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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화의 '이야기가 있는 세계여행'
세상의 다른 곳, 베네치아(1)

슬로베니아에서 이탈리아로 넘어 가는 국경은 출입국 절차 없이 통과했다, 창밖의 풍경도 바뀌어서 널따랗게 펼쳐지는 평야지대다. 포스토니아동굴을 떠난 버스는 두어 시간 만에 베네치아에 도착했다. 이날 하루 동안 우리는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그리고 이탈리아까지 3개국을 여행한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베네치아에 들어오는 관광버스는 체크포인트까지 가서 별도로 신고를 하고 600유로를 내야 한단다. 신고를 마치고 호텔로 향하던 버스가 막다른 길에 들어섰다. 버스의 네비게이션이 숙소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숙소로 연락을 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거의 8시가 되어 베니스호텔 빌라도리에 도착했다.

 ▲ 베니스호텔 빌라도리의 특이한 식당


그런데 숙소가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건물 밖에 불상이 서있고 식당에도 많은 불상을 모시고 있었다. 불상의 모습으로 보아 인도의 밀교에 가깝지 않을까 싶었다. 코끼리상을 한다거나 팔이 네 개인 불상도 있다.

헷갈리는 것은 식당 한쪽에 바가 있고 노래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녹색과 빨간색의 불빛이 난무하고 있어 경건한 분위기는 아니다. 다음날 들어보니 주인의 믿음 때문이 아니라 이국적인 것을 좋아하는 주인의 취향에 따른 수집품을 전시한 것에 불과하다고 했다.

베네치아는 이탈리아 북부 베네토주의 주도로 인구 264,579명(2014년 기준)이 살고 있는데, 구시가지에 6만, 인근 섬에 3만 그리고 나머지는 본토 쪽 신시가에 살고 있다. 베네치아는 이탈리아 북부를 흐르는 포(Po)강과 피아베(Piave)강이 흘러드는 베네치아만 안쪽의 석호에 흩어져 있는 118개의 섬들을 운하와 400여개의 다리로 이어 조성한 도시이다.

베네치아라는 이름은 기원전 10세기 베네티(Veneti)사람들이 이곳에 살기 시작한 것으로부터 유래했다. 로마제국에서 비잔틴제국으로 이어지는 사이 본토 쪽에서 살던 사람들이 이곳 습지에 도시를 건설한 이유는 6세기 무렵 아틸라(Attila)가 이끄는 훈족에게 밀려난 게르만족의 일파인 롬바르드족의 습격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도시가 커감에 따라 주민들은 자체적으로 지도자를 뽑았고, 비잔틴제국의 황제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었다. 697년 최초로 뽑은 총독(Doge)은 파올로 루치오 아나페스토(Paolo Lucio Anafesto)였다.(1)

프랑크왕국과 비잔틴제국 사이에 끼어있던 베네치아공화국은 뛰어난 항해술과 상술을 바탕으로 중계무역으로 세력을 키워나갔다. 서기 1000년경에는 비잔틴제국의 간섭을 벗어나 발칸반도의 연안으로 영토를 확대하였고, 1204년에는 제4차 십자군을 인도하여 비잔틴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켰다.

15세기에 베네치아는 동지중해의 해상권을 장악하여 동방무역을 독점하여 최전성기를 맞았지만, 16세기 들어 오스만제국과의 전쟁에 패하고,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대서양항로를 개척하면서 세력이 기울게 된다. 오스만제국과의 끊임없는 충돌이 이어지면서도 잘 버티던 베네치아공화국은 1797년 나폴레옹의 침략으로 멸망하고 말았다. 1805년에는 나폴레옹 치하의 이탈리아 왕국에 귀속되었다가 1815년에는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았으며 1866년 이탈리아 왕국에 편입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2)

섬이라고는 해도 썰물 때 물 위로 드러나는 갯벌에 불과한 지역에 도시를 건축하기 위하여 베네치아 사람들은 식민지였던 발칸지역에서 실어온 길이 4미터 정도의 통나무를 갯벌에 촘촘히 박아 넣고 그 위에 나무 기단을 얹은 다음에 다시 돌을 얹어 건물을 지었다. 그러니까 일종의 수상가옥인 셈이다.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교회를 짓기 위하여 들어간 나무말뚝이 무려 1,106,657개나 되었다고 하니 대단한 역사(役事)가 아니었을 것이다.(3)

그래서 역사가 마린 사누도(Marin Sanudo)는 “인간의 의지가 아닌 신의 힘으로” 건설된 도시라고 했나보다. 도시가 해발 1m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밀물 때는 바닷물이 넘쳐서 산 마르코 광장에서 수영을 하는 외지인들도 있다고 한다.

