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61> 4개월 3주... 그리고 2일 - 불법낙태, 목숨을 거는 일
루마니아 출신 크리스티앙 문쥬 감독의 2007년작 <4개월, 3주...2일>을 DVD로 보게 되었다. 예스24의 블로그친구 파란토끼13호님의 이벤트를 통해서 받게 된 작품인데, 받은 다음 책상 한켠에 오랫동안 묵혀둔 이유는 지금도 분명치 않다. 2007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이 작품은 차우셰스쿠 독재정권이 낙태를 금지하던 1987년 임신한 여대생이 룸메이트의 도움을 받아 불법으로 낙태시술을 받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차우셰스쿠는 강한 나라가 되려면 인구가 많아야 된다는 확신을 가지고 1966년 낙태를 국가안전을 해치는 범죄로 규정하고 시술을 한 의사를 사형에 처하는 등의 강력한 통제정책을 펴 출산율은 두 배로 늘었지만, 많은 사회적 문제를 일으켰다. 예를 들면 불법으로 낙태를 받다 사망한 임신부가 50만명에 달하였다거나 버려지는 아이들이 늘게 되었다거나 하는 실질적인 문제뿐 아니라 이렇게 태어난 아이들에게 제공되는 교육 및 취업 등 각종 사회안전망이 충분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비참한 삶을 살아야만 했던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토록 무리한 정책을 강제하던 차우셰스쿠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것이 바로 이렇게 태어난 사람들이었다는 점이다.
이렇듯 삼엄한 상황에서도 원치 않는 임신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도 현실이었을 것이다. 영화 <4개월, 3주...2일>은 바로 이런 상황을 그린 영화이다. 영화는 임신을 하게 된 여대생 가비타(로라 바실리우 扮)가 불법낙태를 받으려는 상황에서 시작된다. 룸메이트 오틸리아(아나마리아 마린차扮)의 도움을 받아 수술에 필요한 비용 3000레이를 조달하고 시내 호텔을 빌리고, 시술을 해주는 사람과 접촉을 하는데, 막상 확인하는 일은 오틸리아에게 미룬다. 매사가 똑떨어져 보이는 오틸리아와는 달리 가비타는 매사가 흐리멍텅하다. 그렇기에 피임을 제대로 할 생각을 하지 않았겠지만 말이다. 영화에서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친절을 베풀지는 않았다. 뿐만 아니라 우여곡절 끝에 호텔을 빌리고 시술을 맡은 베베(블라드 이바노브扮)와 접선하여 호텔까지 데리고 왔는데, 2개월이라고 했던 임신기간이 사실은 영화제목이기도 한 4개월, 3주 하고도 2일이나 된 것이었다. 임신 2월이 지난 낙태시술은 특히 위험하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베베는 시술의 위험을 고려한 대가를 요구하게 된 것인데, 그 요구가 무엇이었는지 자막으로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대본에도 없었던 것 아닌가 싶다. 결국은 스토리의 흐름으로 감을 잡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베베의 요구는 가비타나 오틸리아 모두에게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을 터인데도 그 점에 대한 고민은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우리나라의 경우 인공유산이라고도 하는 낙태는 모자보건법시행령 제15조에 따라 임신한 날부터 24주 이내에 한하여 할 수 있다고 되어 있는데, 이는 태아가 생존능력을 갖추는 시기를 기준으로 정한 것이다. 역시 모자보건법에서 허용하는 인공유산은 부모에 유전적 장애가 있거나, 임신부가 전염성질환을 앓고 있어 태아의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경우, 그리고 준강간 등과 같은 사건과 관련하여 원치 않는 임신을 한 경우, 그리고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간의 관계에서 임신이 되었을 경우로 제한하고 있다.
낙태시술은 임신기간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임신초기에는 소파술을 시행하게 되는데, 이때는 수술과정에서 자궁이 뚫리는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임신기간이 오래되면 자궁경부를 인공적으로 열어 정상분만과 같은 출산과정을 밟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가비타가 임신 2개월됐다고 했는데도 베베가 호텔로 준비해온 낙태장비는 정상분만을 일으키는 장비였던 것이다. 시술을 하는 장면도 전문가의 눈으로 보면 어설프기 그지없다. 자궁경부는 라미나리아라고 하는 재료를 시간경과에 따라서 여러 차례 추가해야 열리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런 절차가 생략되고 자궁 안에 주사액을 주입하고 있다. 자궁에 소독되지 않은 이물질을 집어넣어 낙태를 유발시키게 되면 틀림없이 자궁내염증이 생기고 이런 경우 항생제 몇 알로 해결될 수 없어 결국은 생명을 잃게 되는 불상사가 생기게 되는 것인데 베베가 하는 짓은 꼭 낙태 후에 염증이 생길 수밖에 없는 위태롭기 짝이 없던 것이다. 일부러 불법낙태가 안고 있는 위생학적 문제점을 드러내려는 감독의 생각이었을까?
호텔에 체크인을 할 때 분위기로 보아서는 호텔근무자들이 투숙객의 동태를 확인할 것 같은 분위기였는데 별다른 상황이 발생하지 않고 낙태는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4개월 된 태아는 12cm 정도의 크기되는데, 영화에서는 그보다는 작았던 것 같다. 어땠건 분만된 태아를 처리하는 것도 문제인데 이것도 오틸리아의 몫일 수밖에 없고, 베베가 추천한 방법대로 아파트의 쓰레기처리 공간을 이용하여 처리한다. 영화는 쫓기듯 주위를 살피며 태아를 처리한 오틸리아가 호텔로 돌아와 천연덕스럽게 식당에 앉아 식사를 주문한 가비타와 마주하는 장면에서 종영되는데...
시작에서 끝까지 물흐르듯 이어지는 스토리 가운데 낙태비용에 관하여 베베와 협상하는 장면을 제외하고는 갈등구조도 전혀 없고 기대했던 반전도 없이 영화가 끝나고 말아 무언가를 기대했더라면 크게 실망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다만 영화의 배경이 되는 차우셰스쿠 독재정권 당시의 루마니아 사회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는 정도? 그리고 특히 오틸리아가 사산한 태아를 처리할 장소를 찾아 헤매는 장면을 들고찍는 기법으로 많이 흔들리는 장면을 연출하여 긴박감을 조성하지만 그 과정에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인지 맥이 빠지고 말더라는 이야기도 해야 하겠습니다.
룸메이트라고는 하지만 오틸리아가 자신을 희생하여 도와주어야 하는 필연성에 대한 설명이나, 아니면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종료되었을 때 두 사람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갈등도 설명하지 않고 이야기를 마무리한 영화가 황금종려상을 받았다는 점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관찰자의 입장에서 스토리의 전개를 그려나가는 기법으로 리얼리즘을 추구했다는 점이 돋보였다는 설명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의문이라 하겠다.
숙련된 산부인과 의사라고 하더라도 임신 첫 2개월에 이루어진 낙태수술로 인한 모성사망률은 10만명도 0.7명이라고 한다. 그리고 임신기간이 2주 경과할 때마다 사망률은 2배씩 늘어난다고 한다. 그러니 무자격자에 의하여 행해지는 낙태시술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깨달아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