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찌질함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그것을 인정함으로써 그다음을 바라보게 된 이도 있다. 끊임없이 자신의 찌질함과 맞서 싸우면서 생을 살아간 이도 있다. 그들의 위인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어쩌면 우리에게 남긴 어떤 업적이나 작품과 같은 '결과' 때문이 아니라 그곳에 닿기까지의 과정 때문일지 모른다. 그가 생전에 남긴 여러 작품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좌와 벌〉외에도 자기 비하 혹은 자기 폭로에 가까운 시가 여러 편 눈에 띈다. 익히 알려진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에는 사회와 정부의 부조리함에는 고개 숙이고 침묵했던 자신이 설렁탕집 주인에게는 갈비에 기름 덩어리만 나왔다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욕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모래야 나는 얼마큼 작으냐'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 시인임에도 내가 시에 반역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고백, '나 같이 사는 것은 나밖에 없는 것 같다'는 설움이 곳곳에 묻어 있다.
시인 김수영이 인간 김수영을 바라보는 눈은 제3자의 그것보다도 훨씬 냉혹하다. 이토록 시인으로서 김수영은 김수영 그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웠다. 그가 추구하는 자유에는 한계와 기준이 존재하지 않았다.
대상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색채화하여 그리는 빈센트 반 고흐의 화풍이 단순히 그가 정신분열과 환각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는가? 적어도 그는 그림을 그리는 순간만큼은 온전히 정신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그가 정신분열증을 겪었다고 단정 짓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 또한 그가 착란을 겪는 와중에도 꽤 오랜 시간 멀쩡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정신이 분열되어 있었기 때문에, 환각으로 인하여 보이는 대상 그대로를 그렇게 그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자신만의 느낌으로 대상을 재해석하고 그 안에 정서를 담았을 뿐이다. 미친 사람의 눈에 비치는 미쳐 보이는 세상을 그린 것이 아니라 실제 자신에게 보이는 것을 자신의 느낌과 정서를 담아 표현한 것이다.
경제적으로 무능한 데다가 정신적으도 온전하지 못했던 빈센트 반 고흐, 정신 착란과 자해를 반복했던, 죽고 나서야 인정받은 위대한 예술가, 누군가에게 거절을 당할 때마다. 그래서 상처를 받을 때마다 착란을 일으킬 정도로 괴로워했던 빈센트 반 고흐. 평생에 걸친 자신의 광기와의 처절한 투쟁. 어쩌면, 우리 삶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겠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다른 사람들 눈에는 내가 어떻게 비칠까. 보잘것없는 사람, 괴벽스러운 사람, 비위에 맞지 않는 사람, 사회적 지위도 없고 앞으로도 어떤 사회적 지위를 갖지도 못할, 한마디로 최하 중의 최하급 사람…그래, 좋다. 설령 그 말이 옳다 해도 언젠가는 내 작품을 통해 그런 기이한 사람, 그런 보잘것없는 사람의 마음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보여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