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블로그 전체검색
헤이트(Hate)

[도서] 헤이트(Hate)

최인철,홍성수,김민정,이은주,최호근,이희수,한건수,박승찬,전진성 공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전쟁에서 어떤 집단을 학살했을 때 그 학살에 가담했던 집단은 더 행복해졌느냐? 대부분 그렇지 않거든요. 학살이 학살을 낳고, 혐오가 혐오를 낳고 그래서 모두를 정말 나락으로 빠뜨립니다. (…) 어떤 집단에게 자꾸 책임을 묻고 책임을 전가하고 희생양으로 만드는 것이 문제 해결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거든요. (…) 한국 사회에서 어떤 분들은 이주자에게 재난지원금을 주는 것 등을 반대하시는데 그런 반대는 윤리적으로도 나쁘지만, 우리 공동체를 더 안전하게 만들 방법을 찾는 합리적인 이기주의 측면에서도 타당하지 않습니다.

p.302

요즘 인터넷 기사 댓글을 보면 도를 넘은 비난과 편견이 가득하다. 그런데 이 온라인상의 혐오가 현실세계에서까지 공공연연하게 이어지고 있다. 미성년자들을 위한 놀이공간이 부족한 우리나라 특성상 학생들이 인터넷 문화에 더 쉽게 빠져들고, 이 때문에 어린 나이에도 편가르기에 심취해 혐오를 놀이문화처럼 여기고 있다. 그러면 사회지도자들이라도 건강한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포퓰리즘에 빠져 오히려 선두에서 혐오를 조장하고 있다. 당장 5년 뒤 우리나라 모습이 어떠할지 걱정된다. 혐오가 만연한 사회에 지친 와중에 이 책의 홍보글을 보았다. 마침 내 관심사와 일치해 즐거운 마음으로 읽었다.

이 책은 T&C 재단에서 주관했던 '혐오' 컨퍼런스 참여 교수들의 글과, 토론회 내용을 담고 있다. 내용상 세 개의 소주제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혐오의 원인' '역사 속의 혐오(이슬람포비아, 인종주의, 유대인혐오, 마녀사냥 등)' 그리고 '혐오의 확산을 막기 위한 방법'이다.

먼저 혐오의 원인에 대해 이 책의 대부분의 연사들이 말하는 것이 '그릇된 공감'이다. 내집단에 너무 깊게 공감하다보니 외집단에 대한 배척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두번째로 자기존재에 대한 부정이다. p.285에서 이희수 교수는 2011년 노르웨이 테러범과 미국-이란 대치상황의 동기를 예로 든다. 외부로부터 느낀 모욕이 심한 충격을 주어 극심한 혐오로 나타날 수 있다고 한다. 이 주장은 혐오가 혐오를 낳는 악순환을 설명해준다. 마지막으로 사회경제적인 충격이 혐오 확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 홍성수 교수는 단기에 해결되기 어려운 국가적 재난에 대한 손쉬운 해법으로 혐오가 일어난다고 한다. 현재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눈가림'으로 특정 집단을 지목하고 탓함으로써 혐오가 확산된다는 것이다. p.120부터 p.271에서 설명되는 혐오의 역사는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예시들이다. 재난상황에서 혐오가 쉽게 확산된다는 의견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에 혐오가 급속도로 확산되는 것도 부의 양극화가 심해지고 코로나라는 재난상황에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혐오의 역사를 알면 혐오의 원인, 진행과정 그리고 혐오의 종착역과 치유과정을 알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이슬람 포비아, 인종주의, 유대인 혐오, 마녀사냥이 어떤 배경에서 시작되었는지 설명함으로써 혐오의 확산은 국가적인 이해관계와 결합해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국가적인 위협에 대한 내부 결속 뿐 아니라, 지배국가가 식민하기 위한 합리화 수단으로 혐오가 사용되었다. 역사적으로 극렬했던 혐오의 종착역은 대개 전쟁이나 제노사이드이다. 혐오가 종착역에 달하면 좋은 방향이든 미숙한 방향이든 치유과정을 지난다. 그러나 어떤 역사적 혐오는 계속해서 이어지기도 한다. 이희수 교수는 세계사가 식민지 지배국들의 논리로 쓰여져있다고 지적한다. 때문에 그들이 지배과정에서 퍼뜨렸던 피지배국 집단에 대한 차별이 계속해서 학습되고 있다.(p.174) 이 교수는 그 예로 우리나라의 이슬람 혐오를 든다. 우리나라는 단 한번도 이슬람 국가와 불편한 관계를 가진 적이 없으나, 이슬람 세계를 억압했던 서양 지배국들의 관점에서 역사를 배웠기에 이슬람문화에 대한 차별적 시각을 가지고 있다.

이제 마지막 주제로 넘어가면 '혐오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은 김민정 교수의 인터넷 혐오에 맞서는 방법이었다. 김민정 교수는 온라인 혐오가 쉽게 전염되는 현상에 대한 심리학적 근거와, 혐오자들의 선동에 대응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p.80에는 '집단 극화 현상'이 소개된다.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교류하면 더 극단적인 견해를 갖게 되는 현상을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인터넷의 경우 비슷한 생각을 가진 커뮤니티와 선택적으로 교류할 수 있어 유저에게 극단적인 생각을 가지게 한다. 또 증오 발언을 온라인 상에서 접하면 뇌에서 그와 연결된 인지 요소들이 활성화된다고 한다(p.96) 심리학에서 '일반 공격 모형'이라고 부르는 이론에 따르면, 이렇게 활성화된 부정적 감정이 이후 다른 상황에도 공격적인 반응을 할 가능성을 높인다고 한다. 이렇게 온라인 증오발언의 악순환이 이어지게 된다.

