 기대할 만한 게 있으면 이 병을 속여 넘길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p.101

 

솔직히 미국에서 자란 저자가 이렇게나 한국문화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것에 살짝 놀랐다. 책에 소개된 한국 음식과 문화(그녀의 글에서 화투에 대한 설명을 발견한 순간 이 책을 읽으며 드물게 웃음이 나기도)에 대한 글을 읽으며 과연 외국인의 시선으로 이 책을 보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졌다. 특히나 그녀가 설명하는 음식들은 얼마나 맛깔나게 느껴지던지, 이 글을 읽으며 음식의 맛을 상상할 수 없는 외국인들에게 심심한 유감을 표할 정도였다.

(고백컨대, 이 글을 읽은 주말 나는 오랜만에 갈비를 재며 부산을 떨기도 했다)

 

   나는 행복한 마음으로 손바닥을 쫙 펴서 거기에 상추 한 장을 올려놓고 내 식대로 음식을 착착 쌓았다.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갈비 한 조각, 따끈한 밥 한 숟가락, 쌈장 약간, 얇게 저민 생마늘 한 조각을 차례차례로. 그런 다음 그걸 얌전하게 오므려 입에 쏙 집어넣고는 눈을 감고 우적우적 씹으면서 맛을 음미했다. p.53

 

김영하 북클럽의 책으로 함께 읽은 후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의 키워드로 엄마한국 음식을 꼽았다. 엄마와 음식이라니, 이 둘을 분리하는 것이 의미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세상 어떤 2개의 낱말이 이렇게나 강력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까?

저자에게 H마트는 단순한 장소가 아닌 엄마를, 그 엄마가 해준 음식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저자가 이 책의 제목을 ‘H마트에서 울다로 지은 것은 필연적인 것이 아니었을까, 그녀에게 H마트는 엄마와의 추억그 자체일 테니까.

 


 

*기억에 남는 문장

백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란 나는 전적으로 어머니에게서 한국문화를 접했다. 엄마는 내게 직접 요리하는 법은 가르쳐주지 않았지만(한국인들은 똑 떨어지는 계량법 대신 참기름은 엄마가 해주는 음식맛이 날 때까지 넣어라같은 아리송한 말로 설명하길 좋아한다) 내가 완벽한 한국인 식성을 갖도록 나를 키웠다. 말하자면 나도 훌륭한 음식 앞에서 경건해지고, 먹는 행위에서 정서적 의미를 찾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음식 하나하나에 대한 선호가 분명했다. 김치는 알맞게 익어 적당히 새콤한 맛이 나야 했고, 삼겹살은 바짝 구운 것이어야 했으며, 찌개나 전골은 입안이 델 정도로 뜨겁지 않으면 안 먹느니만 못했다. 한 주 동안 먹을 음식을 미리 만들어둔다는 생각은 말도 안 되었고, 우리는 그날그날 당기는 음식을 바로바로 만들어 먹었다..(중략)..우리는 철철이 제철 음식을 해 먹었고, 꼬박꼬박 명절 음식을 챙겨 먹었다. p.11

*의식하지 못했었는데 글을 읽다보니, 아 그렇구나..그러게...공감이 가던ㅎㅎ

 

음식은 엄마가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었다. p.11

 

이따금씩, 출입문도 없는 방안에 홀로 남겨진 기분이 들 정도로 깊은 슬픔에 잠길 때가 있다. 엄마가 돌아가셨단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단단한 벽에라도 부딪힌 듯한 심정이 된다. 출구도 없고 단단하기만 한 벽면에 쿵쿵 머리를 찧으면서, 앞으로 다시는 엄마를 보지 못하리라는 절대 불변의 현실만 자꾸자꾸 떠올리는 것이다. p.13

 

청년의 어머니는 자기 수프에서 고깃조각들을 건져내 아들의 숟가락에 올려놓는다. 좀 피곤해 보이는 아들은 어머니에게 말도 별로 건네지 않고 조용히 앉아서 먹기만 한다. 그에게 내가 지금 얼마나 우리 엄마를 그리워하는지 아느냐고 말해주고 싶다. 어머니한테 더 잘 대해드리라고, 삶은 허망해 어머니가 언제 훌쩍 떠나가버릴지 알 수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p.15

 

음식과 마찬가지로 아름다움 역시 엄마 나라 문화의 핵심 요소였다..(중략)..예쁘다는 말이 착하다, 예의바르다는 말과 동의어로까지 사용되는 곳이다. 이렇게 도덕과 미학을 뒤섞어놓은 말은, 아름다움을 가치 있게 여기고 소비하는 문화로 일찌감치 자리잡았다. p.29

 

한국 엄마들은 서로를 자기 아이의 이름으로 불렀다. 이를테면 지연의 엄마는 지연 엄마라고, 에스터의 엄마는 에스트 엄마라고 불렀다. 나는 그분들의 진짜 이름은 들어본 적이 없다. 자신의 정체성이 자기 아이들에게 흡수되어버린 것이다. p.59

 

