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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망인 채 완전한 축제

[도서] 엉망인 채 완전한 축제

술라이커 저우아드 저/신소희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서평] 

엉망인 채 완전한 축제 

술라이커 저우아드 저 / 신소희 역

윌북 : 2022년 1월 22일

 


 

이 책 『엉망인 채 완전한 축제』는 술라이커 저우아드가 대학을 갓 졸업한 22살에 급성 골수성 백혈병을 진단받고 1,500일간의 투병 생활과 완치 후 회복 과정을 자신만의 대담한 언어로 생생하게 기록한 삶의 드라마이며, 상황을 묘사해 나가는 필력이 대문호 작품 못지않다. 

 

 저자인 술라이커 저우아드는 아이비리그 대학인 프린스턴 대학을 최고의 성적으로 졸업하고, 프랑스어와 아랍어를 구사할 수 있는 상당한 능력의 소유자로 미래가 촉망받는 22살의 젊은 여성이다.

 술라이커는 스위스인 어머니 안과 튀니지인 아버지 애디 사이에서 장녀로 태어났으며, 술라이커에게 골수이식을 해준 남동생 애덤과 함께 단란한 가정에서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났다.

 서로의 개성을 존중하고,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가족 분위기는 술라이커를 독립적이고 주도적인 사람으로 성장시켰다.

 

  그런 작가의 삶에 먹구름이 드리운 건 대학 졸업반 시기에 시작되어 밤새 잠 못 이루게 하던 가려움이었다. 

 

 이 책은 술라이커가 백혈병 진단을 받고 하루아침에 미래를 보장받을 수 없는 암울한 환자로 살아가야만 하는 심연의 괴로움과 병원에서의 투병 생활 그리고 완치 후의 회복과정을 작가만의 생생한 언어로 자세하게 기록해 나간 삶과 죽음을 다룬 대하소설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단지 작가의 투병일기를 기록한 일기 형식의 책인줄 알았다. 그런데 점점 책을 읽어가면서 작가의 뛰어난 필력과 생생한 경험담으로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몰입감을 느꼈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책 내용뿐만 아니라 작가만의 독특한 문체에 매료되어 읽게 된다. 그리고 대단한 필력을 자랑하는 작가들의 책을 소장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예전에 나도 삼국지를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문체에 끌려서 10권으로 구성된 삼국지 전집을 전부 구매한 적이 있었다.

 

 이 책은 소장하기에도 결코 부족함이 없는 책이다. 요즘은 단순히 지식이나 내용만 주입하는 책은 사람들이 읽지 않는다. 왜냐하면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에서 검색만 하면 어렵지 않게 관심있는 분야의 지식이나 경험담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문호들 못지않은 대단한 필력과 생생한 경험담을 통해 깨닫게 되는 삶의 심오한 진리들을 알아가기 위한 여정을 이 책과 함께 하길 바란다.

 

 이 책은 1부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작가가 백혈병 진단을 받기 전과 후의 삶의 변화 등을 기록하였고, 2부는 백혈병 완치 후의 삶을 회복하기 위해 떠난 100일 간의 여행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책과 함께 떠나는 여정★

              

 

 

 ▣ 1부

 


 튀니스에서 대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런던과 파리로 유학을 떠났고, 마침내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불문학 학위를 받았다.

 교수인 아버지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말쑥한 흰 리넨 정장과 중절모 차림에 누구나 뒤돌아볼 정도로 근사한 외모, 그리고 언어에 대한 경이로운 기억을 지닌 분이었다. (...)

 나는 아버지 서재의 팔걸이의자에 앉아 책을 읽는 걸 좋아했다. 천장에 닿는 높다란 책장에는 고전문학, 시, 소설, 문학 이론 등 수백 권의 책이 꽂혀 있었다. (...)

 대학에 들어가서는 아버지의 학구적 관심사를 좇아 근동학을 전공했고 복수전공으로 프랑스어와 젠더 연구를 선택했다. (...) 

