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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m.blog.yes24.com/document/7852106



 

 

 

 

 

나를 통과해 모니터에만 꽂혀 있는 당신의 시선이 흥미롭다. 바로 코앞에서 당신의 눈을 들여다보는 나 제로가 여전히 보이지 않는 건지, 아니면 애써 보지 않으려 하는 건지 둘 중에 하나겠다. 하지만 나는 소름끼치는 상상에 이끌리는 당신을 단박에 알아본다. 어둡고 깊은 밤, 이 페이지에 들어와 어디선가 들려올지 모를 낯선 소리와 상상에 감각의 안테나를 세운 당신은 이미 예민해진 상태다. 떠도는 루머이든, 긴 이야기이든, 괴담은 귀와 눈과 입을 잡아당긴다. 괴담에는 신경 줄을 죄는 힘이 있다. 생명력 또한 놀라운데, 질기기가 바퀴벌레도 못 따라올 정도다. 괴담은 수많은 귀와 입을 타넘고 마을을, 지역을, 국경을 넘어 무자비한 병정 개미떼처럼 시커멓게 우글대며, 지나가는 길마다 초토화시켜 가면서 번져간다. 그렇게 시간도 관통하여 과거의 어둠 속 그림자들을 현재 속으로 불러낸다.

 

 

 

 

 

 

 

 

기나긴 시간에 걸쳐 살아남은 괴담들은 많다. 그중 소설과 영화를 넘나들며 여러 버전으로 변주되는 괴담들도 있다. 당신은 몇 가지나 기억하는가. 드라큘라? 좀비? 프랑켄슈타인? 좋다. 그렇다면 그 생명력은 무엇일까? 당신은 대답한다. 그것은 바로 공포라고. 당신은 역시 잘 알고 있다. 고통과 죽음의 위협을 그 어떤 감정이나 감각보다 더 잘 기억하는 인간에게 공포는 태초부터 삶의 일부였다. 인간을 둘러싼 세계의 불가해한 것들에 대한 공포는 자연과 우주를 향한 경외이기도 했다. 그건 인간이 기이하고 소름끼치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창조해내는 이유가 되었다.

 

공포는 어디에서, 어떻게 오는 것일까. 당신은 한번쯤 생각해봤을 것이다. 공포란 상상의 것으로만 여겼던 위협적인 무엇이 갑자기 현실이 되는 순간 발생하는 아찔한 현기증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빙고. 점점 당신이 마음에 든다. 당신은 역시 잘 알고 있다. , 그렇다면? , 당신은 지금 의심하고 있는가? 캐릭터 정령이라는 게 실재하는지? 나 제로가 정말로 수많은 소설 속의 등장인물로 분했던 캐릭터 정령인지? 내 목소리가 사실을 말하고 있는지? 의심하라.

 

 

 

 


 

 

   

 

 

하나의 의심에서 공포는 피어난다. 의심이 얼마나 섬뜩한 공포로 익어가는지를 느끼고자 한다면 모파상의 소설 강물 위에서를 읽어보라. 보트를 탄 주인공이 강 한복판에서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이 배를 붙잡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그 느낌이 의심으로 변질되는 건 한순간. 다시 의심은 시간이 흐를수록 견딜 수 없는 공포로 변해간다. 그는 겁을 먹을수록 단지 뭔가에 닻이 걸린 것뿐이라고 마음을 다잡는다. 결국 주위 어부들의 도움으로 닻을 끌어올리는데, 닻과 함께 끌려 올라온 건 한 여인의 시체였다는 데서 공포는 증폭된다. 초자연적인 요소는 전혀 없다. 이 이야기가 공포스러운 이유는 서서히 피어오르는 어떤 의심의 힘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공포는 내면적이다.

 

공포가 내면적이라는 맥락을 당신은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에서 확인한다. 하나의 강박이 되는 사소한 것들 앞에서 공포로 신경이 예민해지는 주인공에게 당신은 감정이입을 한다. 공포가 존재한다는 것을, 공포의 대상이 실재하는가와 상관없이 공포를 느끼는 가 있다는 것을 감지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그 유명한 명제처럼, ‘나는 공포를 느낀다. 고로 공포를 느끼고 궁리하는 나는 존재한다는 걸 확신하는 것이다.  

 

 



 

 


 

 

 

 

카프카에 와서는 그 내면이 일상성과 빚는 갈등에서 공포가 온다. 유령이나 괴물에 대체된 것으로서 등장인물에게 굴레가 되어 억압하는 메커니즘 속에 잠복해 있는 공포다. 일상이 되고 환경이 되는 관료주의, 도시, 가족은 때론 너무 익숙해서 당신이기도 하다. 유령, 귀신, 뱀파이어, 프랑켄슈타인, 좀비,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등은 실제로 존재하며, 이들이 당신의 그림자와 같은 자격으로 당신의 내면에 머문다는 사실에, 당신이 마냥 고개를 저을 수만은 없을 것이다. 당신의 내면에 망치와 쇠말뚝으로 억압당해 절규하는 드라큘라가 들어앉아 있음을 부정할 수도 없을 것이다. 괴담은 우리 안에 존재하는 어둠과 위협들을 우리가 발견하도록 도와준다. 이는 현실을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대응하도록 해주는, 당신이 외면하느라 감지하지 못했던 괴담의 역할이자 매혹인 지점이다.

 

 


 

 

 

 

 

 

엿보는 자인 당신은 괴담을 거울삼아 스스로를 엿본다. 거울은 당신의 모습을 뱀파이어로, 악마로, 좀비로 비춰준다. 당신은 그 모습 속에서 두려워하는 당신을 본다. 사실 그 자체가 공포스럽겠다. 그래도 천성이 엿보는 자인 당신은 얼굴을 가린 손가락 사이로 괴담이라는 텍스트를 끊임없이 엿본다.

 

. 당신은 여전히 의심 중인가? 내 존재를? 내 목소리를?

 

계속 의심하라. 의심에서 공포가 시커멓게 밀생하는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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