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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리커버] 달콤한 나의 도시

[도서] [예스리커버] 달콤한 나의 도시

정이현 저

내용 평점 2점

구성 평점 3점

책을 다 읽고나니 제목에 왜 '달콤한'이란 형용사가 들어갈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딱 봐도 너무 예쁜 제목이다.

에세이, 사회과학, 철학,,심리학에 편중된 나의 독서습관을 좀 바꿀 요량으로

소설도 좀 읽어보자 싶어 집어든 책이다.

책도 편식을 하는 편이라 의식적으로 노력해서 집어 들어야 하는 장르가 있다.

 

마음이 좀 달콤하고 말랑해졌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품으면서 다시 펼친 이 책은

사실 십년도 더 전에 사서 읽었던 책이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티비드라마를 보고 구매했던 기억이 난다. 

동일 제목의 드라마에서는 당시 핫하던 배우 최강희가 주인공을 맡았었다.

근데 이 책을 처음 읽었던 그때는 사실 별 감흥이 없었다.

나는 고작 스물 몇살쯤이었고, 그때 나의 언어로는 이 책속의 언니들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어쨌든 이미 한번 읽었던 책이란 딱지가 붙어버린 이 책은 그 뒤로 다시 펼쳐질 기회를 갖지 못했고,

이사갈 때마다 헌책방에 팔 책리스트나 아름다운 가게에 기증할 리스트에도 자주 오르곤 했었다. 

근데 온라인 중고서점도 아름다운 가게도 기준이 있더라. 오래된 책은 안받아줌. ㅎ  

덕분에 몇번의 이사를 거치는 동안에도 버려지지 않고 나를 따라 여기까지 와서 함께 살고 있는 것.

 

어쩌면.. 그저 내맘대로의 생각이지만

20대의 나와 어느새 서른 중반이 넘어버린 나를 대조해 보여주려고 여지껏 내 곁에 남아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기억에 남는 문장들

-'출근길? 결혼 애기 미리 못해서미안, 울 엄마가 그런 건 미리 떠들고 다니는 게 아니라고 해서'

서른한살, 우리는 아직도 '엄마들'의 세계 속에 살고 있다.


-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자. 지금은 그냥 이대로 한번 가보는 거다.

 미리 준비하고 예측한다고 해서 삶이 어디 호락호락 내가 원하느 방향으로 굴러가주던가.

그리고 내가 원했던 방향이 어딘지도 므르는 채로, 나는 지금 여기 도착해 있지 않은가.

나는 단호하게 와인 색 립스틱을 집어 들어, 입술에 발랐다.

안 어울리면 어떠랴. 내일은 베이지핑크를, 모레는 단풍잎 같은 빨강을 바르면 된다.

아니면 까짓것, 깨끗이 지워버리면 된다.


-장선배가 씹어 뱉듯 던진 마지막 말이 가슴에 콱 박혔다. 비겁해서 가만 있는 줄 아나.

스물다섯 살, 첫 직장에서의 나였대도 오늘처럼 대답했을까. 아마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도망가버리거나 회의실 탁자에 얼굴을 묻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아니, 이민정에게 과감한 지지표를 던지고는 혼자 안절부절 못하다가 다음날 비장한 각오로 사직서를 제풀했을지도 모를 일이지.

그때가 그립다는 뜻은 아니다. 옳은 일과 옳지 않은 일을 판단하는 기준이 점점 더 모호해져만 간다.

25세의 여자를 부러워하는 건 탱탱한 피부 때문이 아니다. 내 질투의 이유는, 그녀의 무모한 용기가 수틀리면 쉽게 손 털고

첨부터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자의 자신감에서 비롯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은수야..실은 나 오늘 회사 관뒀어.

-헉. 왜?

-나, 뮤지컬 배우가 될거야.

- ......................................

유희는 누구나 이름을 대면 알만한 중견 기업 전산실의 과장이었다. 인간과 동물을 포함한 지구상의 어떤 생물체보다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한다고 공언하고 다니는 만큼 그녀는 우리 셋 중에 모아 놓은 돈도 제일 많고 승진도 제일 빠르며 연봉도 제일 높았다. 그 번듯한 회사를 그만두다니.