<p.64-65>

 

 작가의 문학적 역량과 다양한 언어구사 능력은 학구적인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술라이커는 훌륭한 부모밑에서 밝은 내일을 꿈꾸며 자신의 꿈을 위해 열심히 살아왔다. 작가는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장르의 책들을 많이 읽었고, 불문학 교수인 아버지의 가르침 덕분에 프랑스어로 씌어진 책들까지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앞날에 대한 부푼 기대감으로 도전하고 성취하며 살아왔을 술라이커가 생의 전환점에서 겪었을 트라우마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을까.....

 

 

 앞으로 100일 동안은 아무리 몸이 아프거나 피곤해도 날마다 글을 쓰기로 다짐했다. 딱 한 문장만이라도.

 사람들은 비극적인 소식을 들으면 '말문이 막힌다'는 표현을 쓰곤 한다. 하지만 내 말문은 전혀 막히지 않았다. 다음날, 그리고 그다음날에도 언어가 물줄기처럼 터져 나왔다. 처음엔 다소 느렸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빠르고 세차게 넘쳐 흘렀다. 내 머리는 마치 오랜 잠에서 깨어난 것 같았다. (...) 미래에 관한 내용은 없었고 문장 하나하나가 현재에 근거한 것이었다. (...) 투병 생활이 내 시선을 내면으로 돌려놓은 것이다. (...)

 환자는 자신에 대해 알게 된 내용을 보고하고 서술해야 한다. (...) 글을 쓰는 행위는 내 개념과 언어로 상황을 통제하고 재구성하는 일이었다. "나를 표현할 수 있는 강력한 언어, 문학이 제공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지넷 윈터슨은 이렇게 적은 바 있다. "문학은 은신처가 아니라 발견의 장소다." 

<p.146>

 

 100일 프로젝트를 통해 작가는 다시 일어날 힘을 얻는다. 작가에게 글쓰기란 불확실한 미래에 적응하고 나아가 살고 싶은 간절한 마음의 의지와 희망이다.

 


 물론 너무 지쳐서 몇 마디밖에 적을 수 없는 날들도 있었다. 하지만 일기 쓰기는 언어에 대한 애정을 되살려주었고 나아가 독서를 다시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어머니가 선물해준 [프리다 칼로의 일기] 양장본을 탐독했다. (...) 

 교통사고를 당하기 전 칼로의 소망은 의사가 되는 것이었다. (...) 1926년 교통사고를 당해 병상에 눕기 전까지는 그림을 그릴 생각조차 해본적이 없었다. (...)

 칼로는 격리 상태를 은유와 의미가 넘치는 공간으로 바꾸어놓았다. (...) 자기 얼굴을 보면 자화상을 그렸고, 그 그림들로 역사에 남은 유명한 화가가 되었다.

<p.147>

 100일 프로젝트를 통해 술라이커는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어떤 책에서 일기를 쓰면 마음의 찌꺼기들이 배출이 되어 우리의 마음이 안정을 찾고 힘을 얻는다고 했던 대목이 생각이 난다.

 

 일기 쓰기를 통해 마음의 안정을 찾은 술라이커는 어머니가 선물해 준 『프리다 칼로의 일기』를 읽고 많은 깨우침을 얻는다. 이 책은 교통사고를 당한 칼로가 병상에 누워 예술로 고통의 삶을 승화시켜 마침내 유명한 화가가 되었다는 칼로의 투병 생활을 담고 있어서 그 의미가 크다.

 



 칼로에게 코르셋은 고문 기구이자 미용 도구, 구속이자 영감의 원천이었으며 실존과 이력의 궤적과도 같았다. (...) "내가 그림을 그리는 건 너무나도 자주 외로워지기 때문이다. (...) 나는 나의 뮤즈다. 내가 가장 잘 아는 주제이자 더욱 잘 알고 싶은 주제이기도 하다."

 이제 칼로는 장애인과 고통 받는 자들의 수호성인이자 신화에 가까운 존재가 되었다. (...)

 하지만 칼로의 책은 내 안에 있던 뭔가를 일깨웠다. 나는 침대에 묶여서도 고통을 창작의 소재로 승화시킨 여러 작가와 예술가의 계보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앙리 마티스는 장암을 앓던 와중에 베네치아의 로사리오 성당 디자인을 구상했다. (...) 마르셀 프루스트는 어린 시절부터 그를 괴롭힌 지독한 천식과 우울증으로 누워 지내면서도 일곱 권에 이르는 대하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집필다.

