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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식당

[도서] 달팽이 식당

오가와 이토 저/권남희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음식점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돌아오니 집이 텅 비었다. 아무도 없는 빈집이었다. 텔레비전도 세탁기도 냉장고도 형광등도 커튼도 현관 매트도 모조리 사라지고 없었다. p.11

 

Uh-oh! 이거 힐링 소설 아니었어?

이야기의 첫 문장에 나도 모르게 당황스러움이 가득 담긴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도둑이라도 든 건가, 싶었는데 그건 아니었다. 그런데 이게 다행스러운 건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함께 살던 남자친구(이 시점에서 그를 남자친구라 칭하는 것이 타당한지 고민되지만)가 세간살이와 그간 함께 모았던 돈까지 탈탈 털어 사라졌다면, 후자가 더 절망스럽지 않을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충격 탓인지 린코는 목소리를 잃고 만다.

 

   내 목소리가 투명해졌다는 것을. 간단히 말하면 정신적 충격에서 오는 일종의 히스테리 증상일지도 모른다..(중략)..나는 목소리를 잃었다. p.25

 

린코는 할머니의 겨된장 항아리를, 남자친구(라 읽고 도둑이라 불러도 될법한)도 가져가지 않고 남겨둔, 들고 열다섯 살 봄에 떠나온 고향을 십 년 만에 다시 찾고, 데면데면한 사이의 엄마에게 창고를 빌려 작은 식당을 열기로 한다. 그렇게 달팽이 식당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나는 새로 열 식당을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한편으로는 난생처음 보는 것 같은 신비한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

   사람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자신을 되찾을 수 있는 비밀 동굴 같은 장소. p.67

 

   그 작은 공간을 책가방처럼 등에 메고, 나는 지금부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나와 식당은 일심동체. 일단 껍데기 속에 들어가 버리면 그곳은 내게 안주(安住)의 땅이다. pp.75-76

 

하루에 한 팀만 손님을 받는 달팽이 식당은 정해진 메뉴를 차려내지 않고 각각의 손님들에게 어울리는 맛을 찾아 요리를 정한다. 그러기 위해서 단순히 먹고 싶은 음식과 예산을 묻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식당을 찾는 사람들의 관계, 가족 구성, 장래 희망까지 상세하게 물어보고 달팽이 식당이라는 이름답게 준비된 음식들을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맛볼 수 있게 배려한다.

 

이렇듯 특이한 식당 운영 때문일까? 그곳을 찾는 손님들도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데, 여름이나 겨울이나 계절 상관없이 일년내내 상복을 입고 지내는 할머니, 거식증에 걸린 토끼(물론 토끼 스스로 찾아온 것은 아니지만),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를 요양원에 보내기 전 어린이 런치세트를 함께 먹고 싶다는 가족, 사랑을 이루기 위해 주 뗌므 스프를 주문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을 위해 하나, 하나 메뉴를 고민하고 식재료를 준비하는 린코의 모습은 언뜻 경건하게까지 느껴진다. 인생에서 기쁨은 잊은 듯 상복만 입고 지내는 할머니를 위해서 희로애락을 담은 메뉴를 정하고, 이제 막 시작하는 연인들을 위해 그들의 분위기를 담은 조금은 즉흥적인 식재료 선택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거식증 토끼의 우울증 완화를 위해 라벤더 꽃을 비스킷에 넣고, 첫사랑을 만나 행복한, 하지만 시간이 많이 남지 않은 누군가를 위해 세계 일주를 담은 피로연 음식을 선물한다.

 

   고민한 끝에 떠오른 것은 요리로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단 음식은 제대로 달고, 매운 음식은 제대로 맵고, 이를테면 강약과 장단이 있는 자극적인 메뉴였다. p.100

 

   호박을 고른 것은 사토루 군이 감고 있던 산뜻한 겨자색 목도리가 예뻐서. 당근은 창 너머에 펼쳐진 노을 색을 표현하고 싶어서. 마지막으로 사과를 추가한 이유는 모모 양의 귀여운 뺨이 빨간 사과를 닮아서였다. p.118

 

   나는 비스킷 반죽을 도마에 얇게 펴고 반죽에다 건조시킨 라벤더 꽃을 뿌렸다. 라벤더에는 우울한 기분을 완화시키는 효과가 있다. 반죽을 토끼의 입 크기에 맞게 가늘게 잘랐다. 이제 이백 도로 예열한 오븐에 굽기만 하면 완성이다. p.161

 

린코가 싱싱한 식재료를 직접 준비하고 이를 이용해 요리하는 모습을 보며, 또 그 음식을 먹고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 역시 음식의 맛을 상상하고 함께 음미하며 책을 읽어나갔다. 아쉬운 점이라면 직접 요리를 해서 대접하는 것보다는 누군가의 정성이 들어간 음식을 먹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어서인지 린코의 마음을 100퍼센트 이해하기에는 조금 부족했달까.

