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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 왕

[도서] 오이디푸스 왕

소포클레스 저/강대진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5월 고전독서회 모임에서는 제가 추천한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을 읽었습니다.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탓에 관심이 많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리스 비극의 본질을 분석한 철학자들은 많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나는 일반적인 의미의 시 창작 기술, 시의 여러 종류, 그들 각각의 본질적 기능들을 논의하고, 시 창작에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플롯 구성의 방법을 설명하고, 시를 이루는 부분들의 수와 성질을 가려내고, 기타 이 연구에 관련된 여러 문제를 취급하려고 한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술 활동 전반이 인간의 모방 본능에 뿌리박고 있다는 모방설로 설명합니다. 비극은 플롯, 성격, 언어표현, 사고력, 시각적 장치 그리고 노래 등, 여섯 가지의 요소로 구성되는데, 플롯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하였습니다. 

 

니체는 <비극의 탄생>에서 “그리스 비극이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전자는 중용, 제약, 조화를, 후자는 거침없는 정열을 표현함)의 결합에서 나왔으며, 소크라테스의 합리주의와 낙관주의가 그리스 비극을 죽였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니체는 그리스 비극을 극적 요소와 음악적 요소로 구분하여 의미를 새기는데, 그리스 비극의 근원과 본질은 서로 얽혀 있는 두 개의 예술 충동, 즉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이라는 이중성 자체에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아폴론적 예술로서의 조형예술과 디오니소스적 예술로서의 음악이 대립하고 있다는 해석에서 음악의 정신에서만 비극이 탄생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칼 야스퍼스는 <비극론>에서 종교, 예술, 문학 등 근원적 직관에 대하여 논하였습니다. 그는 “그리스도교적 구원은 비극적 지식에 대립된다. 독자적인 구원 가능성이 벗어날 길 없는 비극성을 소멸시킨다.”고 하여, 그리스도교적인 비극은 존재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한편 비극적인 것의 근본적인 성격을 보면, 존재는 ‘좌절’ 속에서 드러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존재가 좌절 속에서 상실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하고 결정적으로 감지된다는 것입니다. 즉 ‘초월 없는 비극’은 없다고 합니다. 문학작품에 나타나는 비극적인 것의 의미는 결코 한 가지 공식으로 나타낼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오이디푸스 신화에 대한 저의 고민은 왜 아버지가 저지른 잘못에 대한 신의 벌이 아들에게까지 이어지는가 하는 것입니다. 전제정이 시행되던 과거에는 법질서를 세우기 위하여 죄를 저지른 자는 물론 그 죄를 알면서도 고하지 않은 자까지 책임을 묻거나 죄를 저지른 자의 가족까지 처벌하였습니다. 특히 동양에서는 모반을 획책하다 발각되는 경우에는 삼족, 나아가 구족을 멸하였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연대책임을 묻기보다는 처벌받은 자의 가족이 복수를 꾀하려는 것을 원천차단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소포클레스는 아이스킬로스, 에우리피데스와 함께 고대 그리스의 3대 비극 시인으로 꼽히며 그리스 비극예술의 완성자로 평가됩니다. 극, 송가, 비가, 잠언 등 123편의 작품을 썼다고 전하나 지금은 <트라키스 여인들>, <아이아스>, <안티고네>, <오이디푸스 왕>, <엘렉트라>, <필록테테스>,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등 7편만 전해옵니다.

 

테바이를 무대로 하는 <오이디푸스 왕>,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안티고네> 등 ‘소포클레스가 지은 테바이의 세 연극’을 그리스 비극의 명작으로 꼽습니다. 이야기가 전개되는 시간에 따르면 <안티고네>가 가장 늦은 시기이나, 소포클레스는 <안티고네>를 제일 먼저 썼다고 합니다. 

 

세 작품을 읽다보면 많은 의문이 생기게 됩니다. 독서모임이 제한된 시간에 진행되기 때문에 많은 의문 가운데 네 가지를 우선 골라보았습니다.

