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보다 봄 리뷰
<인상 깊은 구절>
저 아래 내 몸이 보였다. 산소마스크를 쓰고 수술대에 누운 53세 여성의 몸은 아침마다 욕실에서 비춰본 모습과는 달랐다. 나는 지금 영인가 혼인가. 저 아래 내 몸이 따뜻한 걸 보면 나는 죽지 않았다. 의사가 숫자를 세어보라고 했던 것, 조금 어색한 느낌으로 하나 둘 셋 까지 중얼거렸던 것도 다 기억한다. 그러곤 검은 망각 속으로 까무룩 가라않았는데, 어느새 슷 혹은 붓, 하고 수술실 천장에 떠올라 내 몸을 내려다보고 있다. 영혼의 무게는 21그램이라는데. 영화 포스터에서 벌새 한 마리의 무게, 초콜릿 바 하나의 무게라는 카피를 본 적이 있다. 처음 보았을 때 코웃음을 쳤더랬다. 사람마다 몸의 모양도 색깔도 무게도 길이도 부피도 다 제각각인데, 21그램이라는 단일 수치로 영혼의 무게를 설명하려 들다니.
사람의 발목이 허리처럼 잘록하게 쏙 들어갈 수도 있다니. 새로운 발견이었다. 언니는 늘 종아리 가운데까지 오는 치마를 입었고 잘 다린 블라우스를 입었다. 언니가 타자기 앞에서 이에 골몰할 때는 수굿한 각도로 내려앉은 어깨선을 한참 바라보기도 했다. 아마 그 시절 나는 언니를 동경했던 것 같다. 언니의 우아한 겉모습과 다정한 마음 씀씀이와 그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풍기는 어떤 분위기를 나는 아름다움이라고 정의했다. 언니는 정말 아름다웠다. 그렇게 아름다운 사람을 회사 아저씨들은 미쓰 양아, 커피 좀 마시자, 미씨 양아, 과일 좀 깍아와라, 부려먹었다.
나는 점심을 다 먹고 언니와 함께 휴게 건물 뒤쪽에서 뒷산으로 이어지는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걷다가 내려오는 그 짧은 시간을 사랑했다. 언니는 수북하게 자란 풀 사이를 헤치며 나직한 말투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청첩장을 돌린 뒤로 소희 언니의 얼굴이 눈에 뛰게 어두어진 것은 내 착각일까? 결국 나는 어느 날 식당을 나가는 소희 언니 뒤를 따라가 산책로 한가운데서 언니를 붙잡고 참아왔던 말을 하고야 말았다. 언니! 맘 고생도 몸 고생도 안 하면 안 돼요? 그냥 언니 혼자 행복하게 살면 안 돼요? 나는 언니가 행복하면 좋겠어요. 발목이 잘록하고 뒷모습이 아름다운 소희 언니가 처음 보는 딱딱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서, 너는, 행복 하려고, 늙은 홀아비 앞에서, 다리를 벌렸니?
출장이 반복될수록 그 시간을 알뜰하게 쓰고 싶어 미리 계획을 세웠다. 도쿄 시내 관광지를 전부 훑었고 유명 식당과 디저트 가게를 섭렵하기도 했다. 10년쯤 그 패턴이 반복되니 지겨워졌다. 만사가 귀찮아 호텔 방에 틀어박혀 종일 자다온 해도 있었다. 삼심대 중반부터는 그 시간을 조금 편안하게 보내기로 했다. 지하철을 타고 낯선 역에 내려 그 동네를 천천히 산책하다 마음을 끄는 식당에 들어가 동네 사람들 사이에 섞여 밥을 먹고 눈에 띄는 서점에 들어가 그림책을 한 권 사서 역시 마음을 끄는 커피숍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며 책을 보는 패턴이었다. 그 패턴을 5년 정도 반복했을 때 카페 구루미를 발견했다.
고양이 한 마리가 '구루미'라는 글자와 호두 그림이 그려진 나무 잎간판 옆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가게 안에서 커피향과 나무 냄새가 풍겼다. 방금 깎은 연필 냄새. 막 바닥에 떨어진 대팻밥의 냄새. 아담한 가게 안에 작은 목공예 소품이 걸려 있었다. 주인은 커피도 팔고 목공예 소품도 판다고 말하며 쑥쓰럽게 웃었다. 나는 그 후로 매년 그 가게에 갔다. 그 사람이 만든 커피를 두 잔씩 마셨고 그 사람이 만든 빵을 밥 대신 먹었다.
내가 사 간 그림책을 읽어주고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문장은 쉽게 풀어 설명해주었다. 그럴 때면 어느새 낯을 익힌 고양이가 우리 옆에 앉아 골골거렸다. 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었다. 구루미 라테 아로니아 바로네즈 3세랍니다. 그 사람이 그림책을 읽어줄 때처럼 다정하게 설명했다. 고양이의 털은 하얀 우유 거품과 에스프레소가 섞여가는 라테 색깔이었다. 이 고양이는 근처 아로니아 농장에서 구조되었어요. 형제들에게 따돌림을 당했는데 어미가 외면했대요.
나는 가게를 나올 때마다 내년에 또 올게요, 라고 인사했다. 언젠가는 크게 용기를 내어 내가 묵는 호텔과 방 번호를 알려주었다. 밤에 만난 그 사람의 몸은 따뜻하고 둥글었다. 다음 날 아침 헤어지면서 그 사람이 처음으로 물었다. 내년에도 또 오나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그 다음 해 일본에 가지 않았다. 사장과 달리 나는 그 사람을 기다리게 했다.
< 한줄평 > 나는 내 체력을 과신하지 않는다. 언제든 고장날 수도 어디서든 힘들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늘 상기하고 살아가는 삶이다. 그래서 나는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을 가능성이 열려있다. 무궁무진한 창창한 나의 미래를 항상 생각하고 꿈꾼다. 우울한 현실이 잠시잠시 나를 침범해도 그것에 매몰되지 않고 헤엄쳐 벗어나오는데에 소설보다 봄 작가의 인터뷰가 큰 도움이 되었다. 때로는 소설 그 자체 보다도 인터뷰가 더 크게 와 닿은 순간들이 많았다. 에스프레소가 따뜻한 스팀 우유와 섞이는 순간의 색감을 가진 그 고양이의 이름이 길었던 것 처럼 말이다.
나는
나는 재ㅇㅇㅇ
나는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