<p.148> 

 

 영원한 뮤즈로 기억될 칼로의 일기를 읽게 된 술라이커는 내면에서 뭔가가 깨어나는 부화의 조짐을 느낀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고통을 창작의 소재로 승화시킨 많은 예술 작품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실로 놀라웠다. 또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영원한 고전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란 문학작품이 작가의 심한 천식과 우울증 속에서 탄생한 작품이라는 사실이 왠지 믿겨지지 않는다.

 

 

 로알드 달은 만성 통증이야말로 그를 작가로 만든 창조적 도약대였다고 회상했다. "사소한 비극이 내 정신을 일상적 궤도에서 살짝 벗어나게 하지 않았다면 내가 글을 단 한 줄이라도 썼을지, 심지어 글을 쓸 능력 자체가 있었을지 의심스러워." 그는 친구예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이 예술가들의 상상력을 고양시키고 창조력을 드높여 준 것은 바로 신체적 한계와 제한적인 생활이었다. 칼로가 적었듯이 "높이 날아오를 날개가 있는데 발이 왜 필요하겠는가?" (...)

 내가 침대에 갇혀 있는 동안은 상상력이라는 배를 타고 내 침실의 한계를 벗어나 자유로이 돌아다닐 수 있으리라. (...)

 침대 옆 작은 탁자에 펜과 노트와 종이를 두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책과 시집으로 책꽂이를 채웠으며, 무릎 위에는 책상처럼 쓸 나무판을 올려놓았다. (...) 나는 매일매일 글을 썼다. 분노와 질투와 고통이 바짝 말라붙을 때까지 쓰고 또 썼다.

<p.149>
 

  마침내 작가 술라이커는 자신의 고통과 투병의 삶을 승화시킬 글쓰기와 독서에 전념하게 된다.

  만약 술라이커가 투병생활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글쓰기란 창작 활동에 매달렸을까....

 최고의 학벌과 여러 나라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였던 작가가 만약 건강했다면 지금쯤 아마 자신이 꿈꾸고자 했던 삶의 방식대로 자신의 꿈을 쫓아가며 살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숨은 재능을 발견하지 못한 채 말이다.

 

 

 그 순간 어떤 감정이 몸속에 솟구쳐 흘렀다. 전혀 예상치 못했고 지금 상황에 어울리지도 않는 감정, 바로 안도감이었다. 몇 달이나 오진 속에서 갈팡질팡한 끝에 마침내 나를 괴롭혀온 가려움, 구내염, 무력감의 원인을 밝혀낸 것이다. 나는 거짓 증상을 만들어내는 건강 염려증 환자가 아니었다. (...)

 백혈병 진단은 내 삶을 돌이킬 수 없이 둘로 갈라놓았다. 그 이전과 이후의 삶으로.

<p.72-73>
 

 술라이커가 그동안 여러 증상들로 시달리면서도 정확한 병명을 찾지 못한 채 본인 탓으로 돌렸던 지난 날들에 대한 회한과 정확한 구심점을 찾았다는 안도감을 느꼈을 작가의 마음이 도드라지게 표현된 글이다.

 정확한 병명도 모른 채 찝찝하게 지내왔을 작가의 복잡한 심정들이 백혈병 진단을 받고 마음의 충격이 아닌 안도감을 얻었다는 것이 오히려 짠하게 느껴졌다. 인간의 공포는 무언가 확실하지 않고 불안할 때 생겨난다고 한다. 그동안 원인 모를 몸의 증상들로 술라이커는 얼마나 불안에 떨었을지 짐작이 간다. 

 

 백혈병 진단은내 삶을 돌이킬 수 없이 둘로 갈라놓았다. 그 이전과 이후의 삶으로. 

 "인간은 모두 건강의 왕국과 질병의 왕국, 두 곳의 이중국적을 갖고 태어난다."

수전 손택은 [은유로서의 질병]에 이렇게 썼다.

 " 우리는 좋은 여권만을 사용하길 바라지만, 누구든 언젠가는 잠시나마 다른 쪽 왕국의 시민이 될 수밖에 없다."

<p.255>

 작가의 글에 공감을 하면서 수전 손택의 글을 삽입해 본다.