뮤지컬 배우라. 멋지다. 그렇지만 31세 미혼 여성의 장래희망으로는 좀 너무하지 않은가? 십년전이면 모를까.두달 뒤면 우리는 서른 두살이었다.

-이해 안되는 거 알아. 하지만 더 늦으면 정말로 후회할 것 같아서.

그녀의 긴 대화면이 새삼 눈을 잡아챘다.

'문제는 인생이 아니라 인생에 대한 용기다!!'

-그래, 잘해봐

-정말 고마워. 너라면 그렇게 말해줄 줄 알았어. 이젠 진짜 내가 원하는 인생을 살겠어.


-태오에게 좋아요라는 답장을 보낸 건 유희가 인생에 대한 용기를 전염시켜주어서 일까?


-어릴땐, 우리 가족이 화목한 일일 연속극 속 가족들과 전혀 다르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이기적이고 쌀쌀맞은 아버지, 잔소리 많고 감정 기복 심한 어머니, 경박하고 뺀질대는 오라버니는 드라마뿐 아니라 어떤 동화책에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젠 그러려니 한다. 나이 들어가면서 조금씩 터득하게 된 진리는, 겉으로 근사해 보이는 다른 사람들도 실제론 구질구질한 일상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는 것, 아마 그 홈드라마 속에 사는 가족들도 카메라가 멈추었을 땐, 환멸 가득한 눈빛으로 서로를 흘겨볼 게 분명했다.


-수십 가지 종류의 아이스크림이 늘어선 유리 진열장 앞에 서면 뭘 골라야 할지 몰라 느닷없이 오줌이 마려워진다. 달디단 초콜릿무스, 은은하게 새콤한 망고탱고, 씁쓰레한 커피향의 자모카아몬드훠지,,,, 오늘, 나는 민트초코칩을 선택했다. 한 번도 먹어보지 않았기에 한번쯤 먹어보고 싶었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 사실 여자들이 짐작하는 것만큼 남자들이 육체에 그렇게 집착하는 건 아니야. 아. 육체에만 집착하는 건 아니라는 뜻이야'

'그럼 어떤 남자는 책을 맨 뒷장부터 읽기도 한단 말이지? 맨 앞까지?'

'그런 여자가 있다면 그런 남자도 있지 않을까. 글쎄, 남자나 여자나 사랑에 빠지는 이유는 비슷한 것 같아. 연애란 게 결국은 이 거친 세상에서 마음 붙일 데를 찾는 거 아니겠어? 체온을 나누고 싶고 기대고 싶고 소통하고 싶고,, 지향점이 같다면, 몸이 좀 앞서 나가는 건 큰 문제가 아니라고 보는데?'

'정말 괜찮을까?'

'그래, 걱정 말고 일단 진도 나가보라고 해. 허 참, 내 연애 전적도 백전백패면서 웬 주제넘은 충곤지 모르겠네'

처음 경험한 민트초코칩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아마도 다음번에 또 먹게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초콜릿무스, 망고탱고, 자모카아몬드훠지처럼 내 혀끝에 익숙한 맛들을 선택해야 안전하다는 사실을 배웠기 때문이다.


-윤태오, 남유준, 김영수. 객관식 선다형 문제를 받아든 것처럼 나는 세 개의 이름들을 골똘히 들여다본다. 마음가는 것과는 별개로, 이 세개의 보기들에는 각각 잉여와 결핍이 담겨 있다. 나는 몇 번째 답안에 동그라미를 치게 될까. 그것은 정답일까. 오답일까


-좋다. 살기위해 소비한다고 치자. 그런데 카드 영수증과 교환한 물건들을 받아들여도, 인생을 탕진하고 있다는 불안감이 치미는 것은 왜일까? 인생을 소모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관계란 과연 어디에 존재하는 걸까? 그래서 사람들은 기꺼이 사랑에 몸을 던지나 보다. 순간의 충만함. 꽉 찬 것 같은 시간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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