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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어의 맛

[도서] 웅어의 맛

구효서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생소한 이름 웅어는 맛이 좋아 조선시대부터 임금님이 드시던 귀한 물고기로 수라상에 올랐다고 합니다. 회로 먹으면 살이 연하면서도 씹는 맛이 독특하고 지방질이 풍부하여 고소하나, 익혀 먹으면 아무런 맛이 나지 않는 웅어는 신비한 생선임에 틀림없습니다. 소리, 맛, 색깔, 향기, 감촉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묵직하고 깊은 필체, 서정성과 탄탄한 주제 의식을 겸비한 구효서의 소설집이 문학사상에서 출간되었습니다. 사유하는 힘을 지닌 소설을 써온 구효서저자는 이번엔 반야심경의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을 소재로 한 독특한 오감소설을 내놓았습니다.

 

나는 그랬다. 카미노인의 넋을 끌어다 바다에 빠뜨리거나 미가를 포구에 주저앉혀 홀로 나이 먹어 가게 한 것이 나인것처럼 보이나, 실은 그들 스스로 결심하고 선택한 삶이었다. 다만 나와 대면케 된 이루호 그리되었으니 ... (중략) 누가 나를 보고 이라고 하거나 존재의 빛이라 한들, 그것이 내 이름은 아니어서 이나 빛 따위로는 나를 설명할 수 없으니... 나는 다만 봄 꽃잎에 떨어지는 붉은 기운과 하늘 및 바다를 가르는 푸른 서슬, 그리고 해수면에 부서지는 눈부심 따위를 가능케 할 뿐이다. 은결은 내가 아니라 내가 있다는 사실을 매개하는 물 위의 반짝임이다. ---p.33 색 色

 

창밖은 그토록 밝은 빛으로 가득했다. 빛을 보는 순간 그것이 오랫동안 염원하던 것 혹은 염원하던 곳이었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빈틈 하나 없이 가득한 무엇, 더할 수 없는 출일 혹은 환성이라 부를 수 있는 곳, 빛이 두 겹이라는 느낌 또한 생애 처음이었다. ---p.194 味: 맛 미

 

신선한 주제와 서술 기법을 선보이며 보고 듣고 느끼는 감각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감각에 무조건적으로 의존하고 있지는 않은지 독자를 의심하고 경계하게 만드는 작품이라고 합니다. 각 단편은 감각인 ‘나’가 이야기를 이끌지만 화자를 바꾸어 등장인물에 입장에서 서술하기도 했습니다. 화자의 서술과 주인공의 독백이 서로 교차하는 새로운 서사 기법의 소설을 읽으므로 잠들어 있는 감각세포를 깨워줄 것으로 기대되는 작품입니다.

 

 

1983년 그녀가 떠난 해를 K는 정확히 기억했습니다. 삼십 육세의 짧은 나이에 그녀의 묘비는 2021년이었고 비석에 음각으로 새겨진 글자들의 모서리는 손을 벨 만큼 날카로웠습니다. 나는 이렇게 죽는다. 남들이 뭐라든, 이렇게 죽는 나는 행복 하다고 까진 할 수 없지만 슬프지도 무섭지도 않다. 후회 없는 내 사랑을 완성코자 할 뿐 이렇게 남겨진 그녀의 편지는 유서가 되었습니다. ‘내 사랑을 완성코자’라는 그녀는 죽음으로 사랑을 마무리 했고 오직 자신만의 사랑이 죽는 걸로 완성을 이룬 것입니다. K는 진정한 웅어의 맛을 몰랐습니다. 느끼지는 못했지만 복부의 포만감으로만 많은 양의 웅어를 먹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세상의 맛있는 것들을 맛있게 하는 존재일 뿐, 단것을 달게 하고 신 것을 시게 하는 것, 쓴맛도 짠맛도 없이 모든 맛나는 것들을 만나게 하는 맛이되 정작 누구에게도 무엇에게도 맛보일 수 없는 맛 그것이 K에게는 매우 유감으로 남았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 안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게 해준 작품이었습니다.

 

말. 생각. 감각에 갇히지 않기 위해 ‘오감’에게 펜을 쥐어 주기로 했다.

글의 첫문장을 좋아하고 한동안 책을 읽으면서 수집을 해서 기록으로 남겨 놓기도 했습니다. 은결이라고 했다. 은결-길편지의 첫문장입니다. 맛 미, 집 가, 거의 지워진 간판에 글자는 맛집이라고 하기에는 좀 싱겁고 허망해지는 이름이었지만 미가의 맛을 알기 때문에 하나도 싱겁거나 허망하지 않았습니다. 편지지는 스프링 노트를 뜯은 것이었고 뜯긴 부분을 손끝으로 정성들여 매끄럽게 마무리한 것 바람에 눕는 풀처럼 모든 글자들이 오른쪽으로 일정하게 기울였고 행갈이 없이 이어진 누군가에게 부친 요의 편지였고 그것을 미가가 읽었습니다. 포구에 도착했던 첫날 요는 숙소를 예약한 사람이었습니다. 포구는 미가가 남자와 마지막으로 다녀간 곳, 골수 기증을 받아 두 번의 삶을 살고 있는 미가 남자가 가장 두려운 것은 미가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것, 아픔, 고통 또한 모른 다는 것입니다. 남도의 포구, 도다리쑥국 이제 더 이상 세상에 없는 너만의 바다를 간직하고픈 마음 길편지는 빛의 色이었습니다. 여운이 남고 가슴이 아련해지는 느낌의 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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