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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의 내일

[도서] 지금부터의 내일

하라 료 저/문승준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일본판 하드보일드를 고집하는 작가 하라 료原りょう의 ‘사와자키 탐정 시리즈’. 오랜 침묵 끝에 2부가 시작되었다. 미국 하드보일드 소설을 대표하는 레이먼드 챈들러에게서 영향을 받았음을 공언하고 있는 저자는 <기나긴 이별>에 필적하는 대표작으로 만들고 싶다는 의지를 불태운 끝에 소설 [지금으로부터의 내일それまでの明日]을 <어리석은 자는 죽어야 한다> 이후 무려 14년 만에 완성했다. 필립 말로가 중년이 되었듯이 사와자키 역시 중년이 되었다. 뭐 첫 등장에서도 젊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청년 아들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나이가 든 사와자키의 모습에서 삶의 피로와 공허함은 더욱 진하게 느껴진다. 다만 지난 3부작과는 결이 조금 달라지면서 전반적으로 힘이 빠져버렸다. 작중 탐정 사와자키가 나이를 먹었듯이 작품도 나이를 먹었구나 하는 느낌, 기대가 컸던 만큼 조금 아쉬웠다.

 

<기나긴 이별>에는 필립 말로와 친구가 되는 독특한 매력의 남자 테리 레녹스가 있다면 이 작품에는 핸섬 청년 가이즈가 등장한다. 변함없이 와타나베 탐정사무소의 간판을 내걸고 있는 사와자키의 앞에 한 신사가 나타났다. 금융회사 지점장 모치즈키라는 명함을 내민 그는 아카사카의 한 요정 여주인의 신변조사를 의뢰한다. 그러나 조사에 의하면 그녀는 이미 사망한 상태이고 요정은 여동생이 뒤를 잇고 있으며 은행 대출은 생각도 하지 않고 있는 상태. 뭔가 수상쩍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의뢰인에게 보고를 하러 들른 금융회사에 하필 그때 강도가 들이닥쳤다. 강도 사건은 얼추 수습이 되었으나 지점장은 돌아오지 않은 채 홀연히 자취를 감추고, 지점장실의 금고에는 출처를 알 수 없는 돈가방만 남았다. 때맞춰 야쿠자 조직들이 사무소를 기웃거리기 시작하는 한편, 강도 사건 때 알게 된 청년 가이즈가 모치즈키의 행방을 찾는 사와자키를 돕는다. 그는 어째서 사와자키의 주변을 맴도는 것일까. 의뢰인에게 맡은 바 일은 끝까지 완수한다는 모토를 여전히 지키고 있는 사와자키. 스스로 택한 길에는 고독이 드리워져 있지만 진실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정을 베푸는 데 인색하지 않은 진정 멋진 사나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 스마트폰은커녕 휴대전화도 없이 아날로그 스타일을 고집하는 탐정임에도 일처리 솜씨는 뛰어나다. 변하지 않는 캐릭터라 더욱 친근감이 드는 사와자키의 내일은 또 어떤 모습일지 몰라도, 이 시대에 남은 고고한 파수꾼으로서 신주쿠 뒷골목의 와타나베 탐정사무소를 묵묵히 지키고 있으리라는 건 분명하다. 시즌2를 시작하는 작품이라고 소개를 했으니 다음 이야기는 조금 빨리 진행되지 않을까 기대를 걸어본다. 긴장감이 줄어든 대신에 인간미가 배어든 작풍도 나름 운치가 있으니까 말이다. 삭막한 현대사회와 다면적인 인간심리를 예리한 시선으로 그려가는 저자의 ‘사와자키 시리즈’는 감각적인 문장과 재치 있는 대화가 돋보인다. 비정한 하드보일드 계에 기품을 더했다고나 할까. 어딘가에 어슴푸레하나마 등불 하나는 꼭 밝혀두는 라스트가 주는 여운도 이 시리즈의 매력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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