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디는 그가 지키고자 하는 가치를 위해서는 목숨을 건 단식을 감행하기도 했다. 흔히들 말하는 '진짜' 보수주의자의 모습이란 이런 것이다. 때에 따라 신념을 바꾸고, 자신의 이익에 유리한 쪽으로 자세를 고쳐 앉는 사람을 보수주의자라 말할 수는 없다. "상투를 자르느니 차라리 내 목을 자르겠다"라고 외쳤던 개화기 유생들의 모습을 생각해보라.
마지막으로는, 간디는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가치를 위하여 행동할 때에는 그 누구보다 앞장섰으면서도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남기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았다. 간디는 부의 축적이라는 개념 자체를 스스로에게 허용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생전에 그의 가족들에게도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간디가 추구한 대표적인 가치관으로 알려져 있으며 비폭력 저항이라는 의미로 통용되는 '사티아그라하'는 산스크리트어에서 나온 말이다. '사티아'는 진리를 뜻하며, '아르라하'는 노력, 열정을 뜻한다. 따라서 사티아그라아하를 뜻 그래도 해석하면 '진리를 찾기 위한 노력'이 된다.
물론 간디에게 이러한 노력은 비폭력이라는 대전제를 의미하는데, 사티아그라하의 대원칙으로 간디가 자주 사용했던 '아힘사'라는 단어가 '타인에 대한 상해 불가'를 뜻하기도 한다. 앞으로 간디의 비폭력 저항 원칙은 본래의 표현을 살려 사티아그라하로 통칭하리고 한다.
간디는 신설되는 차별 조항의 불합리성을 인도인들에게 알리는 한편 이를 조직적으로 거부할 태세를 갖추기 시작했다. 여기에 동원된 운동의 방식이 사티아그라하였다. 이 시기 간디의 사티아그라하가 아직 완벽한 틀을 갖추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저항의 방식은 이미 비폭력 저항의 성격을 나타내고 있었다. 차별 조항을 철폐하기 위해 간디가 택한 방식은 조항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었다. 이미 발급받은 인도인들의 신분증은 모두 모아 놓고 불태우는 한편, 아직 신분증을 발급받지 않은 인도인들은 신분증 발급을 거부하도록 유도했다. 간디는 이후 어떤 종류의 사티아그라하에서도 상대가 인도인의 권리를 어느 정도 보장하려는 태도를 보이지만, 같은 편도 놀랄 정도로 타협하며 조건을 양보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간디의 태도에 실망하는 인도인 또한 적지 않았으나 간디는 언제나 대타협의 여지를 두고 협상에 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