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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도서]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고레에다 히로카즈 저/이지수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를 주제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내가 펼친 447장의 열띤 토론

    

   아무리 뛰어난 사람도 일대기나 생각을 책이나 영화로 흥미롭게 남긴다는 것은 사실 어렵다. 대게 미화되고 우상화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편견 탓에 자서전이나 에세이는 잘 찾아 읽지 않았다.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을 고를 때도 이 책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스스로 어떤 업적을 남겼는지에 대해 서술한 것이라면 관심 없었다. 그저 내가 힘들 때마다 찾아보고 위로를 받는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영화를 찍을 때 어떤 생각을 하며 찍었는지 궁금했다. 특히 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속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격이 느슨해서 좋았다. 부모와 자식 사이도, 형제와 자매 사이도, 이웃끼리도 너무 가깝지 않고 느슨한 것이 좋았다. 인간관계를 맺고 끊는 것이 서툴러 친밀함이 치밀함으로 다가와 부담스럽고 버거울 때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적당한 간격이 있는 그의 영화를 보며 거리감을 가져보려 노력했다. 단정하지만 다정한 그의 작품에서 나는 서툴러도 괜찮아라는 위로를 받았다. 이 에세이에 서술된 영화를 찍으며 인물을 그리고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려는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오히려 인물에 깊이 개입하지 않아 그는 나와 같은 관객들을 더 이입되게 만들었다. 느슨한 거리감이 주는 위로 뒤에 담겨진 그의 노력이 에세이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것이 내가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을 보고 얻은 가장 큰 성과이다.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을 요약하면 ‘20년 간 각각의 영화들을 찍으며 생각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가 각 장이 되는 개요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한편으로는 그의 영화를 다 보지 않고 책을 읽어 내용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어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그러나 영화마다 챕터를 구분해준 덕분에 영화를 찍으면서 그가 느낀 생각의 변화들을 시각적으로 볼 수 있다. 예컨대 20년 전인 1998년에 원더풀 라디오를 찍을 당시만 해도 그는 지금과는 정반대로 어떻게 하면 더 현실적으로 찍을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며 다큐멘터리적 연출에 집중했다고 했다. 이러한 고지식한 연출 방식에 대해 그는 풋내기적 자기애에 불과하다며 스스로 비판하였다. 솔직하게 말하면 에세이를 읽기 전 나는 그의 서사구조의 서술방식과 같은 영화 내용에 대한 그의 생각이 담긴 글이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했다. 그가 주는 감동은 작품의 줄거리와 연출 방식으로부터 온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세이의 내용은 전혀 달랐다. 오히려 영화 밖의 제작 과정, 영화 산업에 대한 그의 관점, 그리고 사회문제에 대한 그의 시각이 가득했다. 그래서 책을 4장까지 읽을 때까지만 해도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했었다. 연극영화학과나 연출을 전공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우리나라도 아닌 바다 건너 섬나라인 일본 영화 산업의 현황과 사회 문제에 대해 전혀 궁금증을 가져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생각을 읽다보니 일본을 넘어 누구보다 영화 산업의 밝은 미래를 희망하고, 그를 위해 노력하며, 더 나아가 영화를 통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여하고자 하는 그의 진심이 느껴졌다. 그는 매 순간 영화를 찍으며 이러한 신념을 반영하고자 하였다. 그래서인지 그는 그의 작품들을 하나씩 회상하며 누구보다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자신의 작품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력을 인정하지만, 그는 그간의 작품들을 자신의 창작력에 의해 이뤄진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다양한 영화 산업 종사자과 관계자들의 도움과 협력으로 함께 이뤄낸 것이라 생각하고 감사함을 표한다. 영화 산업의 발전에 대한 그의 애정과 더 나은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그의 소망이 특히나 인상깊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들을 보면서 느낀 점은 항상 소수자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이를 다수들이 납득할 만큼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는 것이다. 그는 작품 속 인물들에 대해 도덕적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그의 작품에는 늘 뚜렷한 선과 악이 없다. 영화 아무도 모른다에서는 아이를 버린 엄마를 단죄하지 않는다. 작품에 사회문제를 끌고 와 아이를 버릴 수밖에 없었던 엄마의 사정을 설명한다. 또 다른 그의 영화 어느 가족에서는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학대받은 아이들을 유괴한 범죄자 집단을 보여준다. 이들은 비록 법적인 처벌을 받지만 아이들로부터 진짜 부모로 인정받는 장면을 보여주며 관객들은 모두 이들이 범죄자가 아니라고 느끼게끔 만들었다. 이에 대해서 그는 책에서 영화는 사람을 판가름하기 위해 있는게 아니며, 감독은 신도 재판관도 아닙니다. 악인을 등장시키면 이야기(세계)는 알기 쉬워질지 모르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관객들은 이 영화를 자신의 문제로서 일상으로까지 끌어들여 돌아갈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라고 답했다. 이 글을 보고 머리를 세게 맞은 듯 했다. 그의 작품을 볼 때마다 사회가 정한 범죄자나 악인을 속으로 응원하며 내심 혼란스러워 하는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사람마다 처한 상황에 따라, 살아온 환경에 따라 가치판단기준이 다르기에 이는 당연한 것이다. 이는 일본뿐만 아니라 현재 한국 사회에도 고민해보아야 할 문제다. 나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사회 여러 문제들이 요즘 들어 부쩍 진영논리에 의해 재단되는 현상에 큰 안타까움을 느낀다. 선과 악을 명확히 구분하는 흑백논리가 팽배한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는 중립이라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개인의 적극적 의사표현을 어렵게 만든다. 나는 다원화된 사회에서 유동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회색지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기에 그의 인물에 대한 도덕적 판단 신념에 매우 공감됐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보며 사회로부터 도태된, 사연 있는 악인을 응원하듯 사회에서도 우린 회색지대에 머물 용기가 필요하다. 그는 영화를 통해 은유적으로 우리에게 용기를 북돋아주는 것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영화 속에서 상실과 차별에 대해 훌륭하게 그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에 대한 비법을 묻는 질문에 그는 언론과 영화 등 영상 매체를 다루는 이들의 올바른 태도를 강조했다. 상실에 대해서 그는 남겨진 사람들을 그린다라고 답했다. 그는 1991그러나 복지를 버리는 시대로라는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면서 느낀 남겨진 이들의 상실을 매체를 통해 다루는 법에 대해 얘기한다. 이 다큐멘터리는 오랜 세월 복지 행정에 종사하던 관료였던 남편 야마노우치 도요노리씨가 돌연 자살을 선택한 후 홀로 남겨진 아내 도모코씨에 대해 다룬다. 대부분의 미디어는 죽음의 사적인 부분인 남편의 자살로 인한 도모코씨의 충격이나 슬픔에 대해 취재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이를 개인적인 슬픔이 더 임팩트가 강하고 별 생각없이 스토리를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올바른 저널리즘은 사건의 공공적, 사회적 측면에 더 관심을 가지고 취재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공과 사를 구분하며 아픈 사건을 거름으로 사회 발전을 도모할 계기로 삼을 때 언론과 매체가 발전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개인의 슬픔만 들추는 특종 경쟁식의 언론은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줄 뿐만 아니라 사회적 측면에서도 조금의 발전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후 매 영화마다 사회 문제를 고발하는 그의 목적이 여기서 비롯됐음을 느꼈다. 이러한 참된 언론인의 태도는 일본뿐만 아니라 자극적인 사건만을 좇는 모든 언론인들이 본받아야 한다. 한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잠자코 있어도 없어지지 않는 차별에 대해 말한다. 그는 언론과 방송국의 스폰서를 자처하며 자기네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뉴스들을 배제시키려고 하는 기업들에 대해 비판한다. 언론과 매체를 다루는 사람들은 절대 정보와 뉴스를 선별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방송국이 누군가의 이해관계에 의해 좌우되는 것은 언론으로서 역할을 잃는 것이다. 성공한 영화감독으로서 영화 산업과 언론의 완전한 자유와 발전을 외치는 것에서 그가 얼마나 영화를 사랑하는지, 영화를 통해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은지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러한 현상 역시 지금 우리나라와 다르지 않다. 정권에 반하는 정치색을 지닌 영화 혹은 민감한 소재의 영화에 출연한 배우를 소위 말하는 블랙리스트에 추가해 출연을 어렵게 만들고, 특정 기업에 민감한 기사를 신문사 내에서 자체 검열해버리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기록은 누군가의 주체적인 기록이 아니면 가치가 없다. 언론인과 영화인들은 그의 태도를 본받아 권력에 굴복하기 전 처음 산업에 발을 담굴 때 꿈꿨던 가슴 속 뜨거운 무언가를 떠올려봤으면 좋겠다.

