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캣퍼슨

[도서] 캣퍼슨

크리스틴 루페니언 저/하윤숙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5점

마고가 로버트를 만난 것은 가을학기가 끝나가던 어느 수요일 밤, 그녀가 일하는 예술영화 전용극장의 구내매점에서였다. 첫만남에서 마고가 로버트에게 살짝 끼를 부리기는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팁을 받기 위한 수단이었고, 팁을 받지 못한다해도 그녀의 눈에 로버트는 귀여워보였다. 로버트는 상황을 알아차리지 못한 듯 보였으나 그 다음 주에 다시 극장을 찾은 것을 보면, 그 역시 마고에게 관심이 있지 않았을까. 영화가 끝나고 다시 찾아온 로버트는 마고의 전화번호를 얻어간다. 단순한 문자 메시까지 꿈꾼다. 스무 살인 마고와 서른 넷인 로버트. 사랑을 나누기 위해 그의 집에 들어가 벗은 로버트의 몸과 마주한 순간, 마고의 감정은 급격히 식어버리고, 그와 섹스하기로 한 것은 생애 최악의 결정이었다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관계 후 급하게 그의 집을 나선 마고는 계속되는 로버트의 연락에 곤혹스럽기만 하고, 그에게 이별을 통고하기를 망설이는 마고 대신 룸메이트가 '안녕, 당신한테 관심없어. 이제 나한테 문자 메시지 보내지 마'라는 메시지를 전송해버린다. 당황스러우면서도 홀가분함을 느끼는 마고. 얼마 후 친구들과 찾은 술집에서 로버트의 모습을 발견하고, 간신히 그를 피하지만, 그날 밤 로버트로부터 여러 통의 문자 메시지가 도착한다. 그 중 하나에서 그는 그녀를 창녀라 부르고 있었다.

 

단순하게 느껴지는 이야기지만 작가는 이 짧은 소설을 통해 남녀 사이의 오묘한 심리를 그려내고 있다. 호감을 느낀 두 사람이 서로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며 갖는 설렘, 어느 새 꿈꾸게 되는 미래를 넘어 데이트 도중 여성이 느끼는 불안-내가 이 남자를 정말 믿어도 되는 것인가, 그는 나를 지금 어디로 데려가는 것인가, 그가 혹시 연쇄살인범이나 성폭행범은 아닐까 -, 벗은 남자의 신체를 보고 꺼져버리는 감정, 어느 새 남자의 집에서, 그리고 그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마음. 많은 사람들이 이런 마고의 심리를 보면서 '대체 이 여자 뭐야?'할 수도 있겠다. 심지어 마고는 로버트의 집에 순순히 따라가고 그와 섹스하고싶다는 신호를 보내기까지 했으니까. 그녀의 이별 방식이 친구에 의해 어쩌다보니 저질러진 일이라고는 해도 사실 무척 예의없는 행동이었다고 생각한다. 비록 잠깐이었다 해도 로버트에게 호감을 느꼈고, 사랑한다고까지 생각했고, 로버트에게 자신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으니 단순히 그의 착각이라 할 수는 없겠다. 이별할 때 잠수타거나, 상대에게 이별의 말이 나오도록 종용하는 사람 정말 싫어하는데, 친구의 방식에 편승해 그런 방법으로 이별을 택한 마고는 비겁한 사람이다. 그런데. 그렇게 순식간에 마음이 변해버린 마고를 이해할 수 있냐고 물으면, 이해는 할 수 있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그냥 이해는 된다. 나도 갸우뚱.

 

‘캣퍼슨(cat person)’은 고양이를 좋아하거나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을 이르는 말로, 로버트는 자신이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사는 ‘캣퍼슨’이라고 말하지만, 정작 그의 집에 갔을 때 고양이는 보이지 않는다. 마고는 문득 그가 지금까지 한 말이 모두 거짓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사실, 고양이는 다른 방에 있었을 뿐이고 로버트는 정말로 캣퍼슨이었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마고의 불안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며 이 불안은 ‘아는 사람만 아는’ 종류의 것이다. 어쩌면 이 불안이 로버트를 향한 마고의 감정이 사그라드는 데 일조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상징과 심리묘사로 가득찬 이 이야기. 쉽지 않았다.

 

[캣퍼슨] 안에 담겨 있는 이야기들 대부분이 가볍지 않다. 읽다가 머리가 멍-해지는 작품들이 많다. <캣퍼슨>의 거울상과도 같은, 남자의 시점으로 쓰인 소설도 있고(<좋은 남자>), 동화처럼 시작해 순식간에 장르를 비틀어버리기도 하며(<거울, 양동이, 오래된 넓적다리뼈>) 그리스 신화 속 ‘피그말리온’ 이야기를 성 반전 시킨 듯한 작품(<겁먹다>), 직장 내 성추행 문제와 맞물려 통쾌한 재미를 선사하는 소설도 있다(<무는 여자>). <거울, 양동이, 오래된 넓적다리뼈>에서는 기괴함과 오싹함을 느낄 수 있고, <정어리>에서는 이 이야기가 어디까지 현실이고 어디까지 환상인지 의심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장르의 소설은 아니기에 어째서 이 작품들이 이리 인기가 많았는지 초반에는 의문이었다.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한 아리송. 하지만 문학이라는 것이 내가 좋다고 남들도 좋아하고, 내가 싫어한다고 남들도 싫어하는 세계가 아니지 않은가. 곱씹을수록 왠지 선 하나만 넘으면 작가의 팬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 기분. 한 권의 작품집을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준만큼, 작가가 선보일 장편소설은 과연 어떨지 궁금하다. 그녀에 대한 평가는 그 뒤로 미루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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