 


 

 나는 앞으로 내 병에 관해 최대한 자세히 알아보기로 다짐했다. 학술지를 탐독하고, 면담할 전문가 명단을 만들고, 인터넷을 속속들이 뒤져 정보를 긁어모을 것이었다. 내 몸에 일어나고 있는 일을 통제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p.79>

  늘 주도적인 삶을 살아왔던 술라이커다운 생각이다.

 그동안의 삶을 자신의 선택에 따라 잘 살아왔듯이 여러 선택의 분깃점마다 작가의 주체적인 생각과 판단력으로 밀고 나가는 작가의 뚝심이 맘에 든다.

 


 내게 있는 건 그저 단 하나의 단순하고 본능적인 욕구뿐이었다. '살게 해주세요.' 나는 작은 글씨로 벽에 갈겨 썼다. 반쯤은 기도였고 반쯤은 간청이었다.

<p.165>

 이 대목을 읽는데 마음이 울컥했다. 누구보다 절실했을 살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느껴지는 글이다.

 


  우리 모임에는 비공식 자원봉사 체제가 존재했다. 화학요법치료를 받을 때 따라가 주었고 처방전을 서로 비교해보기도 했다. (...) 누군강의 검사 결과가 나쁘다는 소식을 들으면 테이크아웃 음식과 신경 안정제를 사서 집으로 찾아가곤 했다.

<p.217>
 

 술라이커는 같은 암 병동에 있는 환자들과 친구의 연을 맺고 끈끈한 정과 의리로 단합한 연대 모임을 만든다. 서로의 안부를 챙기고 서로를 지켜주는 따뜻한 연대의식이 그들에게 큰 힘을 주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삶은 결코 혼자 살아갈 수 없는 법이다.

 

 

♣  책을 읽고 느낀 여러 단상들 ♣

 

 

 이 책  『엉망인 채 완전한 축제』 를 읽으면서 삶과 죽음에 대한 여러 생각들을 해보게 되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생생한 묘사와 뛰어난 필력이 빚어낸 하모니로 마치 메디컬 드라마를 보는 듯한 현장감에 몰입되었다. 

 

  술라이커가 원인모를 가려움증과 만성염증으로 시달리고 있을때부터 서서히 스며드는 긴장감의 고조, 곧이어 알게 될 청천벽력과 같은 백혈병 진단을 받고 오히려 안도감이 든다는 술라이커의 회복탄력성!

 

 술라이커의 백혈병 진단은 가족들에게 큰 아픔과 슬픔을 안겨주었지만, 술라이커의 치료를 위해 헌신적으로 애쓰는 모습들이 보기 좋았다. 또한 그녀의 주변 친구들과 가족들까지도 술라이커의 치료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며 도와주려는 이들의  마음이 참으로 고맙게 느껴졌다.

 

 마운트시나이 병원의 암 병동에서 무수한 암 환자들의 목숨을 살린 선구적 치료를 개발한 종양 분과 총책임자인 홀랜드 박사는 술라이커의 자상한 담당 교수다. 그는 매일 점심 때마다 찾아와 그녀의 상태를 검사하고, 그녀와 정치, 미술, 문학에 이르는 온갖 화제로 대화를 나눌 정도로 인간적인 면모도 갖추고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홀랜드 박사같은 인간 됨됨이를 고루 갖춘 훌륭한 의사들이 많아졌음 좋겠다.

 몹쓸 병마와 싸우고 있을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의사들이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는 그들에게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힘든 순간 힘이 되어 줄 것이라고 믿는다. 

 

 골수이식 수술을 받기 위해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센터로 옮긴 술라이커의 새로운 병원생활중 알게된 많은 환우 친구들과의 따뜻한 우정과 그들을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던 상실의 슬픔까지 담아낸 술라이커의  『엉망인 채 완전한 축제』는 투병 생활을 뛰어넘는 인생 드라마라고 할 수 있겠다.