(요리를 싫어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밤하늘에 대고 요리를 할 수 있어 고맙다고 소리 지를 정도의 마음은 아닌게다)

 

   요리를 만든다. 단지 그 사실만으로, 내 몸속 세포 하나하나가 황홀해하고 있다.

   누군가를 위해 요리를 만들 수 있다는 것만으로 진심으로 행복했다.

   고마워요, 고마워요.

   한겨울 밤하늘에 대고 몇 번을 소리쳐도 부족할 정도였다. 전 세계 사람들에게 다 들릴 만큼 큰 소리로 목이 쉴 때까지 모두에게 이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p.169

 

게다가 이야기의 클라이맥스라고도 할 수 있는 린코와 엘메스 그리고 들비둘기의 장면(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이정도로만 적으려 한다)은 감동스럽기 보다는 다소 버겁게 다가와 솔직히 내용을 꼼꼼히 읽지 못했다. 사람마다 누군가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마음에 간직하는 형태가 이렇게나 다를 수 있구나, 새삼 느끼기도 했고 말이다. 어쩌면 내가 린코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요리라는 것에 대한 가치가 다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책에는 크고 작은 이야기들이 군데군데 숨겨져 있어 마치 보물찾기라도 하듯 하나, 하나 찾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엄마의 식당 아무르’, 돼지 엘메스, 부엉이 영감처럼 처음에는 그냥 넘겼던 페이지들을 퍼즐 조각 찾듯 다시 찾아 읽기도 했다.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어 그 숨겨진 이야기들을 다 풀어내지는 못하지만, 린코가 인생의 희로애락을 담아 준비한 메뉴를 소개하는 것으로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의 식욕을 돋우어 볼까 한다.

 

   정말로 건방진 발상이지만, 할머니에게 세상에는 아직도 알지 못하는 세계가 무한히 펼쳐져 있다는 것을 요리로 꼭 전하고 싶었다. 닫혀 버린 마음의 눈을 부디 다시 한번 반짝, 하고 떠 주기를. 그런 바람을 이 메뉴에 담았다. p.102

 

   개다래나무주 칵테일

   사과겨된장절임

   굴과 옥돔 카르파초

   토종닭은 통째로 푹 고아 낸 삼계탕

   햅쌀로 만든 어란 리소토

   새끼양고기구이와 야생버섯마늘소테

   유자셔벗

   바닐라아이스크림을 곁들인 마스카르포네 티라미수

   진하게 끓인 에스프레소커피  p.101

 


 

*기억에 남는 문장

마지막 매실장아찌를 입에 문 채 나는 한동안 꼼짝않고 있었다. 신맛이 몸속 깊숙한 곳까지 전해졌다. 입안의 그것은 내게 비밀의 보석만큼이나 가치 있는 무엇이었다. 할머니와 보낸 날들이 가슴에 스며들었다..매실장아찌는 어느새 조금씩 녹아서, 이윽고 혀 위에는 조그만 씨와 할머니와의 추억만이 남았다. pp.28-29

 

엄마라고 쓴 하얀 돌. 이건 엄마에게 야단맞아서 기분이 안 좋을 때, 콘크리트 바닥에 냅다 내던져서 기분 전환을 하는 데 썼던 소중한 도구다. 뒤에는 크레파스로 엄마의 눈과 코와 입을 그려 놓았다. p.35

*뭔가 엄마에 대한 애틋한 기억인 줄 알았다가 조금 당황ㅎㅎ 

 

모계 가족의 기질은 반드시 대를 걸러 유전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즉 엄마는 너무도 정숙한 외할머니에게 반발해 그것과는 정반대로 파란만장한 삶의 방식을 선택했고, 그 엄마 밑에서 자란 나는 엄마처럼 되지 않을 거라고 반발해, 또 그것과는 정반대인 평범한 삶의 방식을 선택했다. 영원히 끝나지 않는 오셀로 게임을 하는 것처럼 엄마가 하얗게 칠한 부분을 딸은 열심히 검게 덧칠하고, 그 딸인 손녀는 다시 하얗게 칠하려고 노력한다. p.73

 

나는 아까 따 온 산포도를 정성껏 씻어서 조려 발사믹 식초를 만들었다.

