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브 마이 카>
- 그리고 그녀는 어느 것 하나 설명해주지 않은 채 가후쿠가 사는 세계에서 사라졌다
하지 못한 질문들과 듣지 못한 대답
- 어떻게 말해야 할까... 나는 이해하고 싶었어. 왜 내 아내가 그 남자와 자게 되었는가, 왜 그와 자야 했는가. 적어도 맨 처음 동기는 그거였어.
- 아니 이해하지 못했어. 그는 가졌고 나는 가지지 못한 것이 몇 가지 있었을 거야. 아니, 아마 많이 있었겠지. 하지만 그중에 어떤 것이 아내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그것까지는 모르겠어. 인간이 그렇게 세세한 핀포인트 수준에서 행동하지는 않으니까.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는다는 건, 특히 남자와 여자가 관계를 맺는다는 건, 뭐랄까, 보다 총체적인 문제야. 더 애매하고, 더 제멋대로고, 더 서글픈 거야.
- 우리가 누군가를 완전히 이해한다는 게 과연 가능할까요? 설령 그 사람을 깊이 사랑한다 해도 가후쿠는 말했다. 우리는 이십 년 가까이 함께 살았고 친밀한 부부이자 서로 신뢰할 수 있는 친구라고 생각했어. 어떤 일이든 솔직하게 이야기한다고 말이야.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어.
- 하지만 분명히 말해 그리 대단한 놈은 아니었어. 성격은 좋은지 모르지. 핸섬하고, 웃는 얼굴도 근사해. 적어도 약아빠진 인간은 아니었고. 하지만 경의를 품을 만한 인간도 아니야. 솔직하지만 깊이가 부족해. 약점이 있고, 배우로서도 이류였어. 그에 비해 내 아내는 의지가 강하고 속 깊은 여자였지. 시간을 들여 차근차근 조용하게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었어
"그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가후쿠 씨 자신에 대한 모욕으로도 느껴진다 그런 말인가요?"
가후쿠는 잠시 생각하고 솔직하게 인정했다.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부인은 그 사람에게 애당초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던 게 아닐까요?" 미사키는 매우 간결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잤죠."
<셰에라자드>
- 셰에라자드는 일주일에 두 번꼴로 '하우스'에 왔다. 요일은 정해져 있지 않지만 주말에 오는 법은 없었다. 주말은 아마도 가족과 함께 보내야 해서일 것이다.
- 초등학생 때 수족관에서 처음 칠성장어를 보고 그 생태에 대한 설명을 읽었을 때, 내 전생이 이거였구나, 하고 퍼뜩 깨달았어. 왜냐면 내게는 아주 또렷한 기억이 있거든. 물 밑바닥 돌에 달라붙어서 수초 틈에 섞여 하늘하늘 흔들리거나 위를 지나가는 통통한 송어를 쳐다본 기억이
- 그 행위는 의무적인 것은 아니지만 특별히 감정이 담긴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기본적으로 그 행위에 과도한 열정이 담기는 것을 경계하는 듯 했다. 자동차학원 강사가 기본적으로 교육생의 운전에 과도한 열정을 기대하지 않는 것처럼
- 자물쇠가 바뀐 것을 알고 셰에라자드는 물론 크게 낙담했지만 동시에 안도하기도 했다. 누군가가 등뒤로 돌아가 자기 어깨에서 무거운 짐을 내려준 것 같았다. 이제 더이상 그 집에 몰래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만일 자물쇠가 바뀌지 않았다면 분명 몇 번이고 더 그 집에 침입했을 것이고 그녀의 행동은 회를 거듭할수록 과감해졌을 게 틀림없다. 그리고 늦건 빠르건 파국을 맞았을 터였다.
- 이제 더이상 그의 집에 갈 수 없다(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자 셰에라자드의 머리는 조금씩이나마 원상태를 되찾아갔다. 의식이 서서히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교실에서 멍하니 백일몽에 빠져 있는 일도 줄어들고, 띄엄띄엄이긴 해도 선생님의 목소리가 제대로 귀에 들어왔다.
- 빈집털이를 그만두고 조금 지나자 그에 대한 강한 동경심이 서서히, 하지만 분명하게 옅어져갔어. 얕은 해안에 슬슬 썰물이 지듯이.
- 그녀는 어쩌면 이대로 모습을 감출지도 모른다. 그는 그것을 염려했다. 결코 일어날 리 없는 일이 아니다. 셰에라자드와 그 사이에는 어떤 개인적인 규칙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연히 누군가에게서 주어진 관계이고 그 누군가의 기분 하나로 언제든 끊어질 수 있는 관계였다. 말하자면 두 사람은 가느다란 실 한 올로 가까스로 이어져 있을 뿐이다. 아마도 언젠가, 아니, 틀림없이 언젠가 그것은 끝을 고할 것이다. 실은 끊기리라. 늦냐 빠르냐의 차이일 뿐이다.
- 셰에라자드가 떠나버리면 하바라는 더이상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다. 이야기의 흐름이 거기서 뚝 끊기고, 이야기되었어야 할 미지의 신기한 이야기들은 이야기되지 않은 채 사라져버린다. 또 어쩌면, 그는 모든 자유를 빼앗기고 그 결과 셰에라자드뿐 아니라 다른 모든 여자에게서 멀어져버릴지도 모른다.
여자를 잃는다는 것은 말하자면 그런 것이다. 현실에 편입되어 있으면서도 현실을 무효로 만들어주는 특수한 시간, 그것이 여자들이 제공해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