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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간 화학자

[도서] 미술관에 간 화학자

전창림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요즘 미술관련 서적을 연달아 몇 권 읽었더니 제목과 화가의 이름만 들어도 몇 작품 정도는 저절로 떠올리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닌, 스스로에게 느끼는 뿌듯함. 으쓱으쓱. 보통의 미술책은 그림과 그에 관한 시대적 배경, 화가가 그림을 그릴 당시의 상황 등에 대해 설명해준다면, 이 <미술관에 간 지식인> 시리즈에서는 다양한 분야의 지식의 시각에서 그림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화학, 의학, 수학, 물리학. 학창시절 자연계와 관련된 분야에는 영 재능이 없었던 터라 늘 고생했었는데, 시간이 흐르고 시험과 관련 없이, 게다가 좋아하는 그림과 연관지어 접하다보니 흥미가 생긴다. 학교에서 공부했던 내용들이 이렇게 사용되는 걸 들여다보니, 내가 무지해서 몰랐을 뿐 전혀 '쓸 데 없는' 학문이 아니었던 것이다!

 

시리즈 중 처음으로 읽은 책은 [미술관에 간 화학자]. 미술사를 뒤흔든 거장들의 작품이 화학자의 시각에서 재탄생되는 신비로운 경험! 과학 과목 중 그나마 화학은 쉽게 느껴져서 열심히 했었는데(물론 지금은 기억나는 것이 없다;;) 책에 실린 설명들도 이해하기 어려운 수준은 아닌지라 더 몰입해서 읽었던 것 같다. 다만, 그 몰입의 시간이 너무 과해서인지 왜 이리 책 한권을 읽어내기가 시간이 많이 걸렸는지. 페이지마다 밑줄이 넘쳐난다.

 

그 중 인상깊은 작품들 몇 개를 소개해보자면, 먼저 조각가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의 서쪽 벽에 그린 <최후의 심판>. 6년의 작업 끝에 14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벽면에 391명의 육체들을 그려낸 이 작품에는 예수 바로 곁에 고개 숙인 성모 마리아가 그려져 있는데, 치마를 '울트라마린'이라는 염료를 사용하여 칠한 것으로 추정된다. 울트라마린의 어원은 '바다', '멀리'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원료는 청금석, 황금 다음으로 비쌌다. <그리스도의 매장> 오른쪽 하단에는 누군가를 그려넣기 위해 빈자리를 남겨 놓았는데, 성모 마리아를 그리려 했던 것으로 추측한다. 성모 마리아를 표현하는 데 꼭 필요한 파란색 울트라마린 안료를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을까. 이 '울트라마린'이라는 염료는 책을 읽다보면 여러 번 등장하는 염료 중 하나다.

 

이전의 그림들에서는 전혀 볼 수 없던 화려한 색채와 살아 있는 것 같은 표현의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의 결혼>. 유화의 창시자로 알려진 에이크의 이 작품은 식물성 불포화지방산인 아마인유를 이용하여 이전에는 거의 불가능했던 정교한 붓질이 가능한 유화 기법을 완성하였다. 불포화지방산은 지방산 사슬 중에 불포화기를 포함하고 있어서 녹는점이 낮아 상온에서 액체 상태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불포화기가 가교결합을 하며 굳어져 단단한 도막을 형성하는데, 이 점을 그림물감에 이용한 것. 특히 신부 드레스를 칠한 녹색이 눈을 끄는데, 이 녹색은 말라카이트 그린이라는 성분으로, 구리 광맥 속에서 가끔 출토되는 구리 리간드의 구리 카보네이트다. kg당 100만원이 넘는 고가의 안료를 화면의 넓은 부분에 칠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이 그림의 의뢰인은 대단한 부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작품들도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그 중 김홍도에 비해 비교적 스포트라이트를 적게 받았던 신윤복의 작품들이 인상적이었다. 신윤복은 김홍도, 김득신과 더불어 조선 후기의 3대 풍속화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서민들의 생활을 주로 그린 김홍도와는 달리 양반과 기녀 간의 애정사를 주로 그렸고, 섬세하고 유연한 선과 색채의 달인이었다. 신윤복 이전까지 조선의 그림은 여인을 주인공으로 그린 적이 없었고 여인의 심리상태를 회화적으로 표현한 적이 없었다. 조선의 미인도는 이상화된 여성의 아름다움을 그림으로 남기려는 목적으로 그려졌을 뿐이었다.

 

그런 그의 작품 중 색채 구사가 잘 되어 있다는<미인도>. 치마의 옥색과 속치마 고름의 붉은 색이 눈에 띤다. 특히 이 붉은 색은 진사라는 광물에서 얻어지는 주(朱) 색인데 황화수은으로서 독성이 매우 강하지만 변색이 잘 안되고 색이 아름다워 오랫동안 화가들의 사랑을 받았다. 서양의 버밀리온이 바로 이 색이다.

 

한국화에 있어서 수묵화와 채색화의 차이도 이번에 제대로 알 수 있었다. 한국화에서는 수묵화는 먹으로만 단색으로 그린 그림, 채색화는 색을 칠한 그림 등으로 단순하게 나누지 않는다. 수묵화와 채색화의 구분은 채색 기법에 따른 것이다. 수묵화 기법은 종이나 비단에 물감이 스며들게 하는 기법으로, 일반적인 한국화의 산수화가 이에 속한다. 채색화는 종이에 아교를 먹여 물감이 스며들지 못하게 준비 작업을 하고 세필붓을 사용하여 물감을 표면에 부착시키는 방식으로 그린다. 여러 색이 보이는 수묵화가 있을 수 있고, 단색으로 그린 채색화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 너무 재미있지 않은가!!

 

이 외에도 김홍도의 풍속화에 담겨 있는 '입체이성질체', 왜상기법이 사용된 한스 홀바인의 <대사들>, 생각보다 많은 그림들 속에 숨어 있는 연금술에 관한 이야기, 드가와 페르메이르 등 다른 거장들의 작품도 색다른 시각으로 만나볼 수 있다. 이성과 감성으로 예술을 만나볼 수 있는 시간들. <미술관에 간 지식인> 시리즈에 화학편만 두 권인데, 저자가 들려줄 다른 화학 이야기도 기대된다. 일단은 [미술관에 간 의학자] 부터 먼저 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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