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해서는 안 될 가장 악질적인 범죄는 유괴가 아닐까.
어쩌면 살인보다도 악랄하게 여겨지는 이유는 보호자, 특히 부모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는다는 것.
그것도 몸값을 받기까지 여러 날에 걸쳐 정신적인 고문을 가할 뿐 아니라
그 비인간적인 계획을 세세하고 꼼꼼하게 오랫동안 세운다는 점.
그리고 용케 살아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심각한 정신적 후유증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사례를 볼 때
사람의 목숨을 담보로 돈을 요구하는 행위는 결코 용서할 수 없는 범죄임에 분명하다.
그런 사연도 한(恨)도 많을 수밖에 없는 범죄이기에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이기도 하다.
하지만 유괴를 소재로 하는 소설이라 하여 가슴 아픈 이야기만 있는 건 아니다.
워낙 다양한 종류가 있어 작가들이 어떤 식으로 사건을 다루는지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다.
• 아기는 프로페셔널 Snatch! (1969)
- 레니 에어드 Rennie Airth (1935-)
심각할 수밖에 없는 유괴사건이 이토록 우스꽝스러울 수 있다니 기발한 발상에 자꾸만 웃음이 터져 나오는 수작이다. 4인조 악당이 주 200달러에 아기를 빌려 부잣집 아기와 바꿔치기하는 유괴방식을 생각한다. 빌린 프로페셔널 아기는 늘 방글방글 음식도 가리지 않는데 25만 달러가 걸린 부자 아기는 빽빽 울기만하는 골칫덩이다. 누구나 웃는 아기를 좋아하는 법. 교섭이 통하질 않는 대위기에 봉착한 유괴범들 사이에도 분란이 일어나기에 이른다.
• 파일7 The Seven File (1956)
- 윌리엄 P. 맥기번 William Peter McGivern (1918(1922?)-1982)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기승전결이 잘 짜인 작품이다. 유괴범 각각의 캐릭터가 분명히 드러나는 구성으로 폭력적인 악당, 단순무식한 남자, 마음 약한 여자의 인간 심리를 엿볼 수 있다. 어느 날, 절름발이 사나이가 뉴욕 2번가의 호화저택에 전화수리공으로 방문한다. 3주가 지난 깊은 밤 그 집의 어린 딸과 보모가 사라지고 20만 달러를 요구하는 협박장이 날아든다. FBI의 수사망이 펼쳐지는 가운데 유괴범들의 은신처에 한 사나이가 등장하면서 예기치 않은 상황에 접어들게 된다.
• 킹의 몸값 King's Ransom (1959)
- 에드 맥베인 Ed McBain (1926-2005)
유괴된 아이가 내 아이가 아니라도 몸값을 지불할 것인가 하는 도의적 질문을 던지는 87분서 시리즈 중 명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부유한 마을에 사는 더글라스 킹의 집에 잠입해 아이를 납치한 유괴범. 그런데 유괴하려던 아이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목숨 값을 내놓으라는 뻔뻔한 요구에 킹은 분노하지만 몸값을 내놓으면 자신이 지금껏 쌓아온 모든 것을 내놓아야하는 상황. 아이의 목숨이냐 자신의 목숨과도 같은 돈이냐 딜레마에 빠진다.
• 미스 블랜디시 No Orchids for Miss Blandish (1939)
- 제임스 하들리 체이스 James Hadley Chase (1906-1985)
하드보일드 파의 역사로 기록되는 체이스의 문제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이지만 폭력성이나 가학성이 너무 짙어 솔직히 다시 읽고 싶은 기분은 나지 않는다. 부잣집 딸인 미모의 미스 블랜디시가 납치된다. 몸값을 지불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범인도 못 잡고 아버지는 돈만 날리고 딸은 돌아오지 않는다. 결국 아버지는 사립탐정에게 딸의 행방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하는데 갱단들이 얽혀 있는 이 사건의 끝은 결코 해피엔딩을 맞이할 수는 없으리라.
• 교황의 인질금 Peter's Pence (1974)
- 존 클리어리 Jon Cleary (1917-2010)
호주 출신의 작가 존 클리어리의 작품으로 전쟁과 여행을 통한 풍부한 인생 경험을 살려 다양한 저술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1974년에 미국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어쩌다 교황을 납치하게 된 IRA(북아일랜드 공화국군) 요원들의 좌충우돌 분투기를 그리고 있다. 어처구니없이 실패를 거듭하는 요원들은 이제 교황을 돌려보낼 수도 데려갈 수도 없는 진퇴양난에 빠지는데 그 와중에 교황을 암살하려는 독일인까지 등장한다. 극한 상황의 인간 심리를 파헤친 수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