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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사소하고 일상적인 결정이라고 생각하지만, 훗날 그 순간이 인생의 분기점임을 나중에서야 깨달을 때가 있다. 결정을 되돌리기에는 너무 멀리 와 버린 탓에 그 날의 '자신'의 결정이 운명적이고, 필연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뒤늦은 후회는 시간을 되돌리지 못하니 우리는 그저 그게 옳은 결정이었겠거니하고 살아간다.

 

하지만 '나'에게 내 운명을 결정할 권리가 없는 이들은 사소하고 일상적인 결정에서 - 하물며 스스로 자신의 인생이 뒤바뀔 결정임을 아는 상황 속에서도 - 한없이 무기력해진다. 목소리를 잃고 다른 이에게 인생을 맡긴다. 그건 그들이 무능력하고 삶에 무기력해서가 아니다. 아무도 그들의 목소리가 스스로의 인생을 뒤바꿀 수 있음을 이야기해주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어쩌면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바꿀 수 없는 태생적인 특징과 삶 속에서 '운명'이 결정되며 사회는 결코 변종을 허락하지 않는다.

 

?바바, 피가 나왔어요.? 그녀가 붉게 물든 야자수 잎을 보여주며 말했다.

바바가 손으로 그녀의 입을 가렸다. ?나 말고 아는 사람 있니??

?없어요.? 에피아가 대답했다.

?계속 이대로 있는 거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어? 누가 너한테 이제 여자가 됐는지 물으면 아니라고 대답해.?

에피아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자리를 뜨려고 돌아섰지만 가슴속에서 뜨거운 석탄처럼 의문이 타올랐다. ?왜요??

이윽고 에피아가 물었다.

바바가 에피아의 입에 손을 넣어 혀를 꺼내 날카로운 손톱으로 혀끝을 꼬집었다. ?네가 뭔데 감히 나한테 질문을 해, 응? 시키는 대로 안 하면 다시는 말을 못 하게 만들 거야.? 그녀는 에피아의 혀를 놓아주었고, 그날 밤새 에피아는 입속의 피 맛을 느꼈다.

 

 

 

인종이 다양하지 못한 국가에 살았기 때문에 나는 내가 <밤불의 딸들>이 이야기하는 '미국에서 사는 흑인'의 고통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느꼈다. 그러나 책은 역사와 사회의 격동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을 통해 저주받은 가족사를 보여준다. 고통은 끊이지 않고 그 다음 세대, 다음 세대로 이어지며 독자에게 그들의 세계를 이해시킨다. 주인공이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해지거나 행복해지지 못하더라도 관객이 수긍할 수 있는 결말을 제시하는 영화와는 다르다. 방대한 이야기 속에서 계속해서 또 다른 누군가는 불행해지고, 잘못된 선택을 하고 고통받는다. 삶은 더 처절해지고 반복되는 운명의 굴레는 인물들의 삶이 선택으로 이루어지지 못한 잔혹한 필연임을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은 무엇인지 질문해볼 수 있다. 우리의 삶은 우연인가 필연인가? 선택으로만 이루어진 삶이었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강요당할 수밖에 없는 다른 이들을 위해서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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