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62> 마지막 4중주 - 달래면서 같이 가는 파킨슨병
야론 질버만 감독의 2012년작 <마지막 4중주(A late quartet)>는 ‘인생이 연주하는 아름다운 불협화음’이라는 카피가 딱 어울리는 영화이다. “결성 25주년 기념 공연을 앞둔 세계적인 현악4중주단 ‘푸가’. 그들 내에서 음악적, 정신적 멘토 역할을 하던 첼리스트 피터가 파킨슨병 초기라는 진단을 받으면서 네 명의 단원들은 충격과 혼란에 빠진다. 스승과 제자, 부부, 옛 연인, 친구 등 개인적으로도 가장 가까운 관계인 네 사람은 이를 계기로 25년간 숨기고 억눌러온 감정들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삶과 음악에 있어서 최대의 기로에 서게 된다. 한편, 본인의 병으로 인해 ‘푸가’ 4중주단이 위태로워질 것을 깊이 염려하던 피터는 자신의 마지막 무대가 될 25주년 기념 공연에서 난이도가 높기로 유명한 베토벤 현악4중주 14번을 연주할 것을 제안하는데…”라고 큰 줄거리를 요약하고 있다.
어떤 영화를 보더라도 남는 무엇이 있기 마련이다. 이 영화에서는 현악4중주라는 실내악이 무엇인지, 25년 이라는 오랜 세월을 같이 한 그들 사이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그 문제들이 25년 동안 잠복되어 온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파킨슨병은 무엇인지 등을 생각해보는 기회가 된다.
먼저 현악4중주. 인터넷 사이트 <Go! Classic>의 위키사전에서 설명하고 있는 현악4중주를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근대 실내악의 중심이라고 할 현악 4중주는 2대의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에 의해 연주되는 4악장으로 구성된 실내악 형태로 고전주의시대에 하이든에 의해 완성되어 모차르트를 거치면서 베토벤에 이르러 최고의 절정기를 이루었다. 프랑스의 작가 스탕달은 현악 4중주에 대해 네 사람이 서로 대화를 나누는 것에 비유하여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고 한다. ‘제 1바이올린은 언제나 화제를 제공하며 대화를 이끌어 가는 재치있는 중년, 제 2바이올린은 소극적이고 양보하는 친구, 비올라는 대화에 꽃을 피우며 분위기를 부드럽게 해 주는 여성, 그리고 첼로는 학식이 많으며 대화를 조정해 주는 중후한 신사.’ 영화에서도 네 사람의 연주자의 역할에 대하여 잘 설명하고 있다. 스탕달이 소극적이고 양보하는 친구라고 비유한 제 2바이올린은 소극적이라기보다는 자신을 죽이고 전체를 아울러서 조화로운 소리로 이끄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인데, 그러다보니 자신만의 음악을 해보려는 욕심을 눌러야 한다는 전제가 있는 것 같다.
푸가의 멤버는 첼로의 피터(크리스토퍼 윌켄扮)와 그의 제자들로 구성되는데, 제1바이올린을 맡는 대니얼(마크 아이반니扮)와 그의 친구 로버트(필립 세이무어 호프만扮) 그리고 로버트의 아내 줄리엣(캐서린 키나扮)로 구성된다. 피터와 대니얼의 주장대로 원칙을 중시하는 연주활동을 해오는데, 로버트는 연주자의 개성도 살려야 된다는 생각을 품고 있는 것 같다. 줄리엣은 작고한 부모의 친구인 피터의 도움으로 음악을 하게 되고, 졸업 후에는 4중주단에 합류하여 로버트를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되는데, 로버트의 적극적인 성격이 한 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스탕달의 비유대로 네 사람은 각기 다른 개성을 적절하게 조절해가면서 연주활동을 해왔는데, 그것은 개인의 삶보다 연주를 중시하는 그들의 철학이 반영되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
