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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으로부터,

[도서] 시선으로부터,

정세랑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처음에는 하와이에서 제사를 지내는 내용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과연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갈까?라는 궁금증과 정세랑 작가에 대한 기대감만으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책 속으로 빠져들었다.


시선으로부터 뻗어 나온 가지들이 다시 시선을 향해 모이는 여정을 담은 이야기. 시선의 10주기를 맞아 시선이 젊은 시절을 보낸 하와이로 떠난 시선의 가족들은 뻔한 제사상이 아니라 조금 특별한 제사상을 준비한다. 하와이에서 시간을 보내며 가장 의미 있는 음식, 물건, 혹은 경험을 올리기로 한다. 제사를 마치 게임처럼 경쟁하는 모습은 우리의 평소 인식과 전혀 다르지만 거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 또한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는 방법이기 때문에.


가족 모두 각자 시선과의 추억을 가지고 있다. 그에 맞는 시선의 글과 인물의 사연을 함께 풀어나가 지루함도 덜고 둘만의 추억을 공유 받는 기분이 든다.

시선으로부터,라는 제목을 보고 처음에는 눈과 눈이 마주치는 그 시선을 말하는 줄 알았다. 심시선이라 인물에게서부터 시작된 이야기임을 깨달은 건 조금 부끄럽게도 한참 읽고 나서였다. 시선으로부터, 이보다 더 책의 모든 것을 표현할 말이 있을까?


T에서의 학살을 피해 하와이로 도망치듯 떠난 시선은 열심히 일을 하고 잠깐의 휴식을 보내던 도중 마티아스를 만난다. 예술가라고 소개한 마티아스는 시선을 뮤즈라는 이름의 도구로 사용했다. 시선은 마티아스와 함께 독일로 떠나고 그곳에서도 여전히 자신을 도구로 이용하는 마티아스의 곁에서 살아나간다. 그리고 요제프 리의 도움을 받아 마티아스를 떠나기 직전, 마티아스는 자살한다.



어떤 자살은 가해였다. 아주 최종적인 형태의 가해였다. 그가 죽이고 싶었던 것은 그 자신이기도 했겠지만 그보다도 나의 행복, 나의 예술, 나의 사랑이었던 게 분명하다.



이 죽음을 통해 그동안 시선을 착취한 마티아스는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는 것을 견디지 못한 비운의 예술가가 된다. 그리고 시선을 향해 쏟아지는 무수한 말들을 피해 시선은 한국으로 돌아와 그리는 것을 그만둔다. 그 대신 글로써 마음을 표현한다. 절망의 바닥까지 쫓겨났던 시선은 다시 일어나 새로운 세상을 향해 걸어갔다. 그의 용기와 단단한 의지가 책 너머로 읽고 있는 나에게도 느껴졌다.



"심시선 여사 닮았으면 어떻게든 살아남겠지."

곁에서는 난정이 비행 시간이 다른 우윤을 안고 놓질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난정도 명혜의 말에 어느 정도 위안을 얻었다. 우윤이는 약해 보이지만 시선으로부터 뻗어나왔지. 지지 않고 꺾이지 않을 거야. 그걸로 충분할 거야.

*

우리는 추악한 시대를 살면서도 매일 아름다움을 발견해내던 그 사람을 닮았으니까. 엉망으로 실패하고 바닥까지 지쳐도 끝내는 계속해냈던 사람이 등을 밀어주었으니까. 세상을 뜬 지 십 년이 지나서도 세상을 놀라게 하는 사람의 조각이 우리 안에 있으니까.



우윤이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고 지수는 기름유출 사건을 도우기 위해 따로 떠난다. 명혜가 지수에게 하는 말과 난정이 우윤을 보며 하는 생각을 보며 '시선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꺾이지 않고 나아갈 것이란 믿음이 얼마나 단단한지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도 그 믿음과 용기가 전해졌다. 책을 읽는 내내 실패하고 바닥으로 내쳐졌지만, 끝끝내 다시 일어나 계속해냈던 사람의 힘이 내 안에도 생겨나는 것 같았다. 그 용기를 잊지 않고, 잃지 않고 끝까지 나아가서 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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