 ▲ 우리는 베네치아로 접근 중


8시에 숙소를 떠난 버스는 무솔리니가 건설했다는 자유의 다리를 건너 베네치아의 공용주차장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베네치아에 사는 한국인 현지가이드의 안내로 한나절 일정의 베네치아 관광을 시작했다. 공영주차장에서 전셋배를 타고 산마르코 광장 인근에 있는 부두에 도착했다.

배를 타고 가는 동안 멀리서 바라보는 베네치아는 그대로 물위에 떠있는 도시였다. 일렁이는 파도 때문인지 떠오르는 아침 해 때문인지 초점이 맞지 않는 사진에는 몽환적인 도시의 느낌이 그대로 담긴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베네치아에서 보낸 한 나절은 페트리샤 포르티니 브라운이 '베네치아의 르네상스'에서 묘사한 그 느낌 그대로였던 것 같다.

"배를 타고 베네치아에 도착할 때의 광경은, 교외를 지나 성문을 통과하고 길을 따라 점점 도심에 접근해가는 여느 도시 입성과는 그 느낌이 사뭇 다르다. 방문객들은 처음부터 베네치아를 한 눈에 펼쳐진 일대 장관으로 경험한다. 그런 다음 발길이 닿지 않은 물길을 따라 마치 카메라 렌즈의 초점을 맞추듯, 곧바로 도시의 심장부에 다다른다. 베네치아에서는 사물들이 시시각각 달라 보인다. 관광객들이 여기저기 시선을 돌려 빛과 대기가 뒤섞인 흐릿한 수평선으로 녹아 들어가는 아른거리는 수면을 볼 때, 그 동안 전해들은 얘기와 실제가 그렇게 확연히 달라 보이는 것은 베네치아의 실제 지형적인 위치 때문일 것이다."(4)

 ▲ 비발디광장(좌상), 비발디광장의 우물(좌하), 산 지오반니 교회(우)


가이드가 일행을 처음 데려간 곳은 4계로 유명한 안토니오 비발디의 생가와 1678년 유아세례를 받았다는 산 지오반니 교회(San Giovanni in Bragora)가 있는 광장이다.(5) 축구장 크기 광장은 사방에 들어선 건물로 밀폐된 느낌이 든다. 바닥이 대리석으로 깔려 있어서 더욱 그랬던 것 같은데, 광장 한 곳에 서 있는 작은 나무가 한 그루가 숨통을 틔워주는 듯했다.

광장이 이런 모습인 것은 물이 귀한 베네치아에서 빗물을 모아 사용하기 위한 치수체제 때문이라고 했다. 광장과 주변의 건물에 내리는 빗물은 광장 아래 있는 저수조에 모아 허드렛물로 사용한다고 했다.

 ▲ 총독궁으로 가는 길, 왼쪽으로 앞 건물이 누오베라감옥 뒷건물이 총독궁(좌), 탄식의 다리(우)


광장을 나와 아치형의 다리를 몇 개 건너 총독궁으로 이동한다. 총독궁 바로 옆에 있는 건물은 피리지오니 누오베라 감옥이다. 총독궁의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죄수를 누오베라 감옥으로 이송할 때 이용했다는 탄식의 다리를 볼 수 있다. 창문 너머로 바닷물이 찰랑거리는 소리를 들으면 심장이 쫄깃해졌을 것 같다. 그래서 다리를 건너는 죄수들이 탄식을 했대서 탄식의 다리라고 불렀다는데, 그런 사연을 아는지 모르는지 과일을 배달하는 곤돌라의 사공은 무심하게 노를 젓는다.

유일하게 누오베라 감옥을 탈출한 이가 바로 카사노바였다고 한다. 카사노바가 재판도 없이 5년형을 받아 감옥에 수감된 이유도 가설이 분분하고, 탈출한 방법도 가설이 여럿이라고 하는데, 어떻든 탈출하면서 감옥에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가둘 때 나의 동의를 구하지 않았듯이 이제 나도 자유를 찾아 떠나며 당신들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나가노라." 역시 낭만가객이라 부르지 않을 수 없겠다.

참고자료

(1) Wikipedia. Venice.
(2) 위키백과. 베네치아공화국.
(3) 나무위키. 베네치아.
(4) 패트리샤 포르티니 브라운 지음. 베네치아의 르네상스 15쪽, 예경, 2001년.
(5) Wikipedia. Antonio Vivaldi.

 

메디칼 타임스: 기사입력 2016-06-0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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