완성되는 것은 십이 년 후, 어떤 맛으로 태어날지 눈을 감고 상상해 본다.

어쩌면 도중에 실패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십이 년 후에도 나는, 이렇게 지금과 같은 신선한 마음으로 주방에 서 있고 싶다. 그런 강한 바람을 담아서 나는 신중하게 발사믹 식초의 원액을 소독한 병에 담았다. p.84

 

행복했다.

너무 행복해서 가슴이 메어 왔다. 금방이라도 호흡 곤란으로 죽어 버릴 것 같을 만큼 행복했다.

넓은 하늘 아래에서 이렇게 누군가를 위해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내 모습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것도 이렇게 빨리, 오랜 세월 품어 왔던 꿈이 이루어질 줄이야...... p.110

 

하지만 디저트를 직접 맛보면서 지금 내 눈앞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하고 상상하니, 가슴이 떨려서 조금도 먹을 수 없었다..(중략)..그래서 아무리 긴장해서 몸이 굳어져도, 새콤달콤함에 가슴이 타도 쑥쑥 잘 넘어가도록 수프를 만들기로 했다. 들어가는 재료는 사전에 미리 생각하지 않고 실제로 두 사람을 만나 본 후 영감으로 정하기로 했다. p.117

 

아무리 상대의 처지와 기분을 안다 해도 고독해지는 괴로움은 어쩔 수 없다. p.160

 

사람은 항상 맑은 마음으로만 지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두의 마음속을 채우고 있는 것은 흙탕물이다.

(중략)

그러니까 나는 그 흙탕물을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해 되도록 조용히 있기로 마음먹었다.

물속에서 물고기가 돌아다니면 흙탕물이 돼 버리지만, 마음을 평온하게 하고 있으면 흙은 아래로 가라앉고 위쪽은 깨끗한 물이 된다. 나는 깨끗한 물의 상태로 있고 싶었다. pp.172-173

 

싫어하는 감정은 반드시 맛에 반영되니까, 마음도 머리도 비우기로 했다.

초조해하거나 슬픈 마음으로 만든 요리는 꼭 맛과 모양에 나타난단다. 음식을 만들 때는 항상 좋은 생각만 하면서, 밝고 평온한 마음으로 부엌에 서야 해.”

할머니가 곧잘 해 주시던 말씀이다. p.205

 

정말 소중한 것은 내 가슴속에 넣어 놓고 열쇠로 꼭꼭 잠가 두자. 아무에게도 도둑맞지 않도록. 공기에 닿아 색이 바래지 않도록. 비바람을 맞아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p.252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알에치코리아'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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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블로거 Joy

    서평완료 : http://blog.yes24.com/document/17133573
    린코가 누군가를 위해 만든 음식을 함께 음미하는 시간 : )

    2022.11.13 17:01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모모

    오래전에 읽은 기억이 나요. 음식으로 사람의 마음을 달래주는 것이 좋았거든요.
    잘 지내시나요? 시간이 참 빨리 흘러갑니다.^^

    2022.11.14 10:24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Joy

      음식이라는 것은 사람의 허기를 채워줄 뿐 아니라 마음까지도 채워주는 듯 합니다.
      저는, 계속해서 조금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연말이니 어쩔 수 없지, 싶으면서도 때때로 지치기도 하고 또 힘을 내기도 하고 그렇게 반복을 하면서 말이예요.
      모모님께서는 어찌 지내고 계세요? 모쪼록 마음 평안하시길 바래요^^

      2022.11.20 14:59
  • 스타블로거 추억책방

    달팽이 식당을 시작한 계기는 좀 당황스럽지만.. 소설 속 달팽이 식당에 가보고 싶어지네요.
    즐겨봤던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도 떠오릅니다. 손님을 배려하는 정성 가득한 음식~
    아직 아침 식사 전인데 소설 속 메뉴 음식이 먹고 싶어집니다.^^

    2022.11.19 07:45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Joy

      아, 그쵸. 저는 소설 말미에라도 남자친구가 재등장(하긴 처음부터 도망간? 장면이어서 등장을 한 것도 아니지만요^^;)하지는 않을까 했는데 끝까지 나오지 않더라구요^^;;
      '심야식당'은 몇 편 드라마를 보기도 하고, 두 권인가 만화책으로 소장하고 있기도 한데, 정성이 들어간 음식은 어느 곳에서든 위로가 되는구나, 싶었습니다.
      추억책방님, 항상 식사 잘 챙기시구요^^

      2022.11.20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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