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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해설서

[도서]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해설서

정동호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누구든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지 않고는 다가갈 수 없는 것이 신이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자기 부인은 죽음을 의미한다. 이는 신이 존재하려면 인간이 죽어 인간이기를 거부해야 한다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누가 뭐라 하든 신은 죽었고 그와 함께 신을 신앙해온 인간도 모두 죽어 무덤에 들지 않았는가.

p.453

서양 근대문학 작품의 해제를 읽으면 니체를 자주 마주친다. 니체의 저서에 대해서는 익히 듣지만 그동안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해설서가 출판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혼자서는 공부하기 어려운 니체의 사상을 조금 더 수월하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사실 해설본이라는 말을 듣고 나는 이 책이 본문 - 해석 순으로 나열되어 있을 줄 알았다. 그도 그럴듯이 500쪽 전부가 해설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실제로 책을 읽어보니 500쪽 전부가 해설이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담긴 비유와 상징이 가진 의미를 설명하고, 니체가 말하고자 했던 철학을 부연설명 하는 것으로 내용이 구성되어 있다. 본 책의 저자는 니체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철학 강의를 하며, 니체에 대한 다양한 저서를 펴냈다. 저자의 이력을 보니 500페이지의 해설서가 괜히 나온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이 해설서는 한 사람의 연구 집약체인 것이다..

원작을 읽지 않았기에 해설본을 먼저 읽었을 때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란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원작의 내용을 시간순으로 따라가며 설명해주어 딱히 문제는 없었다. 물론 해설서를 먼저 읽으면 원작에 대해 본인만의 사고를 개진해나갈 수 없어서 아쉽다. 그래도 니체 사상은 처음 받아들이기엔 난해한 면이 있어서 해설서를 먼저 읽는 것이 나에겐 옳았다. 원작부터 읽었다면 내가 니체의 주장을 오독하지 않았는지 헷갈렸을 것이다.(나에겐 너무 급진적이고 반사회적으로 느껴지는 니체의 사상..)

내가 니체의 주장에 대해 동의하는 부분도 있고,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전체적인 감상을 말하자면, 니체의 이야기는 자유주의를 따르는 현대사회에 딱 맞는 사상 같다. 니체가 말하는 자기를 극복해나가는 사람은 최고를 추구하는 사람이지만, 그 과정에서 기존의 미덕은 무시한다. 니체는 사회적 규칙이라는 과거의 망령을 무시하고 본연의 모습을 찾는 것과,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그가 말하는 사랑은 약자를 돕는 게 아니라, 약자들에게 강자가 되고자 하는 욕망을 깨우치게 해주는 것이다)은 양립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니체가 말하는 강자는 이기주의자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가치관이 모두 다른만큼, 니체의 사상에 대해서도 개인마다 다양한 감상이 있을 것이다. 다음 독서모임 책으로 선정하면 재밌는 토론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등장하는 니체의 사상

니체의 사상을 요약하면 참된 인간이란 끊임없이 자신을 발전시켜 나가는 사람이고, 그는 본인의 내면에 있는 가능성을 일깨우기 위해 세상에 홀로 서야한다. 우리가 '우리 자신'이 되지 못하게 만드는 암묵적 규범들을 벗어던져 본인의 의지로 삶을 설계하는 사람이 되어야한다. <데미안>에서 헤세가 하는 이야기와 거의 비슷하다. <데미안>은 좋고 니체 사상은 나와 맞지 않다. 디테일은 상상에 맡겨두는 소설과 달리 해석본의 니체는 디테일하게 삶의 지침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호불호가 갈려버렸다.

우리의 사고와 행동이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사회규범에서 벗어나야 할 필요성은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 부정할 것인지가 문제다.. 내 경우, 어른들의 '이것이 되어라'라고 하는 기대, 또래집단에 평범하고 좋은 사람으로 속해 있어야 한다는 압박 등이 힘들었다. 그런 주변 시선을 의식해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추구하지 못한 채로 후회 많은 학창시절을 보냈다고 생각한다. 니체가 말하는 것처럼 순수하게 자기 의지로 인생을 즐기는 어린시절이었다면 좋았을텐데.. 그런 점에서 니체의 사상을 일부 긍정한다.

디테일한 부분은.. 동의할 수 없는 것이 너무 많다. 나는 니체의 언어가 인터넷 파시스트들과 겹쳐보인다. 공동체적 가치들을 버리고 힘(니체가 말하는 힘은 다른 것보다 다른 사람에게 영향받지 않고, 본인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권력을 의미하는 듯 하다)을 추구하라는데.... 오만한 생각 아닌가? 이 세상의 어떤 인간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단 말인가. 무인도에서 자급자족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다른 사람의 노고와 희생에 기대어 살 수 밖에 없다. 우리가 하고 싶은 건 대부분 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구조적으로 누군가는 착취당하고 있기 떄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는 단순노동의 가치가 저평가되어있는 덕에 외식, 청소대행, 택시 등에서 다른 나라보다 편리한 생활을 누리고 있다. 니체는 이렇게 누군가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상황을 뭐라고 생각할까? 아마도 그 사람들이 그 직업을 선택했고 더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본인이 선택한 결과라고 말할 것 같다. 왜 이렇게 오만할까... 사람의 성공은 능력으로만 결정될 수는 없는데, 니체는 그런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것 같다. 니체의 의도가 어떻든간에 그의 이야기는 불평등을 합리화하는 방향으로 해석된다.