 

1. 만화 <올림포스 연대기>를 보면 그리스의 신들은 인간들이 느끼는 희노애락의 감정을 모두 가졌으면서 책임감은 별로 없다고 적었습니다. 그리스 사람들에게 신은 어떤 존재였을까요?

고전독서회에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를 읽으면서 그리스의 신들에 대하여 생각해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시각에 따라서는 그리스 신들은 근본적으로 윤리의식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카오스로부터 만들어진 신들이다 보니 무성생식은 기본이고, 근친상간을 피할 도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무수한 신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신들끼리, 심지어는 신들이 인간을 창조한 다음에는 인간들과도 관계를 맺습니다. 특히 주신인 제우스의 애정행각은 주신답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유재원의 그리스신화I>에는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그리스인들은 혈통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부족들마다 자신들의 혈통을 주신인 제우스와 관련시키고 싶어 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전설이 만들어졌다. 그 결과 제우스는 역사상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천하의 난봉꾼이 되어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난잡한 여자관계를 갖게 되었다.”

 

사실 신화나 전설이 사람들의 상상을 통하여 만들어지기도 합니다만, 영웅을 신으로 추앙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서도 인간이 신으로 승격되기도 하였고, 로마의 황제를 사후에 신으로 숭배되기도 했습니다.

 

2. 테바이의 왕 라이오스, 왕비 이오카스테, 그리고 오이디푸스는 왜 신탁을 피하는 길을 선택하지 않았을까요? 예를 들면 오이디푸스를 임신한 일, 오이디푸스를 내다버린 일, 오이디푸스가 결혼을 한 일 등.

라이오스는 동성애자였다고 합니다. 남아를 낳으면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예언자의 말이 있었던 까닭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라이오스로서는 동성애를 택한 것이 신탁을 피하는 길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오카스테는 생각이 달랐던 것 같습니다. 후사가 없으면 라이오스 사후에 자신의 처지가 곤궁할 것으로 생각했거나, 라이오스가 동성을 쫓는 바람에 피할 수 없는 독수공방에 지쳤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리스 신화에서 왕비를 비롯한 귀족 여성이 외도를 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오카스테는 라이오스에게 술을 먹여 동침을 하는 쪽을 택했습니다. 딸을 낳으면 신탁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는 도박을 한 것 같습니다.

 

막상 아이를 낳고 보니 남아였습니다. 신탁이 두려운 라이오스가 오이디푸스를 죽이려 할 때 이오카스테도 이를 반대하지 않은 것은 신탁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자식이라고 해서 오이디푸스를 직접 죽이지 못하고 시종을 시킨 것인데, 아이의 죽음을 확인하지 않은 것은 윤리적 갈등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오이디푸스를 죽이지 않고 내다버린 것은 어쩌면 이오카스테의 선택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라이오스가 젊은이에게 죽음을 당했다는 소식을 전한 시종을 궁에서 내보낸 것도 이오카스테였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라이오스가 죽은 뒤에 오이디푸스와 결혼을 했을 때도 신탁을 염두에 두었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라이오스가 오이디푸스와 부딪혀 죽음을 맞았을 때 현장에 있었던 시종이 테바이로 돌아와 왕의 죽음을 보고하고는 궁궐을 떠난 것에 이오카스테가 간여된 것을 아니었을까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이디푸스 역시 부왕을 시해하고 모후와 결혼하게 될 운명이라는 신탁을 받았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결혼을 피해야 했던 것 아닐까요? 그리고 보면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신탁을 두려워했으면서도 신탁을 피하려는 구체적인 노력을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신이 정한 운명은 인간이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받아들였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과거 우리나라에서 새해에 토정비결을 보는 것은 비결을 믿었다기보다는 비결에 따라 연간 조심해야 할 것들을 마음에 새기려 함이었던 것과는 비교가 된다 하겠습니다.

 

3. 오이디푸스는 테바이를 휩쓴 역질에 대한 대책을 세우기보다 신탁을 구한 이유는? 그리고 신탁을 구하기 위하여 델포이에 직접 찾지 않은 이유는?