결성25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을 앞두고 베토벤 현악4중주 14번을 연습하게 되는데, 이 곡은 보통 4악장으로 되어있는 현악4중주곡과는 달리 7악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작곡자의 특별한 요구에 따라서 7악장을 쉬지 않고 연주해야 한다. 따라서 중간이 튜닝을 할 시간적 여유가 없어 쉽게 연주할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중요한 일을 앞두고는 잠복해있는 모든 문제가 튀어나오는 법이다. 최초의 사단은 연습 과정에서 피터의 실수가 반복되는 것. 결국은 나디르박사(마더 제프리扮)의 진찰을 받게 되는 피터는 파킨슨병의 초기라는 진단을 받게 된다. 그리고 약물치료를 포함하여 운동치료 등을 받는 과정에서 파킨슨병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파킨슨병 환자를 주인공으로 다루고 있는 영화로는 로버트 드 니로와 로빈 윌리엄스가 주연한 영화 <사랑의 기적>이 있다. 이 영화에서 중증 파킨슨병 환자를 연기한 로버트 드 니로의 대단한 연기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사랑의 기적>에 나오는 파킨슨병 환자들은 20세기가 시작할 무렵 세계적으로 확산되어 많은 희생자를 냈던 스페인독감의 후유증으로 생긴 뇌염후 파킨슨병이었다. 그밖에 사설 실험실에서 마약을 제조하는 과정에서 불순물로 만들어지는 화학물질로 인하여 대뇌 흑질의 신경세포가 죽어서 생기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파킨슨병의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대부분의 파킨슨병 환자들은 60대 들어 증상이 나타나는데 초기에는 손이나 팔에 떨림이 생기고 관절이 굳은 듯해서 어색하다고 호소한다. 안정떨림, 경직, 느린 운동 및 자세불안정성 등을 파킨슨병의 4대 주요 증상 및 징후라고 한다. 파킨슨병 환자가 보이는 떨림은 주로 편안하게 쉬고 있을 때 손가락이나 손목 관절이 율동적으로 떨리고 운동을 시작하면 떨림이 사라지는 것이 특징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엄지와 검지가 떨림의 방향이 서로 반대로 나타나서 마치 경단을 미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pill rolling tremor). 파킨슨병은 만성 퇴행성 신경계질환으로 증상이 조금씩 나빠지기 때문에 짧게는 5년 길면 10년 이상 진행되는데, 정상인과 비교하여 알츠하이머병이 더 많이 발생하는 등의 합병증이 생길 수 있다.
이처럼 초기에 보이는 미세한 변화는 쉽게 발견되지 않을 수 있는데 피터의 경우는 첼로를 연주하기 때문에 미세한 운동기능의 장애가 원하는 소리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아주 일찍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영화에서는 약물요법과 운동요법 등을 열심히 받는 것으로 나오는데, 아마도 피터 정도의 증상이라면 레보도파라는 약물을 사용하여 증상을 충분히 조절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진단을 받고 약물치료를 받으면서 연주활동이 가능할 것으로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은퇴를 결심하게 된 것은 아마도 물러날 때를 알고 있는 현명함 때문이 아닐까?
어떻든 피터의 파킨슨병 발병을 계기로 제2바이올린 로버트가 오랫동안 마음에 담고 있던 욕망이 드러나 대니얼 그리고 줄리엣과 갈등을 빚게 되는 것, 그 과정에서 줄리엣과 로버트의 갈등, 여기에 로버트의 일탈이 기름을 붓고, 줄리엣과 로버트의 딸 알렉산드라(이모젠 푸츠扮)까지 끼어들어 현악4중주단 푸가의 존립이 불가능할 지경에 이르게 되는데. 상식적으로는 모든 관객들이 푸가의 재건은 물건너 갔다고 보는 순간 영화는 엔딩으로 수렴된다. 그 과정에서 유일하게 보여주는 장면은 알렉산드라가 대니얼과의 관계를 정리하겠다고 선언하는 정도? 이들이 푸가의 존속에 동의한다면 이들은 음악을 인생의 갈등보다 더 우위에 두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스토리의 진행으로 보아 그렇게 보기도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7악장을 쉬지 않고 연주해야 하기 때문에 생길 수 있는 불협화음마저도 감수해야 하는 베토벤의 현악4중주 14번을 푸가의 25주년을 기념하는 연주곡으로 선정한 것은 살아가면서 만나는 불협화음을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함일까?
이 영화에서는 영화의 OST로 나오는 브렌타노 현악4중주단의 음악 뿐 아니라 피터의 아내, 메조소프라노 미리엄역으로 특별출연한 안네 소피 폰 오터의 노래와 마지막 연주곡 베토벤 현악4중주 14번을 연주한 한국출신의 세계적인 첼리스트 니나 리의 정열적인 연주모습을 볼 수 있는 점도 특별하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