 

 작가는 투병생활동안 블로그를 개설했고, 그로인해 많은 편지 사연자들의 조언과 위로를 받았으며,  〈뉴욕 타임스〉 의 편집자가 그녀의 블로그를 보고 신문에 글을 써보지 않겠냐는 연락을 받고 술라이커는 칼럼을 쓰기 시작했다.  '중단된 삶' 이라는 이 칼럼의 부가 영상 시리즈로 에이미 상을 받았으며, 이후 TED 무대에 올라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TED 무대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술라이커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직접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가장 필요한 순간에 함께 있어준 윌과 안타깝게 헤어진 부분에서는 너무나 맘이 무거웠다. 읽으면서도 혹시라도 두 사람이 헤어지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이 컸던 것 같다. 누구의 잘못이라고 하기에 애매한 서로에 대한 애증과 갈등으로 어긋나버린 두사람의 관계가 안타까울 따름이다.

 

 술라이커는 뒤늦게 깨달은 윌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을 깊이 뉘우치고 마음속으로 윌의 행복을 빌어 준다. 윌은 또다른 시작선 위에서 새로운 사랑을 싹틔우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윌의 빈자리를 묵묵한 기다림으로 채워준 존과의 새로운 사랑의 시작은 술라이커의 삶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해 주었다. 

 

 그의 빽빽한 스케줄을 생각하면 여기까지 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하지만 존이 나를 만나기 위해 대륙 반대편까지 달려왔다는 사실이 놀랍지는 않았다. 존은 내가 힘들 때면 항상 찾아와주었다.

<p.397>

 

 윌은 술라이커가 생과 사의 사투를 벌이고 있을 아주 중요한 시기에는 같이 있어주었지만,  그 긴 간병생활로 몸과 마음이 지친 윌은 그만의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우리나라 속담에도 "긴 병엔 효자 없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환자가 되면 누구나 이기적인 성향을 갖게 된다고 말하고 있는 술라이커를 윌은 어쩌면 많이 부담스러워했을  것이다. 작가는 윌과 멀어지는 것이 가장 두렵다고 한다. 걱정이 현실이 된 순간 그녀가 겪었을 마음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가슴이 뻥 뚫린 것 같은 공허함과 상실감을 메우기 위해 오랜 친구였던 존을 만나 관계를 이어가지만 윌이 차지하고 있었던 마음이 너무 커서 쉽게 존을 마음에 담지 못하는 술라이커의 마음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존은 항상 그녀가 힘들 때면 찾아와주었던 고마운 존재라는 사실을 여행의 끄트머리에서 비로소 깨닫게 된다.

 

▣ 2부

 

 4년간의 치료 끝에 작가의 간절한 바램이었던 '살게 해주세요'의 기도는 이루어졌지만 같은 병동에서 치료를 받고 우정을 쌓아갔던 친구들의 죽음으로 커다란 상실의 아픔을 겪었을 술라이커는 완치 후 새로운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게된다. 그리고 반려견 오스카와 함께 약 24,140km의 미국 일주 여행을 친구에게 빌린 자동차로 떠나게 된다.

 100일간의 여정으로 구성된 이번 여행의 목적은 술라이커가 투병중에 있을 때 그녀에게 따뜻한 편지를 보내준 여러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삶의 조언을 듣고 삶의 방향성을 찾기 위함일 것이다.

 

 약 20명의 편지 사연자들을 만나러 가는 도중에 죽은 멀리사의 어머니 세실리아와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아직도 딸을 잊지 못하고 힘들어 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술라이커도 영원히 잊지못할 친구를 생각하며 눈물을 쏟는다.

 사람들이 왜 사후세계를 믿는지 이제는 알 것 같다. 이곳을 떠난 이들이 어딘가 다른 곳, 고통 없는 천상의 세계에서 영원히 살 거라는 믿음이 어떤 위로가 되는지 알 것 같다.

<p.318>

 

 무시무시할 만큼 통찰력 있는 조언도 있었다. 내 마음속의 만화경을 뒤흔들어 모든 걸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게 하는 조언 말이다. 시애틀에서 만난 젊은 남자 아이작을 예로 들어보자. (...) 아이작은 주말 내내 눈물을 터트릴 듯한 얼굴로 얼마 전에 자길 떠난 아내 애기를 했다. 그는 상실감에 힘들어하면서도 객관적인 사고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용서란 마음에 철갑을 두르지 않는 것, 마음을 닫아걸지 않는다는 뜻이에요." (...) "마음을 열고 살기 위해선 고통을 받아들여야 해요. 추한 꼴도 보게 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느낄 수 없거든요."