그 부츠가 떠올랐다. 내가 발이 까지지 않고 편안하게 신을 수 있도록 엄마가 미리 신어 길들여 놓은 부츠가. 나는 이제 어느 때보다도 간절히 바랐다. 부디 내가 대신 고통받을 방법이 있기를, 내가 얼마나 엄마를 사랑하는지 엄마에게 증명할 수 있기를, 엄마의 병상에 기어들어가 엄마에게 바짝 몸을 밀착시키기만 하면 그 무거운 짐을 내가 송두리째 흡수해버릴 수 있기를. 인생이 공평하려면 자식 된 도리를 다할 기회가 주어져야 할 것 같았다. pp.62-63

 

나는 두 세계중 어느 세계에도 온전히 속할 수 없었다. 노상 반만 인정받고 반은 이방인 취급을 받기 일쑤였다. 나보다 그 세계의 지분이 더 많은 누군가가, 온전하고 완전한 누군가가 자기 멋대로 날 쫓아낼까봐 전전긍긍하면서, 오랫동안 미국이라는 나라에 속하려고 별짓을 다 했다. pp.76-77

 

엄마의 설명은 애매하기 짝이 없어 복장이 터지기 일쑤였다. 밥만 해도 그랬다.

쌀 위에 손바닥을 올려놓고 그 위까지 물을 부으라니, 그게 대체 무슨 말이야?”
네 손등을 다 덮을 때까지 물을 채우라고!”

나는 전화기를 어깨와 턱 사이에 끼우고 물을 부어놓은 흰 쌀에 왼손을 담갔다.

그게 몇 컵인데?”

그건 나도 몰라. 엄마는 컵을 써본 적이 없어!” p.97

*밥솥의 크기가 다 다르고 쌀의 양도 다른데 항상 손등을 덮을 때까지 물을 채우라는 그 말이 너무 어려웠던 기억.

 

엄마, 거기 있어?” 내가 속삭였다. “내 말 들려?”

눈물이 두 뺨을 타고 흘러내려 엄마의 파자마 위로 뚝뚝 떨어졌다.

엄마, 제발 눈 좀 떠봐.” 나는 엄마를 깨울 작정이라도 한 듯이 소리쳤다. “나 아직 준비가 안 됐어. 제발, 엄마. 나 아직 준비가 안 됐어. 엄마! 엄마!

나는 엄마의 언어로, 모국어로 절규했다. p.106

 

나는 멈추지 않고 죽은 엄마의 사지를 옷에 욱여넣었다. 겨우 한 동작 마칠 때마다 엄마 옆에 쓰러져 몸부림치면서 매트리스에 얼굴을 파묻고 울며 소리질러댔다. 그렇게 극한 슬픔에 짓눌려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 될 때마다 스스로 제동을 걸고 격앙된 감정을 진정시켜야 했다.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아무도 내게 그런 준비를 시켜주지 않았다. 왜 이런 감정을 느껴야 하는 거지? 왜 이런 기억을 가져야 되지? p.108

 

한 사람이 무너지면 나머지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기 어깨를 내주며 그 무게를 감당하는 법이니까. p.111

 

내 기억을 곪아터지게 놔둘 수는 없었다. 트라우마가 내 기억에 스며들어 그것을 망쳐버리고 쓸모없게 만들도록 방치할 수는 없었다. 그 기억은 어떻게든 내가 잘 돌봐야 하는 순간이었다. p.149

 

나는 한국 문화와 우리가 먹은 음식을 글로 쓸 작정이었다. 그 음식들이 내가 기억해내고 싶은 엄마와의 추억을 어떻게 불러일으켰는지도.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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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구경

    우왕 이렇게 길게~~
    엄마와 음식이라는 두단어를 분리하는것이 의미없는 생각이 생각이 들었다는조이님 말씀이 마음에 남아요^^

    2022.09.19 16:23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Joy

      엄마가 해준 집밥이 떠오를 때가 있어요. 특히나 마음에 허기가 질때면요.
      이렇게 적으면 엄마가 서운해하실지 모르지만, 음식솜씨를 떠나(객관적으로) 엄마표 김치찌개는 단연 최고입니다ㅎㅎ

      2022.09.24 09:29
  • 스타블로거 이하라

    '참기름은 엄마가 해주는 음식맛이 날 때까지 넣어라' ㅎㅎㅎ 직관도 아니라 미슐랭이 돼야할 것 같습니다.^^ 세월이 갈수록 엄마 손맛은 죽는 날까지 잊지 못할 추억일 것 같아요. 엄마는 기억으로 양육을 평생 끝내지 않는 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2022.09.23 20:22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Joy

      엄마 손맛은 정말 영원히(!) 비밀로 남지 않을까 싶어요.
      처음 요리라는 것을 하면서 "엄마, 이거 어떻게 해요?"라고 물었을때 "적당히", "알아서" 또는 "그냥 해보면 알아"와 같이 대체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모르겠는 레시피를 전수(?)받던 기억이 떠오릅니다ㅎㅎ
      기억으로 양육을 평생하는 분..정말 그러네요!

      2022.09.24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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