인간이 가진 유전물질의 8%는 바이러스로부터 들어온 것이라고 합니다. 미생물에 의한 감염은 어쩌면 인류가 출현하기 이전부터 문제가 되었을 것입니다. 역질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비방을 찾아내기 위한 인류의 노력도 같이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현대의학의 뿌리가 그리스의학에 닿고 있는 것을 보면 고대 그리스에서도 역질을 다스리는 비방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이디푸스가 역질로 고통 받는 백성을 구하기 위한 구체적인 조치를 취했다는 정황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대신 오이디푸스는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에 신탁을 구하는 조치를 취합니다. 그런데 본인이 직접 신탁을 구하러 가지 않은 것도 묘합니다. 라이오스의 경우는 아폴론의 신탁을 구하기 위하여 델포이로 가던 길에 오이디푸스와 조우하여 비명횡사를 하였습니다. 라이오스가 델포이로 향한 이유는 자신의 운명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오이디푸스가 라이오스와 조우한 다음에 스핑크스를 만나는 것으로 보아 스핑크스로 인하여 무고한 생명이 죽어가는 것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하여가 아니었을까요?

 

샐리 비커스의 장편소설 <세 길이 만나는 곳>을 보면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을 찾는 이가 예물과 함께 신탁을 사제에게 주면, 사제가 피티아에게 전하여 아폴론의 신탁을 받아낸다고 합니다. 피티아가 쥐고 있는 올리브 나무 가지가 떨리면 신이 내렸다고 믿었다고 합니다. 피티아의 신탁을 사제가 해석하여 신탁을 구한 이에게 전했다고 합니다. 신탁이 왜곡될 여지가 전혀 없다고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오이디푸스 왕은 처남 클레온이 예언자와 결탁하여 아폴론의 신탁을 왜곡한 것 아니냐고 윽박지르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렇게 믿을 수 없었다면 본인이 직접 델포이를 찾았어야 할 노릇입니다. <세 길이 만나는 곳>에서는 델포이를 찾은 오이디푸스가 피티아와 갈등을 빚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이런 설정은 비극의 극적 효과를 내기 위한 소포클레스의 장치라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4. 오이디푸스 신화에서 착안했다는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타당하다고 생각하십니까?

프로이트가 제안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남아와 여아에 같이 적용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남아의 경우는 어머니를 이성으로 인식하므로 사랑의 대상이고 아버지와 같은 위치를 차지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들의 도전을 거세라는 징벌을 통하여 제압하려 합니다. 결국 아이는 현실과 타협을 하여 스스로를 지키는 선택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아의 경우는 처음에는 어머니가 사랑의 대상이었지만, 남아의 성기가 없는 것에 대하여 콤플렉스를 가지게 되고 결과적으로 어머니에게 분노의 화살이 향하게 됩니다. 결국 남아의 성기가 없는 대신에 질을 통하여 리비도를 채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애정의 대상이 어머니로부터 아버지로 바뀌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오이디푸스 신화를 보면 오이디푸스는 태어난 직후에 발이 꿰어진 채로 버려졌다가 아들이 없던 코린토스의 왕 폴뤼보스에게 입양되었습니다. 즉 오이디푸스가 이오카스테를 차지하기 위하여 라이오스와 경합을 벌일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오히려 폴뤼보스와 혈연관계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델포이를 찾아 신탁을 구했더니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것이라는 신탁을 받자, 코린토스로 돌아가지 않고 테바이로 향했다는 것입니다. 오이디푸스는 신탁을 피하는 선택을 했던 것입니다. 프로이트는 가상하다할 오이디푸스를 빌어 부정적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병명을 창안한 것입니다. 그리스 신화를 보면 가이아가 우라노스와 결합하여 낳은 아이들 가운데 크로노스가 아버지 우라노스의 권세를 찬탈하고, 누이 레아와 결합한 크로노스는 레아가 낳은 아이들을 모조리 삼키다가 레아가 막내아들 제우스를 빼돌려 결국은 크로노스를 제압하게 됩니다. 프로이트는 오이디푸스보다는 클로노스나 제우스를 빌어 콤플렉스라는 병명을 지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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