<p.383>

 

 작가의 여행담을 담은 2부의 글은 정말 주옥같은 글들로 채워져 있기에 읽으면서도 깨닫는 부분들이 많았다.

 같은 숙소에 머물렀던 아이작이 떠나간 아내에 대한 상실감을 용서하는 마음으로 승화시킨 대목이 마음에 와닿았다. 

 

 "슬픔은 잠재울 수 있는 게 아니에요. 함께 살아가는 것이지요. 홀로 짊어져야 하는 것이고요."

<p.391>

 

치유란 앞으로도 항상 내 안에 살아있을 고통과 공존하는 법을 배우되, 고통의 존재를 외면하지 않고 삶을 고통에 빼앗기지 않는 일이었다. 과거의 유령을 직시하고 남아 있는 것을 짊어지며 나아가는 일, 사랑하는 사람들을 언젠가 잃어버릴까 봐 주저하고 망설이는 대신 지금 그들을 힘껏 껴안아주는 일이었다. 캐서린의 경험과 통찰이 마음 깊이 스며든다. (...) "우울과 절망을 떨쳐내고 사랑하는 것들에 집중해야 해요." 나를 침실로 보내며 캐서린은 이렇게 말했다. "그런 체험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뿐이니까요. 곁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해줘요. 지금 살아가는 삶을 소중히 여겨요. 내가 아는 한 인생의 슬픔에 맞서는 데 사랑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도 없거든요."

<p.396>

 

 작가는 미국 오하이에 살고 있는 캐서린의 집을 찾아가서 그녀와 안부를 나누고 그녀에게서 인생에 꼭 필요한 여러 조언들을 듣는다. 캐서린의 사연은 책을 보면 자세하게 알게 될 것이다. 

 

  이 외에도 여행 중 길 위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들과 편지의 사연자들을 만나러 가는 여정과 여행담들은 많이 있다. 여행 중에 작가가 위험에 빠질 뻔했던 긴박한 순간들까지도 작가 혼자 오롯이 견뎌야만했던 100일간의 여행 이야기가 독자들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가장 핵심적인 주제가 되는 문구가 있어서 담아 보았다.

 

 여행에는 확실히 기존 생활방식을 벗어나게 하고 새로운 삶을 끌어내는 힘이 있다.

<p.285>

 

 술라이커의 책은 시간의 순서대로 잘 짜여진 생의 간절함이 묻어 있는 삶의 연대기이자 인간의 생과 사를 다룬 삶의 대하소설이다.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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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아자아자

    반갑습니다.
    예전에 '문학소녀' 님이 계셨었는데
    글 느낌은 그 분 같은데, 그 분이 아니시라면 실례인 것...

    이렇게 긴 리뷰라는 건,
    이렇게 많은 느낌과 감정이란 얘기겠지요.

    인생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포인트를 짚어주셨던 분께서, 혈액암(=백혈병) 투병중이시라고. 작년 말 안부전화드렸다가...200여 종이 있다고 하시던데, 이젠 고비를 좀 넘긴 상태라고...

    시한부 삶을 살고 있다면 매일매일이, 매순간순간이 어찌 소중하지 않으리. 지금 읽는 책이 '어느 날 너의 심장이 멈출 거라 말했다' 입니다.

    2022.01.13 23:30 댓글쓰기
  • 문학소녀

    이렇게 제 리뷰에 소중한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오래전부터 이 공간에서 지내긴했었지요~
    제가 주로 책을 이곳에서 구매해서 읽다보니,
    희한하게도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글쓰는 일에도 관심이 가게되더라구요.
    저를 알아봐주시고 찾아주신 친구분이 계시다는 것이 더없이 반갑고 좋네요!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 가슴 아픈 사연들도 많았는데, 차마 글로 표현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주인공의 이야기에만 촛점을 두게 되었습니다.

    500페이지 가까운 분량의 책이라 처음엔 읽는 것이 부담스러웠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작가의 필력에 매료되어 읽게 되었고 많은 환우분들의 아픈 사연들을 읽으며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친구님의 지인분도 이 책의 주인공처럼 잘 이겨내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지인분의 빠른 완치와 건강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2022.01.14 00:27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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