   영화에 대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생각을 들어보려고 펼친 책에서 나는 그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공유했다. 책 한 권이 다 끝나도록 나는 치열하게 그와 함께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했다. 한 명의 그의 팬으로서 나는 그의 생각에 때로는 동조하고 감명 받으며 열띤 토론을 펼쳤다. 이 책을 읽기 전 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따뜻한 내용의 각본이 주는 위로, 그를 영상 속에서 표현하는 그의 연출력에 매료됐었다. 그러나 그가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들을 공유한 후에 나는 그가 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태도와 노력에 헤어 나오지 못할 정도로 푹 빠져버렸다. 영화 내적인 요소보다 외적인 요소에 대한 토론을 통해 처음으로 언론과 영화 등의 매체가 올바른 기능을 다했을 때 세상에 끼치는 선한 영향력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었다. 분명한 것은 해답을 주는 영화보다는 계속해서 극장 안의 관객들에게, 더 나아가 극장 밖의 대중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영화가 더 좋은 영화라는 것이다. 다소 무거운 질문과 메시지들을 항상 우리 주변에서 볼법한 사소한 일상 속 주인공들에게 불어넣어 전달하는 그의 예술성에 다시 한 번 감탄하게 되었다. 별개의 몇몇 작품들만 보다가 그의 모든 작품을 관통하는 태도와 신념을 알게 되니 그의 작품을 더 넓은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이러한 바람직한, 어떻게 생각하면 바보 같은 창작자들이 늘어나면 분명 사회는 여느 멜로영화만큼이나 아름답게 바뀔 것이다. 우리나라도 상업영화만큼이나 좋은 메시지와 작품성을 가지고 있는 독립영화의 상영관이 늘었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을 적으며 다시 한 번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에 대한 애정과 굳건한 신념에 찬사를 보내며 이만 글을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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