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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 라디오

[도서] 심야 라디오

오가와 히토시 저/이용택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요즈음은 심야에 TV앞을 지키고 앉아있습니다만, 그 옛날에는 라디오 심야방송에 귀를 기울이곤 했습니다. 다들 선호하는 프로그램이 있겠습니다만, 저는 성우 김세원님이 진행한 <밤의 플랫폼> 애청자였습니다. 라디오를 켜놓고 무슨 공부가 되느냐고 부모님께서 야단을 치셔도 감미로운 목소리로 소곤소곤 들려주는 이야기가 배경에 깔려줘야 공부가 잘 된다고 우기곤 했습니다. 심야시간에 듣는 라디오 프로그램은 아무래도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 같습니다. 낮에 겪은 일 때문에 생각할게 많은 밤에는 누군의 조언이 목마를 수도 있을 것이구요.

 

‘잠 못 드는 밤을 위한 철학 에세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심야 라디오>는 바로 이런 사람들을 위한 책입니다. 밤 11시 15분에 시작해서 이튿날 0시 30분에 끝나는 프로그램입니다. 책을 쓴 오가와 히토시씨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입니다. 교토대학 법학부를 졸업했고, 이토추상사에 입사하였지만 사법시험에 붙어 나고야시청에서 근무하면서 철학을 공부하여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서양정치철학을 전공하였고, 시민을 위한 철학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루 동안 자신이 취한 행동과 주변에서 일어난 사건들은 도대체 어떤 의미를 지닐까요? 철학은 그 답을 일깨워줍니다.(5쪽)”라고 머리말에서 적고 있는 것을 보면, 이 책은 사물의 본질을 탐구하는 학문으로서의 철학의 역할을 제대로 살려보자는 취지에서 기획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책에서는 밤에 사람들이 잠자리에 들었을 때 떠올려봄직한 여러 가지 고민들을 다룹니다.”라고 적은 것처럼, 기쁨, 분노, 불안, 포기, 질투, 동정, 경멸, 사랑, 자기계발, 수명, 등등 모두 40개의 화두를 철학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철학적 설명이라고 하니 어려울 것이란 선입견이 들 것 같습니다만, ‘경멸’을 설명하면서, 헤겔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을 인용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얼마 전 TV예능 프로그램 <1박2일>에서도 본 기억이 있는 사고실험입니다. 즉 시합을 해서 이긴 사람이 주인이 되고 진 사람은 노예가 되는 게임입니다. 저자의 설명대로라면, 죽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영예를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사람이 주인이 되고,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상대방에 대한 종속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노예가 될 것인데, 종국에는 주인은 노예의 노동 없이는 살아갈 수 없음을 깨닫고, 노예는 자신의 노동력으로 자립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에 결국은 노예에게 더 큰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몰입하여 저자의 주장을 수용하는 경우도 있고, 저자의 설명대로가 아니라 다른 해석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일을 하나 해도 창의적으로 하는 것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아렌트는 육체노동을 레이버(labor), 정신노동을 워크(work)라고 하였습니다. 정치활동도 액션(action)이라고 해서 일의 범주 중 하나로 들었지만, 여기에서는 그냥 넘어가도록 하지요.(117쪽)”라고 한 한나 아렌트의 생각을 인용하는 부분입니다. 저자는 육체노동은 신체를 사용하는 일이기 때문에 열등한 것이 아니라 강제적으로 주어진 일이기 때문에 괴롭고, 정신노동은 본인이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라서 적극적으로 하는 것인데,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은 창의성의 크기에서 차이가 있다는 저자의 설명이 일견해서는 적절한 듯하지만 2% 부족하다는 느낌이 남습니다. 혹시 아렌트나 저자나 레이버(labor)에 분만이라는 의미도 있다는 것을 고려했다면 ‘강제’나 ‘괴롭다’는 생각이 들었을까 싶습니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겠습니다만, 임신은 남자와 여자 사이의 사랑이 결실을 맺는 것이므로 강제하거나 그 행위가 괴롭다고만 해석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아무 것도 없다’는 의미의 무(無)를 설명하기 위하여 일본의 전통 정원을 인용하는 것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입니다(144쪽). 일본식 정원은 자연의 축소판이라고 할 정도로 오밀조밀하게 꾸며 인공미가 물씬 풍긴다고 하는데, 그런 일본식 전통 정원에서 무(無)를 떠올릴 수 있을까 싶습니다. 하나 더, 스피노자가 말하는 신이 기독교나 유대교에서 말하는 특정한 신이 아니라 정신이나 자연, 우주 등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해서 무신론자라고 탄압을 받았다는 주장(164쪽)에 대하여도 무신론자라기보다는 범신론자라고 해석해야 하는 것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공연한 딴죽걸기가 되어 버린 느낌도 없지 않습니다만, 전체의 틀에서 보면 심야의 음악방송처럼 차분한 목소리로 그날의 삶에서 느낀 답답한 점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느낌이 오는 좋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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