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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새

[eBook] 벌새

김보라 편/최은영,남다은,김원영,정희진,앨리슨 벡델 공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2019년 9월 가을, 한국은 말 그대로 '핫'했다. 영화 꽤 본다는 사람들이 모이면 벌새 이야기가 끊이지가 않았다. 나도 영화 벌새의 팬을 지칭하는 '벌새단'이 되어 팬들이 모인 오픈 단톡 방에 들어가 꽤 오랫동안 덕질했다. 8월 29일에 개봉한 영화가 계속 상영되고 있으니 가히 그 열기를 알만하다. 

'벌새'는 81년생 김은희가 중학생이던 1994년의 풍경을 그리고 있다. '벌새'의 아빠부터 살펴보자. 그는 고등학생 딸의 무릎을 자주 꿇린다. 이유는 단지 공부를 못해서다. 강남에 있는 학교를 떨어져서 강북에 있는 학교를 다닌다고, 학원을 제대로 안 간다고 은희의 언니 수희는 자주 무릎을 꿇는다. 그는 가족들과 둘러앉아 밥을 먹을 때 큰 소리로 자주 독백을 한다. 너희들을 위해 일하느라 얼마나 고생하는지 일장 연설을 하고 가게에 왔던 진상 손님에게 당했던 기억을 되짚으며 뒤늦게 쌍욕을 한다. 은희가 문구점에서 도둑질을 하다 잡혔을 때는 주인이 그에게 전화 보상을 요구하자 당장 딸을 경찰서에 넘기라고 말한다. 그는 그런 사람이다. '벌새'의 아빠가 이렇게 구체적이기 때문에 주인공 은희의 캐릭터가 영화에서 더 또렷하게 드러난다. '벌새'의 엄마는 방앗간 집을 운영하고 있다. 그녀는 영화 속 장면에서 항상 떡을 만들거나 식탁을 닦는 등 집안일을 하고 있다. 남편이 밥상에서 쌍욕을 할 때 말없이 그 옆에서 물을 내민다. 한날은 자신에게 파스를 붙여주는 은희한테 말한다.

은희야. 너 날라리가 되면 안 돼. 
공부 열심히 해서 여대생이 돼야 해. 
그래야 무시 안 받고, 영어 간판도 잘 읽고 캠퍼스에서 책 가슴에 이렇게 끼고 돌아다니지. 응?


'벌새'의 엄마는 외삼촌(오빠)의 뒷바라지를 한다고 공부를 포기했고 그래서 여대생이 되지 못했다. 영화에서 남자 형제의 존재는 주제를 환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벌새'의 오빠 대훈은 기분이 나쁠 때마다 여동생 은희를 개 패듯이 때린다. 심지어 가족들이 다 있는 앞에서 은희가 자존심을 긁자 분을 참지 못하고 은희의 뺨을 때리고 그녀는 고막이 찢어지게 된다. '벌새'의 은희는 처음 귀 밑에서 무언가 이물감을 만짐으로써 병을 스스로 자각한다'벌새' 은희의 캐릭터는 가족을 대할 때 말고는 솔직하고 분명하다. 학원에서 한문 수업시간에 친구와 키득거리며 선생을 보고 '고돌이 새끼'라고 낙서를 한다. 연애를 할 때도 남자 친구에게 키스하자고 먼저 말하고 혀도 넣어보자고 말한다. 키스가 끝나고 나선 서로 침을 뱉으며 키득거린다. 하지만 가족을 대할 때는 아이는 자신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쭈뼛쭈뼛 기가 죽어 있다. 오빠 대훈이 숨 쉴 시간도 주지 않고 때릴 때도 저항하지 못한다. 이는 가정폭력 피해자의 전형적인 모습이기도 하지만 은희가 그 가정에서 요구받는 역할이 착함과 순종이기 때문이다. 고분고분하게 생활하고 하고 싶은 말 다 못 하지만 부모로부터 결국에는 성격 이상하다는 소리를 듣자 은희는 방 안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그 목소리를 부인한다. '벌새'의 영지 선생님은 학원에서의 첫 만남에 은희에게 좋아하는 것을 물어본다. 만화를 좋아한다고 하는 은희에게 영지는 자기도 만화를 좋아한다고 말하며 관계를 형성한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좋아하는 것을 물어본다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일이다. 또한 그녀는 아이에게 가치 판단을 알려주는 부모와 같은 역할도 한다. 밤에 허름한 컨테이너 집들(재개발 지구)을 지나며 불쌍하다고 말하는 은희에게 영지는 말한다.

그래도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마.
함부로 동정할 수는 없어.
알 수 없잖아.


은희는 담배를 피우는 영지 옆에 앉아서 가만히 묻는다.

선생님.
제가 불쌍해서 잘해 주시는 건 아니죠?


영지는 말한다.


바보 같은 질문에는 답 안 해도 되지?


 '벌새'라는 영화는 어린 여자아이 1년간 이루어냈던 모든 성장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철저하게 복원해내고 있다. 은희는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 나 사랑해?


뭐라고?


주변이 너무 시끄러워 엄마는 잘 듣지 못하고 다시 묻는다. 은희는 답을 듣지 못하고 그냥 입을 다문다. 오빠의 폭력에도 침묵하고 당하고만 있는 은희에게 영지는 답을 찾는 방법을 알려준다.

은희야. 너 이제부터 맞지 마.
누구라도 널 때리면, 어떻게든 같이 맞서서 싸워.
절대로 가만히 있지 마. 알았지?


영지 그녀는 말한다.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아도 손가락은 움직일 수 있어.

어떻게든 맞서서 싸워. 은희야.


김은희는  영지 선생님, 그녀를 통과할 때 은희의 고통은 비로소 고통으로 이해받는다. 폭력과 상실을 차례대로 겪어나가면서도 고통을 인정받지 못했던 은희는 타인의 진심 어린 공감을 통해 자유로워진다. 리뷰를 쓰고 '벌새'의 구성을 복원하면서 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대해서 더 궁금해졌다. 영화는 모든 기억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이야기는 어떤 이야기인가?

당신은 왜 그것을 기억하는가?


나는 그동안 살면서 내 고통을 이해해주는 김영지와 같은 존재는 만나지 못했지만 삶을 다시 배열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느꼈다. 의미 없는 이야기를 들어내고 남아있는 파편들을 모으면서 그 조각들이 은희에게 다가왔던 영지 선생님의 존재만큼 의미가 있음을 알았다. 그건 매우 강렬한 느낌이었다. 마치 선물 같았다. 당신의 몸과 마음에 남아있는 말들은 이야기가 될 수 있다. 당신에게 의미 없는 이야기를 들어내자. 그리고 남아있는 가장 구체적이고 전형적인 파편들을 모으는 그 순간 온전한 당신의 이야기 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이야기는 그저 그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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