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에게 라디오는 찾아 듣기 보다 자연스럽게 내 주위에 있는 것에 가까웠다.
버스를 타고 가다 보면 이어폰을 통해 듣는 노래보다 라디오 속 사연에 집중한 적도 있고,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나오면 라이브를 듣는 재미도 쏠쏠했다.
내 기억 속 나의 첫 팝송은 태연과 티파니가 라디오에서 부른 because of you였다.
아니, 사람들이 라디오에 원하는 게 바로 그거라고 해야 할까? 익숙하고 편안할 것, 따뜻할 것, 그래도 있어줄 것.
그러고 보니 세상에 라디오 같은 사람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너무 큰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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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나자는 약속이 지켜지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다시 돌아가겠다고 약속했어도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그때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들'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그 따뜻한 시간들은 여전히 우리 기억 속 어딘가 머물며, 다른 곳에서 디제이가 아닌 다른 모습으로 만나더라도 우리에게는 따뜻하게 얘기를 건네던 디제이로 여전히 남아 있으니까.
소리와 영상을 통해 순식간에 주위를 사로잡는 티비와 달리 라디오는 오직 목소리를 통해서만(보이는 라디오도 있긴 하지만) 이야기를 전하고 마음을 전한다. 그래서 담백하지만 진솔한 매력을 가진 독특한 매체라고 느껴진다. 그리고 실시간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디제이와 청취자 간에, 비록 얼굴을 모르지만, 함께하는 시간들이 그들의 기억 속에 자리 잡는 사실도 참 낭만적인 것 같다. 무한한 기술의 발전으로 우리는 다양한 방법으로 타인을 만나고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목소리로 함께 하는 라디오가 사랑받는 이유는 익숙하면서도 편안해서,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서 함께 있어줄 것 같아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