인간이 추구해야 할 진정한 성장은 무엇일까?

뮤리엘 스파크의 "진 브로디 선생의 전성기"에는 스스로가 전성기에 있다고 말하는, 자기 확신에 가득찬 교사가 등장한다. 그녀는 자기 아래에 있는 어린 학생들을 좌지우지하는 데서 보람을 느낀다. 이렇게 자기 집단 안에서 권력을 누리던 브로디 선생은 제자의 폭로로 학교에서 잘리게 된다. 본인이 몰락했다는 브로디 선생을 바라보며, 소설의 화자는 '그런 브로디 선생이야말로 진정 내면적 성장을 겪는 아름다운 상태에 있다'고 말한다. 즉 브로디 선생이 전성기라고 느끼던 시절에 선생은 고여있는 상태였다. 힘을 잃은 뒤 본인의 과거를 돌아보고, 자아성찰을 하게 된 이후에야 인간적인 성장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이 소설은 파시스트를 브로디 선생에 대입하여, 인간이 추구해야 할 가치는 권력이 아니라 자아성찰을 통한 내적 성장임을 보여준다. (또 자아성찰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태가 파시즘의 근원임을 지적하기도 한다)

니체는 연민과 평등처럼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가치를 부정하고 끊임없이 강자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하라고 말한다. 니체의 위버멘쉬를 포용적으로 해석하면, 공동체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 또한 계속해서 남을 위해 노력한다면 위버멘쉬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니체 자신이, '강자가 버려야 할 낡은 가치'로 평등이나 연민을 예로 들었기에 변명의 여지가 없다. 자신을 초월해가는 인간이 고작 본인의 성공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자라니 눈물이 난다. 이기심은 아이의 유일한 악덕이다. 우리가 일생동안 살아가며 배워야 하는 것이 공감이고, 죽을 때까지 완성하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 이타심이다. 이기적으로 태어나서 이타적으로 죽는 것이 우리가 공동체에서 살면서 할 수 있는 진정한 성장 아닐까? 이런 관점에서 니체의 생각에 동의할 수 없다.

니체의 말대로 약자의 사고를 경멸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니체 또한 군중 안에서 홀로 서기는 어렵다고 말하며, '위버멘쉬를 추구하면서 뭇 사람과 함께하는 4가지 전략'을 이야기한다. (p290) 요약하면 세상의 배척을 받는 사람들이나, (니체는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세상의 의인들 모두 너그럽게 대하면서, 안락함을 추구하는 뭇 사람들처럼 행동하라는 이야기들이다. 마음속으론 경멸하더라도 참고 견디라는 소리인데.. 참 현실적이면서도, 이런식으로 겉과 속이 다르게 살면 정신건강에 좋지 않다. 세상을 살면서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도움을 받게 된다. 만약에 그 도움을 준 사람이 본인이 경멸하는 '안락함 추구자'였다면... 그는 본인이 경멸하는 사람에게 도움을 받은 것인데, 그런 자신의 모습이 비겁하다고 느껴지지 않을까? 아니면 약자이기 때문에 연민 같은 바보짓을 한다고 비웃을까? 세상을 그렇게 어둡게 살아가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자기모순의 끊임없는 번민에 고통받으며 결국엔 자기 정신을 파괴하게 된다.

추가하고 싶은 이야기는 더 많다. 난 니체의 목적지향적 삶의 방식이 인간을 오히려 수단화한다고 생각한다. 오로지 강자가 되기 위해 사는 삶은, 니체가 말한 것처럼 '본연의 모습'을 찾아가는 게 아니라 스스로를 기계로 만드는 짓이다. 우리가 산을 오르는 이유는 단지 정상에 도달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 산을 올라가면서 마주하는 경험 때문이다.

분명히 니체의 철학을 마음에 들어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니체가 말하는 것처럼 사고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었다. 말하는 내용에서 니체 철학의 삶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서 내 주변 사람들은 니체 철학을 접하고 어떤 생각을 할지, 참 궁금해지기도 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해설서>를 비판적으로 읽으며, 내가 추구하는 이타심의 필요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한 주제에 일생을 바친 연구자의 저작물을 읽을 때는 항상 감사한 마음이 든다. 니체의 철학을 입문하기 위해 읽어보면 좋을 책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직접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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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m0415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를 도저히 읽기어려워서 해설서에 관심이 가는데요. 제가 아는한 심리학자들이 측은지심도 권력욕에 일종이고 우월감이라고 말 합니다. 이타주의도 자기속임에 일종일수 있다네요 .그 예로 참전용사가 자기희생일수 있지만, 다르게 해석될수도 있잖아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니체는 그 이상의 자기를 웨버멘쉬라 하지않았나 생각합니다. 니체가 말하는것은 힘있는 기존사회의 윤리 도덕에 시각적 위선 아닐까요?

    2021.10.17 20:02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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