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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막걸리를 마신다면

[도서] 너와 막걸리를 마신다면

설재인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여행하던 곳의 날씨는 일기예보와 거의 맞지 않았다. 대충 ‘우기’니까 비가 오면 오는구나 했고, 빨리 멈추기 만을 기다렸다. 친구에게 추천받아 사둔 책을 펼친 건 마침 막걸리가 먹고 싶게 촉촉히 비오던 중 들어간 카페였다. 이곳에 와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으로 꼽은 곳이라 떠나기 전 한번 더 방문했던 차였다. 아쉽게도 막걸리를 곁들여 마시며 읽을 수는 없었지만 빗소리를 들으며 매실음료 같은 것을 호록 마셨다.

경사님 제 전완근 한 번 눌러보실래요?

주영은 엄마와 등산에 다녀와 막걸리를 마시던 중 다른 세계로 넘어간다. 그 세계에는 동명의 남성이 있었고, 이전 세계에서 내 가족이라 여기던 이들을 비롯해 모든 인연들이 자신을 전혀 다른 사람으로 인지했다. 영문을 모르고 넘기다 동명의 남성이 말마따나 개차반처럼 사는걸 목격했다. 물론,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이런 오지랖을 부리나 싶을 테지만 이로 인해 자신의 엄마가 속상해하는 걸 참지 못한 것이다. 

최수종 하희라 부부라느니 하면서 가식을 떠는 자신의 부모, 하지만 서로의 실상을 다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사람들을 보며 주영은 마음이 복잡해진다. 이전 세계에서도 엄마는 내 치부를 알고도 침묵한 적이 있었을까? 내가 잘못한 걸 바로 잡으려 하지 않고 저 모르는 이웃처럼 넘어간 적이 있었을까? 하는 물음표가 솟아날 무렵 스물한 살의 연재가 등장한다. 이 밝고 싱그러운 친구를 구렁텅이에 빠지게 해서는 안 된다는 일념 하에 믿고 함께 할 인물을 모은다. 사실, 주영이 가장 믿고 있는 건 자신의 전완근이 분명하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그는 전완근으로 대부분 인물을 사로잡는데 성공하니까.

나는 너를 믿어. 착한 척, 정의로운 척하는 사람들보다 더.

서로의 형편을 잘 알기에 자유롭고 안전하다고 생각한 곳은 이상하게 점점 숨통을 조여갔다. 가까이 사는 그 누구와 다른 선택을 할 때마다 그랬다. 그러다 어쩌다 떠나보니 모두가 날 잘 아는 것보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노바디로 사는 것이 편했다. 익숙한 곳에 사는 것보다 낯선 곳에 적응하는 것부터 쉽지 않지만 그래도 그게 나았다. 내가 드나드는 모습이 보이면 왜 그럴까, 궁금해하며 그걸 소리내어 말하고 그걸 내 귀에 들리게 하는 곳에 정이 떨어진다. 

책 속 인물과는 다르게 당장 어딘가로 훌쩍 떠나는 일은 어렵다. 당분간 다시는 살고 싶지 않다고 정의내린 곳에 또 가야만 한다면, 머물러야 한다면 낯선 곳을 살아냈던 것처럼 애써 살 수 밖에 없다. 어쩔 수 없지. 지금 내게 필요한 곳이고 아주 조금은 다른 세상을 알게된 나를 믿는다. 자꾸만 날 불쌍히 여기는 사람들보다, 대책은 없지만 돈과 가까운 미래를 자꾸만 그려보려는 나를 믿어.

씨발 나를 개농장에 가뒀다? 저는, 들개가 될 거예요.

 

주영이 구해주려한 연재, 그리고 연재의 친구인 다정. 그런데 이들은 주영이 생각한 것보다 강했다. 죽을 수 있던 상황에 놓여있었음에도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 이들을 보며 일상을 이어가지 못할 피해자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단정지었던 주영과 나. 어디든 박차고 나아갈 준비를 이미 한 그들을 보며 너무 부러웠다. 무엇보다 센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다정이 실제인물이 아니라는 점이 아쉬웠다. 그런데 그렇게 아쉬워하고 넘겨야 할까? 내가 그런 들개가 되면 덜 아쉬울 것 같다. 방법은 모르겠지만 지금껏 보고 느낀 것, 그리고 앞으로 경험할 것들을 잘 섞어내면 내가 되겠지. 

그나저나 이 문장 지금 꼽아보는 내 올해의 문장 같아 설렌다. 이런 말을 직접 하지 않는 세상이 되면 더욱 좋겠지만 지금 그런 세상인걸 어쩔 수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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