김민정 교수는 '내 생각이 잘못될 수 있음을 인정하는 태도'가 혐오 확산 방지에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 내용은 크게 감명깊지는 않았다. 공저하신 다른 교수들도 개인적 측면에서 태도 변화를 이야기하신 분들이나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었는데, 나는 이게 지당한 말씀이지만 현실적인 해결은 아니라고 봤다. 지각있는 사람들의 각성으로 이 광기가 해결되진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김민정 교수는 개인적 차원에서 혐오 확산을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한다. 그는 인터넷 뉴스 댓글이 해당 기사를 읽는 유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는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인지능력에 상관없이 사람들은 댓글 내용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다만, 혐오를 조장하는 댓글과 그 댓글에 반박하는 대댓글을 함께 보여준 경우에는, 사람들은 혐오 댓글을 전혀 보지 않은 것과 동일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p.113) 이것은 혐오에 맞서는 개인의 용기있는 발언이 실제로 혐오의 확산을 막는 데 기여할 수 있다.

토론회 내용에서 또 다른 교수는 인정하는 태도와 다른 집단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공통점을 찾기(공감)을 들어주었다. 그리고 매체의 힘을 강조하며 소수자 집단에 대한 책과 영화를 추천해주었다. 나와 다른 집단에서 인류 보편적인 공통점을 찾고 연민의 감정을 갖기. 이 방법에 대해 생각해볼때 갑자기 새로운 의문이 들었다. 나와 또래들을 생각해보면, 소수자에 대한 연민 자체를 혐오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인터넷에서 자주 쓰이는 말로 '감성팔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건 감성적으로 본인을 설득하는 방식에 대해 깊은 혐오감이 있는 것이다. 공동체 안에서는 감성이 없으면 살아가지 못하는데, 왜 사람들은 논리만 중시하고 감성을 혐오하게 되었을까? 그 이유가 우리나라의 교육방법이나 미디어의 영향이 없는지 생각해본다. 개인적인 추측은 미디어에서 '멋진 악당'이 등장하고 사람들이 그런 악당을 선망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또 승자독식주의로 가는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모든 이가 강자를 동경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약자에 대한 차별 개선을 이야기할 때 감성적인 접근 방법을 사용할 수 밖에 없는데, 약자를 옹호하는 것이 불만인 사람들이 감성적 접근 자체를 혐오하게 되었을 수 있다. 공감이 가장 필요한 시대에 감성의 가치가 폄하되고 있어 아쉽다. 어디서부터 풀어야할지 어려운 문제 같다.

무엇보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혐오를 공공연연히 드러내는 것을 방지하는 제도적 장치일 것이다. 윤리적 측면에서 사회를 바꿔나갈 때 나는 법이 인식을 형성한다는 입장이다. 이 책의 토론회 내용에서 박승찬 교수 또한 법적 장치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마녀사냥이 종식된 과정을 예로 든다.(p.374) 우리는 마녀사냥이 중세에 시작해 이성이 싹튼 근대사회에 끝났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마녀사냥을 방지하는 사법적인 제도가 나온 뒤에 마녀사냥이 끝나게 되었다.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신중해야 할 일이지만, 혐오가 확산된다는 성질을 생각해볼 때 최소한의 처벌규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표현의 자유를 주장한 존 스튜어트 밀도 표현의 자유가 사회 전체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그것이 필요하다고 한 것이지, 공동체를 파괴하는 요즈음의 혐오발언을 보면 법적 제한이 절실해보인다.

선한 마음이 아니더라도, 이기주의가 합리적으로 작동하기만 해도 혐오로부터 오는 비극을 막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혐오를 해서 손해를 보는 것은 자기 자신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불만을 다른 집단에게 전가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만약 그 혐오 대상이 절멸 상황에 왔다고 하면 그 다음 혐오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은 자기자신이다. 혐오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본인이 정신 뿐만 아니라 행동거지도 비합리적임을 알아야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혐오를 멀리해야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혐오하는 사람은 건강한 마음을 가질 수 없다. 오늘날에 혐오 당하지 않는 집단이 없다. 그런데 마음 속에서 혐오를 정당화하고 살면 본인이 혐오를 당했을 때 대항할 정신이 없다. 스스로 혐오를 정당화하고 있기 때문에 타인의 혐오를 극복하는 방법을 찾지 못하고 쉽게 패배주의에 빠지게 된다. 다소 꼰대(?)스러운 발언일 수 있으니, 나는 오늘날 젊은 세대에 패배주의가 만연한 이유는 SNS 때문도 있지만 온라인 혐오 문화도 거들었다고 생각한다. 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스스로 정당화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집단과 비교해서는 약자일 수 있는 자기의 포지션에 대항할 힘 없이 무너지는 것이다. 혐오를 놀이처럼 일삼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많아진 한국이 어떤 모습일지 나는 알 수 없다. 한국에서 혐오의 종착역은 어디일지, 혐오가 사라질 수는 있을지 모르겠다. 다만 나 자신의 인생을 위해서 혐오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확신할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사회에 만연한 혐오에 대해 개인적 차원에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혐오의 근원을 파헤치고 내가 가져야할 태도를 정립함으로써 추상적인 걱정을 덜었다. 다른 분들께도 추천한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직접 읽고 쓴 글입니다)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0

댓글쓰기
첫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