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인지 코미디인지 헤어나기 힘든 유머를 장착한 추리 소설은 언제 다시 봐도 즐겁다.
특히 이 다섯 권의 책은 종이가 누렇게 되도록 끌어안고 사는 중인데
많은 추리소설 애호가들이 꾸준히 볼 수 있도록 절판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 독약 한 방울 A Dram of Poison (1956)
- 저자: 샬롯 암스트롱 Charlotte Armstrong (1905-1969)
깁슨 씨는 대학에서 시를 가르치는 50대의 독신 남자이다. 예의바르고 반듯한 신사이기는 하나 소심한 성격에 세상물정에도 어두운데다 그 나이가 되도록 여자를 모르고 살아온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던 그가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행복한 가정생활을 하는가 싶었는데 어느 날 아내와 이웃집 남자에 대해 생겨난 의혹의 불씨는 자살 충동을 일으키게 만든다. 대학 연구실에서 슬쩍한 작은 독약 병이 몰고 온 엄청난 대소동극.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람들의 행렬에 웃음을 멈출 길이 없다. 그야말로 짜릿한 결말까지 최고 중의 최고다.
• 백모살인사건 The Murder of My Aunt (1934)
- 저자: 리처드 헐 Richard Hull (1896-1973)
뚱뚱보에 게으름쟁이인 에드워드는 사사건건 자기를 구박하는 백모를 죽이기로 작정한다. 나름대로 완전범죄를 꿈꾸지만 자동차사고도 방화도 독살도, 착착 준비해 완벽하게 실행했다고 생각했던 계획은 번번이 실패하고 마는데, 겁 많고 멍청한 이 소악당의 결정적 실수는 일기를 쓴다는 것. 백모가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건 우연일까, 필연일까. 에드워드의 계획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도서(倒敍)추리소설의 형식으로 쓴 고전으로 정통추리의 재미는 없을 수 있으나 웃긴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라는 격언을 되새기게 하는 폭소소설이다.
• 시행착오 Trial and Error (1937)
- 저자: 앤소니 버클리 Anthony Berkeley (1893-1971)
중년의 평론가 토드헌터는 주치의로부터 동맥이상으로 앞으로 몇 달밖에 살지 못한다는 선고를 받는다. 그가 남은 인생의 버킷리스트로 생각한 것은 타인을 위한 유익한 살인. 확실한 대상을 골라야한다는 점이 중요하기에 신중하게 백해무익한 인물을 찾아다니다 우연히 인기 여배우를 알게 되고 거의 마녀에 가깝다는 사실을 파악한다. 뒤이어 일어난 여배우 살인 사건. 그런데 엉뚱한 청년이 체포되었다는 사실을 안 토드헌터는 그의 무죄와 자신의 유죄를 입증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닌다. 위트가 넘치지만 씁쓸함도 남는 심리미스터리. 세상에 죽어 마땅한 사람이 있는가? 요즘도 논란이 되는 난제다.
• 가짜 경감 듀 The False Inspector Dew (1982)
- 저자: 피터 러브시 Peter Lovesey (1936-)
1920년대를 배경으로 대서양을 횡단하던 호화여객선 루시타니호에서 벌어지는 선상 미스터리. 완벽한 남자와의 만남을 꿈꾸는 알머는 치과의사 월터를 보고 사랑에 빠진다. 아내가 자신을 버리고 미국으로 떠나려하자 절망하는 월터. 이에 알머는 리디아를 죽일 계획을 월터에게 제안하고 함께 배에 탑승한다. 그런데 한 여자 승객이 죽고, 선장은 유명한 경감 '듀'라는 가명으로 배에 오른 월터에게 사건 해결을 부탁한다. 이어지는 황당한 전개, 다양한 인간군상, 가짜와 진짜의 대비가 마치 채플린의 희극을 보는 듯 흥미로운 작품으로 일종의 로맨틱 코미디로도 볼 수 있는 유쾌한 소설이다.
• 월장석 The Moonstone (1868)
- 저자: 윌리엄 월키 콜린즈 William Wilkie Collins (1824-1889)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이던 시대, 영국군 장교가 힌두교 사원에서 월장석을 훔쳐낸다. 그걸 안 인도인이 “월장석이 당신과 당신 자손들에게 재난을 가져다 줄 것이다!”라고 저주를 하고, 과연 인도 사원의 신비한 보물인 황색 다이아몬드 ‘월장석’에는 어두운 재앙의 그늘이 따른다. 영국 최초의 추리소설이자 T S 엘리어트가 최대 최고의 미스터리라고 절찬한 명작. 1년여에 걸친 월장석 도난사건은 사건관계자 7명의 시각에서 그려지는데, 지루하게도 느껴질 수 있는 이 작품을 코미디로 분류한 결정적인 이유는 늙은 집사가 인생지침서로 활용하며 신주단지처럼 애지중지하는 책 ‘로빈슨 크루소’ 때문이다. 그야말로 명작 속의 명작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